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한 때 자산규모가 10조원에 달했던 아주그룹은 2000년대 중반 계열분리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2007년 신아주, AJ그룹을 떼어낸 뒤 레미콘업체 아주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상황이 아주 좋진 않죠. 지난해 3분기 누적 아주산업의 영업이익은 약 38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개선했지만 예년 800억~900억 수준에는 못 미치는 실적입니다.

▲  (출처=아주산업 2020년 3분기 보고서.)
▲ (출처=아주산업 2020년 3분기 보고서.)

아주그룹에게는 현재 사업과 관련된 고민 말고도 또 다른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승계인데요. 규모가 아무리 쪼그라들었다 해도 자녀에게 큰 출혈 없이 회사를 물려줘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이 1951년생인 점을 감안하면 승계 플랜을 가동해도 늦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주산업 분기보고서에 기재된 출자도를 보면 지주사 역할을 하는 아주산업을 중심으로 그 밑에 20개 회사가 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투자, 자산개발, 해운, 수입차 판매 등 다양한 사업들에 확장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그룹 중심 역할을 아주산업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아주그룹 출자도.(출처=아주산업 분기보고서.)
▲ 아주그룹 출자도.(출처=아주산업 분기보고서.)

그룹 내에서 아주산업 외에 가장 눈길을 끄는 회사는 바로 아주글로벌입니다. 아주글로벌은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문윤회 아주호텔앤리조트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죠. 과거 자원개발 사업을 영위하던 회사였지만 현재 역할은 불분명합니다. 투자자문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 역할이 아주 분명하지도 않은데 그룹 후계자가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승계 지렛대로 활용될 거란 관측들이 많습니다.

아주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승계가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룹 내부적으로 승계를 위해 아주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자본거래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주글로벌이 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주글로벌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본 결과 아주글로벌은 지난해 7월 15일 총 4개의 새로운 사업목적을 추가했습니다. 이중 하나가 바로 지주사업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자회사의 지분소유를 통해 자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지주사업’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물론 사업목적에 지주사업을 추가한다고 무조건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은 아닙니다. 꼭 지주사가 아니라 지주사 역할만 하더라도 지주사업을 사업목적에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그룹도 이번 지주사업을 정관에 추가한 것이 지주사 전환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주그룹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목적은 아니고 종속회사를 두고 있어 사업목적에 지주사업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다만 아주그룹 내 아주글로벌의 지위를 고려하면 단순 종속회사를 품었다고 지주사업을 추가했다고 볼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승계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지는 회사기 때문이죠. 향후 아주글로벌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펼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주글로벌이 지난해 지주사업과 함께 사업정관에 추가한 사업목적은 △유가증권 및 기타 금융자산 투자업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업 △각호와 관련된 부대사업 등 모두 투자와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투자형 지주사 전환을 예상해볼 수도 있죠.

▲  (출처=아주산업 2020년 3분기보고서, 아주글로벌 2019년 감사보고서.)
▲ (출처=아주산업 2020년 3분기보고서, 아주글로벌 2019년 감사보고서.)

이와는 별개로 아주글로벌을 중심으로 계열사 간 자본거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문윤회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아주글로벌은 2019년 아주호텔앤리조트에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직접적인 지배력을 획득했습니다. 문 대표가 그룹 신사업이 호텔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비로소 2019년에야 본인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죠. ‘문윤회-아주글로벌-아주호텔앤리조트’의 지배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주글로벌은 아주호텔앤리조트 유상증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아주네트웍스를 매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디다 팔았냐면요. 바로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아주산업에 팔았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아주산업이 아주글로벌을 위해 아주네트워크를 사준 모양새죠.

이러한 계열사 간 상부상조식 자본거래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아주산업의 2020년 3분기 보고서를 보면 추가 자본거래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주산업은 아주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던 아주모터스와 아주오토리움 지분 전량을 취득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주오토리움 지분 취득원가는 147억원이구요. 아주모터스 지분 취득원가는 140억원으로 계산됩니다. 총 287억원을 아주산업이 아주글로벌에 지원해줬다고도 볼 수 있죠.

아주글로벌이 새롭게 확보한 자금의 용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주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듯 지주사 전환을 위해 신사업 확보에 사용할 수도 있구요. 아니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한 호텔 사업 추가 지원에 사용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아주호텔앤리조트는 지난해 9월 30일자로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같은 날 아주글로벌의 아주모터스와 아주오토리움의 매각이 이뤄졌습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아주글로벌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들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규영 회장이 보유한 아주산업 지분 84%를 물려받으려면 문윤회 대표는 어떻게든 자신이 보유한 자산 가치를 상승시켜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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