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텔레콤의 본사 사옥 SK-T타워. (사진=SKT)
▲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텔레콤의 본사 사옥 SK-T타워. (사진=SKT)

국내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SKT는 무선 통신이 주력 사업입니다. SKT의 2020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연결기준 사업부문별 매출에서 무선 통신사업은 전체 매출의 약 66%를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유선 통신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이 높은데 18.3%에 불과합니다. 무선 통신사업과 차이가 3배 이상 납니다. 그만큼 아직 SKT에서 무선 통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국내 무선 통신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섰습니다. 때문에 SKT는 무선 통신 외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탈통신'을 통해 통신에서 벗어나 '빅테크'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입니다.

e커머스도 SKT의 탈통신 사업 중 하나입니다. SKT의 e커머스는 자회사 11번가가 맡고 있습니다. 녹화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T커머스 사업자 SK스토아도 자회사로 있지만 11번가의 매출이 두 배 이상 커 아직 SKT의 e커머스는 11번가가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1번가는 이베이코리아가 보유한 G마켓, 옥션에 이어 후발주자로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2008년 출시 당시 SKT가 세운 자회사 커머스플래닛이 11번가의 운영을 맡았습니다. 이후 커머스플래닛과 SK플래닛이 합병을 했고 2018년에 11번가 주식회사로 분사했습니다. 11번가는 모기업인 SKT와 함께 선발주자인 G마켓과 옥션을 추격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쇼핑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e커머스 경쟁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바로 쿠팡·위메프·티몬같은 소셜커머스와 국내 1위 포털 기업 네이버입니다. 소셜커머스 3사 중 특히 쿠팡은 자체 물류시스템을 구축하고 주문 후 익일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내세워 크게 성장했습니다. 네이버는 e커머스 서비스들의 가격비교와 자체 쇼핑 서비스 '스마트스토어'를 앞세워 국내 e커머스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습니다.

▲  (자료: SKT 실적발표)
▲ (자료: SKT 실적발표)

11번가는 이들과 마케팅 경쟁을 펼치다보니 실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11번가의 실적이 SK플래닛과 별도로 공개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의 추이를 보면 매출은 하락세가 이어졌고 손실규모는 줄었지만 영업손실 기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1번가의 2017년 매출은 6882억원이었지만 2020년 5456억원으로 약 21% 감소했습니다. 2019년의 14억원 영업이익을 제외하면 지난 4년간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손실 규모는 2017년 1540억원에서 2020년 98억원으로 대폭 줄이긴 했지만 업체간 경쟁은 이어지고 있어 흑자전환까지는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때 11번가 매각설도 나왔습니다. e커머스 시장 상황은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가운데 11번가의 영업손실이 이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박정호 SKT 대표는 매각설을 일축하고 e커머스를 SKT의 주요 사업으로 키워나갈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가 매각설을 일축한 것은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 커머스 사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11번가라는 오픈마켓에 SKT의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을 더해 혁신 서비스를 선보여 한국의 아마존으로 키운다는 전략입니다.

아마존도 시작은 온라인 서점이었죠. 이후 거래 물품을 다양화하고 자체 AI 플랫폼 '알렉사'를 적용하고 무인점포 '아마존고'와 드론과 자율주행 트럭 등을 활용한 배송을 선보이는 등 ICT와 유통을 결합한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며 전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11번가도 SKT라는 ICT 역량을 갖춘 우군이 있기에 아마존처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자신감의 원천으로 보입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아마존과 11번과의 협력도 이끌어냈습니다. 지난해 아마존과 제휴를 맺은 SKT는 아마존의 제품을 11번가에서 판매하도록 해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판매자들은 아마존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가운데 G마켓과 옥션을 갖춘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왔죠. 커머스 기업들에게는 국내 대표 오픈마켓을 품어 e커머스를 단숨에 강화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난 16일 마감된 이베이코리아 매각 예비입찰에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 강자 신세계·롯데와 함께 SKT도 참가했죠. SKT가 이베이코리아 매각 본입찰에도 참여해 인수에 성공한다면 11번가에 G마켓·옥션까지 더한 국내 대표 오픈마켓 3개를 보유하게 됩니다. 그만큼 ICT를 접목한 커머스를 선보일 수 있는 가입자 규모가 커집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도 많은 소비자들이 경험할 기회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죠. 하지만 오픈마켓 3개를 보유하게 된다면 새로운 서비스를 한번에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며 단기간에 알릴 수 있습니다. SKT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다면 시장 점유율에서도 단숨에 1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e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가 17%로 선두이며 쿠팡(13%), 이베이코리아(12%), 11번가(6%), 롯데온(5%) 등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또 이베이코리아는 11번가와 달리 흑자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가입자를 대상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이베이코리아를 품는다면 SKT의 연결기준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베이코리아는 최근 15년간 흑자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매출은 1조3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SKT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성공하고 그 이후에도 쿠팡과 네이버 등 e커머스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가능한 이야기들입니다. 쿠팡은 최근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대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은 이번 상장으로 약 5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탄을 든든히 장착한 만큼 대규모 투자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만큼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죠. 오프라인 유통 강자 신세계는 네이버와 지분을 맞교환하고 이베이코리아 예비입찰에도 참여했습니다. 기존 e커머스 1위 네이버와 손잡고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면서 G마켓·옥션까지도 품어 e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겠다는 복안입니다.

탈통신을 내세운 SKT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이후에도 11번가가 어떤 차별화된 서비스로 쿠팡·네이버·신세계 등과 경쟁을 펼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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