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기업들의 정기 주총 시즌입니다. 올해 역시 정기 주총을 통해 경영권의 주인을 가리려는 기업들이 많아 시끌시끌한 한 달이 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은 한국앤컴퍼니입니다. 한국타이어의 지주사죠.

한국앤컴퍼니는 경영에서 물러난 아버지 조양래 회장 아래 장남 조현식(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 부회장),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차남 조현범(한국타이어 사장,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 등 세 남매가 경영권을 두고 현재 다툼 중에 있습니다.(하아~ 회사 이름들 참 어렵네요.)

현재 이 집안의 경영권 분쟁 구도는 이렇습니다.

'아버지 조양래·차남 조현범 vs 장남 조현식·장녀 조희경'

차녀 조희원씨도 있지만, 중립적 입장으로 가족 간 경영권 다툼에선 한 발 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무려 80년 가까이 국내 타이어 시장을 이끌며, 부동의 '국내 1등' 타이어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한국타이어가 어쩌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라는 격랑 속에 빠지게 된 걸까요. 듣자 하니 남매간, 부녀·부자간 사이도 나쁘진 않았다고 하는데 말이죠.

▲  조현식 부회장(왼쪽), 조현범 사장(오른쪽)./사진=한국타이어그룹 애뉴얼리포트
▲ 조현식 부회장(왼쪽), 조현범 사장(오른쪽)./사진=한국타이어그룹 애뉴얼리포트

아무래도 작년 여름, 아버지 조양래 회장이 회사 경영에 손을 떼면서 보유 지분 23.59%를 장남도, 장녀도 아닌 차남에게 매각한 게 발단이 된 듯 보입니다. 사실상 조현범 사장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죠. 핵심 계열사 한국타이어를 수년간 이끈 공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남·장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 게다가 조 사장은 당시 횡령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남은 자녀들로선 아버지의 결정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아버지에 대해 성년후견을 신청했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의사인지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얼마 안 가 장남 조현식 부회장도 누나의 편에 서면서 지금의 분쟁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한쪽이 내려놓지 않는 이상, 한국앤컴퍼니의 미래 주인은 오는 30일 주주총회 표대결을 통해 가려지게 되는데요.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요.

단순 지분율로만 보면 차남 조현범 사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조 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19.31%)에 아버지 지분(23.59%)이 더해지면서 총지분율이 42.9%로 급증했습니다. 한국앤컴퍼니의 최대주주로도 올라섰죠. 반면 조희경 이사장 지분율은 0.83%,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율은 19.32%로, 합쳐도 20.15%에 불과합니다. 조 사장 지분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죠.

관건은 10.82%를 보유한 조희원씨가 중립 입장인 가운데 5.21%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과 17.57%를 보유 중인 소액주주가 어느 쪽의 편을 드느냐 일텐데요. 이들이 모두 조희경-조현식 조합에 선다면, 총 지분율은 42.93%으로, 조현범 사장 지분율(42.9%)과 비등해지면서 한번 붙어 볼 만 해집니다. 이 경우 조희원씨가 들고 있는 지분 10.82%의 향배가 변수가 됩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표심이 어딘지 알 수 없고, 또 소액주주가 일제히 조희경-조현식 조합에 지분을 밀어줄 확률도 낮은 만큼 위의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시나리오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조현범 사장의 승리냐.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헌데  '계란으로 바위치기' 할 만한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올해 주총에서부터 적용되는 바로 '3%'룰인데요. 상법 개정으로 이제부터 기업집단들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감사위원 선임 시 지배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해야 합니다. 고로 한국앤컴퍼니에서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조현식 부회장, 조현범 사장, 조희원 씨, 국민연금의 지분은 각 3%로 동일하게 제한되는데요. 한마디로 지분이 많다고 해서 표대결에 유리한 건 아니란 말이죠.

이 경우 단연 17.57%를 보유한 소액주주의 표심이 결국 캐스팅 보트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럼 소액주주는 과연 누구를 지지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 또한 조현범 사장이 우리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액주주의 표심이 어느 한 쪽으로 몰릴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현식 부회장 역시 횡령 혐의로 동생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바 있어 소액주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조희경-조희원 자매의 경우는 그간 그룹 경영에 적극적인 인물도 아니었고요.

다만 그간의 주가로 소액주주의 표심을 추론해 보면 조희경-조현식 조합이 살짝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일단 조현범 사장에게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2019.11.19)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전날 대비 50원(0.36%) 오른 채 마감됐습니다. 핵심 계열사의 수장이 구속 위기에 처했는데도 주가가 오른 셈이죠.

그렇다면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매각한 날(2020.6.29),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어땠을까요. 전날 대비 1100원(9.87%) 올랐습니다. 그리고 3일 연속 더 상승했습니다. 조현범 사장에 대한 후계자 지목을 지지한다는 뜻이겠죠. 적어도 이때까진 그런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희경- 조현식 조합이 움직이고 나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조희경 이사장이 조양래 회장에 대해 성년 후견을 신청한 날(2020.7.30)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전날 대비 3400원(39.96%) 급등했습니다. 그리고 조 부회장이 누나 쪽에 가세하겠다고 발표한 날(2020.8.25) 회사 주가는 전날 대비 4050원(29.89%)상승했고요. 조현범 사장이 후계자로 지목됐을 때의 상승세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조 부회장이 한국앤컴퍼니 사임 카드를 꺼낸 날 주가는 어땠을까요. 하루 새 4300원(19.20%)이 빠졌습니다.

이처럼 주가의 방향성은 조희경-조현식 조합에 더 우호적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든 지분이 쏠리지 않으면 조희경-조현식 조합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게임일텐데요.

최근 조현식 부회장은 사임을 앞두고 '지배구조의 클린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업주의 후손임에도 형사 법정을 오간 책임을 다하고,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신은 사임하되, 제3자를 한국앤컴퍼니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제안하겠다는 주주제안을 공개했는데요. 이를 통해 한국앤컴퍼니가 보다 독립적이고 투명한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겁니다. 흠을 갖고 있음에도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는 동생을 사실상 저격한 것이죠.

그러나 동생의 벽은 너무나 높습니다. 결국 조 부회장의 주주제안과 성년 후견을 신청한 조 이사장의 명분이 소액주주로부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얻어내는지가 관건이 될 듯 한데요. 조희경-조현식 조합이 탄탄한 동생의 벽을 허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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