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테헤란로에 노동·환경 시민단체가 뿌린 붉은 용액이 흘러 넘쳤다. 이들 단체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연임에 대한 항의성 성격으로 포스코 앞에서 붉은 용액을 뿌리며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열었다. 그런데 이들 단체가 뿌린 용액에 놀라 눈살을 찌푸린 건 테헤란로를 오가는 시민들이었다.

참여연대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은 12일 오전 서울 포스코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포스코가 최정우 회장 체제 들어 산업재해 사고와 환경 오염, 인권 탄압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시민단체가 포스코센터 앞에서 붉은 물감을 뿌리면서, 테헤란로까지 붉은 물감이 흘러갔다.(사진=블로터)
▲ 시민단체가 포스코센터 앞에서 붉은 물감을 뿌리면서, 테헤란로까지 붉은 물감이 흘러갔다.(사진=블로터)

이날은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들 단체는 주주총회 직후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최 회장은 이날 주주의 결의를 통해 연임이 확정됐다. 그런데 주총장 밖에는 최 회장 연임에 반대하는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집회 성격의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몇 달 동안 시민단체는 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포스코가 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최 회장은 중대재해와 환경오염, 인권 탄압 등의 문제로 불법과 부정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 단체는 "최정우 회장의 자진 사퇴를 통해 포스코를 재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노동자와 시민이 새로운 포스코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포스코는 수십년 간 이어진 적폐에 대해 노동자와 시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후 지구 온난화와 산업재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인권탄압으로 희생된 시민을 상징하는 의미로 빨간 물감을 포스코센터와 건물 바닥에 뿌렸다. 포스코센터 건물 곳곳이 피를 상징하는 빨간 물감으로 물들여졌다. 하얀 방진복을 입은 활동가들은 10여분의 물감 살포 퍼포먼스를 마치고 현장을 떠났다. 빨간 물감은 테헤란로로 흘러 내려갔다. 10여분 동안 진행된 퍼포먼스로 포스코센터 앞 테헤란로가 빨간 물감으로 물든 것이다.

시민단체는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표현하기 위해 방진복을 입거나 더럽혀진 작업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빨간 물감을 본사 곳곳에 뿌리고, 이로 인해 도로 한복판까지 피를 연상하는 물감이 흘러든 건 다소 과격하다는 설명이다.

▲  시민단체가 살포한 붉은 물감을 청소노동자가 닦고 있다.(사진=블로터)
▲ 시민단체가 살포한 붉은 물감을 청소노동자가 닦고 있다.(사진=블로터)

이들은 최정우 회장을 겨냥해 취임 이후부터 안전사고와 환경오염, 인권 탄압이 증가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사업보고서에 공시된 내용 등을 살펴보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상당하다는 반론도 많다.

먼저 포스코의 본업인 철강업은 해외에서 철광석을 수입해 제련해 쇳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이는 포스코 뿐 아니라 모든 철강사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로 국내외 일관제철소는 '수소 제철소'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2019년까지 포스코의 별도 법인이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2019년 805만톤(tCO2) 규모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이는 전년인 2018년보다 740톤 늘어난 규모다. 2016년과 2017년과 비교해 약 900만톤 늘어났다.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건 포스코에너지로부터 포항과 광양의 부생가스 발전소를 인수한 데 따른 것이다. 온실가스는 법인별로 책정하고 있어 발전소 인수로 인해 배출량이 갑자기 증가했다.

철강산업은 발전업과 석유화학 산업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이다. 이들 산업은 글로벌 '넷 제로' 정책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2019년 제철 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1조원 규모의 환경개선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이중 9000억원을 투자해 질소산화물과 비산먼지 저감, 발전설비 등에 투자했다.

시민단체는 최정우 회장 임기부터 산업재해 사고가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권오준 전 회장의 1기 임기(2014년~2016년) 동안 포스코와 계열회사에서 19건의 산업재해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최 회장 임기 중에는 9건에 그쳤다. 임기 중 인명사고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히려 줄었다.

▲  포스코그룹 사망사고 발생 현황.(자료=고용노동부 등)
▲ 포스코그룹 사망사고 발생 현황.(자료=고용노동부 등)

포스코의 계열사 포스코강판의 해외 미얀마법인(Myanmar POSCO Steel)을 인권탄압과 연관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포스코는 1997년 미얀마 도금 강판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3년 포스코강판이 미얀마법인(Myanmar POSCO C&C)을 설립했다. 2019년 포스코 미얀마법인이 포스코강판 미얀마법인에 흡수되면서 한 개의 법인만 남은 상황이다.

미얀마는 55년의 국부독재로 인해 경제 및 산업구조가 폐쇄적이었다. 포스코는 1997년 미얀마의 인프라 개발과 산업화에 대비해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포스코는 2016년 민주정부가 출범하면서 인프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보다 부진했다. 그런데 중국산 철강제품과 범람하고, 현지 인프라 개발은 예상보다 더뎌지면서 포스코강판은 오히려 손실을 봤다.

▲  포스코강판 미얀마법인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 포스코강판 미얀마법인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포스코강판 미얀마법인은 2013년 설립 후 2016년 9억원의 순이익을 낸 후 줄곧 적자를 냈다. 그러다 지난해 포스코의 현지 법인을 흡수하면서 처음으로 19억원의 이익을 냈다. 즉 미얀마의 민주정부가 들어선 첫 해를 제외하고 손실을 입은 셈이다. 미얀마법인은 포스코강판이 70%의 지분을 갖고 30%는 공기업인 미얀마경제지주사(MEHL)가 갖고 있다. 미얀마는 올해 들어 쿠데타가 발생해 인권탄압이 자행되고 있는데, 포스코강판의 현지 법인은 2016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이익을 내지 못했다. 두해 순이익을 고려하면 MEHL이 지분법 이익으로 가져간 이익은 약 7억원이다. 두 해를 제외한 연도의 손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익이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를 두고 포스코그룹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짓는 건 억측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단체는 이날 주총 전까지 일부 정부 여당 인사와 함께 '최정우 회장 3년 포스코가 위험하다'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고, 포스코 현직 임원 6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4월 최저 수준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1조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수했는데, 이에 앞서 최정우 회장과 전중선 부사장 등이 주가 부양을 위해 회사 주식을 매수했다. 시민단체는 대중에 공표되지 않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구매해 사익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정부 여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에도 '최정우호' 2기는 출범했다. 최 회장은 "도전적인 경영환경에 대응해 AI 기술 등을 활용해 저원가, 고효율, 친환경의 생산 체계를 강화하겠다"며 "2차전지 소재 사업의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원료 내재화를 통해 글로벌 톱 티어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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