“한국 진출을 결정한 이유는 ‘규제’ 때문입니다. 법이 더 엄격해지고 있고, 안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시장에 들어가기 적절한 시점이라 판단했습니다.” 해리 유(Harry Yu) 뉴런모빌리티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2일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안전’이 우리의 차별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뉴런모빌리티는 싱가포르 기반 공유 전동킥보드 스타트업이다. 세계 최초로 배터리 교체형 전동킥보드를 개발하고, 지오펜싱·앱 제어식 헬멧 잠금 등 기능을 선보여온 이 회사는 호주·뉴질랜드, 영국에 진출해 성과를 냈다. 이달 국내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2000대를 시작으로 운영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한편, 100여명 이상의 한국 직원도 정식 채용할 계획이다.
경쟁력은 헬멧 달린 전동킥보드
국내 공유 전동킥보드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에서만 20여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라임, 싱가포르의 빔모빌리티, 독일의 윈드 등 경쟁력을 갖춘 해외업체들도 포진돼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전동킥보드 대수는 알려진 것만 총 3만5850여대에 달한다.
각축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도로교통법은 지난해 공유 전동킥보드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법이 한 해에만 두 번이나 고쳐졌기 때문이다. 국회는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게 빗장을 풀었다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운전면허를 따야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뒤바꿨다. 헬멧을 안 쓰고 타면 범칙금도 물리기로 했다. 안전을 위한 조처지만, 업체들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이용자들에게 헬멧을 줘야 할지, 주면 어떻게 회수할지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뉴런모빌리티가 현 시점을 ‘기회’라 판단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각종 ‘안전장치’다. 일례로 국내에 들여온 ‘한국형 KS1 전동킥보드’에는 헬멧을 기본 탑재했다. 세계 최초로 앱에서 헬멧의 잠금장치를 풀 수 있는 기술을 구현한 덕분이다. 켈빈 후(Kelvin Hoo) 뉴런모빌리티 운영총괄은 “법률이 강화되고 시행 규칙들이 늘어나게 되면 헬멧 이용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이는 뉴런모빌리티에겐 이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지오펜싱 기술을 통해 가상으로 구역을 나눠 전동킥보드의 이용장소, 주차구역, 주행속도 등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보행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자동으로 속도가 줄어들게 만들고, 주차할 장소도 제어하는 식이다. 지오펜싱을 전동킥보드에 적용한 건, 뉴런모빌리티가 세계 최초였다. 이외에 사고 시 119에 응급출동을 요청하는 기능도 있다. 주행 중 넘어지면 앱을 통해 응급지원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자동으로 119에 연결해준다. 실시간 주행경로를 친구·가족에게 공유해줄 수도 있다. 교육·경고 알림 등 한국어 음성안내도 제공한다. 제품 설계부터 생산, 운영까지 뉴런모빌리티가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 각 도시별 입법·규제기관들의 요청에 따라 기능들을 손쉽게 도입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규제가 필요하다 말하는 이유
뉴런모빌리티는 각국에 진출할 때 규제를 살핀다. 규제장벽이 낮으면 ‘플레이어’들이 뛰어들기에는 유리하다. 동시에 사업자들이 우후죽순 난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교통수단과 관련한 사업은 생명·안전과 직결돼 있는데, 법이 흐릿하면 자칫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이 큰 시장에선 변수가 발생할 여지도 많아진다. 이 때문에 안전을 강조하는 시장을 선호해왔다는 설명이다.
켈빈 후 운영총괄은 “규제가 엄격하고 안전에 민감한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예 완전히 사업을 철수했다”며 “규제 받지 않는 시장은 역풍이 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동킥보드의 주행이나 주차, 속도 규제나 시행규칙 등이 없으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동킥보드가 확산되는 속도도 늦어질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이용금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진출해 있는 호주·영국은 헬멧을 쓰지 않았거나 음주상태일 때 엄격하게 단속한다. 미성년자가 전동킥보드를 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보다 규제도 세다. 뉴런모빌리티가 사업 중인 각국의 모든 도시는 시의회와 계약을 체결한 기업에게만 운영을 허하고 있다. 계약 전 거리 곳곳에 ‘물량공세’하듯이 전동킥보드를 깔아 놓는 전략이 불가능하단 의미다. 일반적으로 사업자 수를 도시당 한 곳에서 최대 세 곳까지 제한하고, 배치할 수 있는 전동킥보드 대수도 정한다. 주행구역도 엄격히 제한한다고 한다.
이렇게 ‘안전에 집중한’ 규제는 때론 기술 발전과 이어지기도 한다. 뉴런모빌리티가 지오펜싱을 전동킥보드에 적용한 것도 호주 브리즈번 시 당국과 안전대책을 논의한 이후 고안해낸 결과였다는 설명이다. 켈빈 후 운영총괄은 “항상 현지법을 따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안전과 자주 연결된다”며 “좋은 규제는 적극환영하고 있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이용자들이 규제를 잘 준수할 수 있도록 하다 보면 혁신을 거듭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도시의 효율적인 이동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해리 유 공동창업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자전거, 전기자전거·전동킥보드 이용이 크게 늘어났는데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거라 확신한다”고 전망하고, “각 도시는 인프라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규제도 더 강화하게 될 거다.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안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우리는 ‘안전 중심’ 접근 방식을 서울에 적용해 도시의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규제당국이 뉴런모빌리티의 전동킥보드 이용방식을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