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삼성전자의 적(敵)이 ‘재해’인 이유

발행일 2021-03-21 15:19:09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삼성전자 홈페이지 갈무리)


삼성전자는 지난 3월 17일 주주총회를 가졌습니다. 약 900여명의 주주가 참석해 각종 발언을 했는데요 그 가운데 반도체 공급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한 현상, 일명 ‘반도체 쇼티지’와 관련된 질문도 나왔습니다.

이날 고동진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장(사장)은 관련 질문에 “반도체와 부품에서 수요와 공급의 언밸런스(불균형)가 심각하다. 오는 2분기부터 생산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사업장 등 임직원들이 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반도체 쇼티지 현상이 삼성전자에 악재가 된 건 다름 아닌 재해 때문입니다. 지난 2월부터 벌어진 텍사스주 한파로 인해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고요, 그 여파로 각종 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상쇄해버리고 있는 겁니다.

역사적 한파로 눈을 뒤집어 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전경. (사진=flickr.com, European Space Agency)


지난해 하반기부터 벌어진 '반도체 쇼티지' 현상을 되짚어봅시다. 그 시작도 코로나19라는 재해였습니다. 차량 판매가 줄어들 것을 예상한 완성차 회사들이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줄인 게 화근이었습니다. 하반기 경기가 회복되면서 차량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들이 이미 다른 용도로 웨이퍼를 돌리면서 차량용 반도체에 수급 불균형이 생긴 것이죠.

전 세계에서 자동차 반도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대만입니다. IHS마킷에 따르면 대만 파운드리 반도체 회사 TSMC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NXP 반도체, 인피니온,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등의 주문을 받아 16nm(나노미터)부터 28nm, 40/45nm, 65nm, 110/130nm에 이르는 차 반도체를 두루 생산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문을 받아 제품을 납품하는 데 걸리는 시간(리드타임)이 평균보다 두 달 정도 더 걸린다고 합니다.

권선연 코트라 미국 디트로이트 무역관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공급 부족으로 인해 거의 모든 칩의 리드 타임이 1~2개월 길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2021년 2분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며 “일각에서는 2021년 3분기 이전에 TSMC와 같은 대형 파운드리 기업이 추가 주문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차량용 반도체로 시작된 쇼티지 현상의 시작은 코로나19였다. (사진=삼성반도체이야기 홈페이지 갈무리)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니 반도체 회사들은 반가울 법한데, 삼성전자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미국 텍사스주 사상 최악의 한파 사태가 찾아오며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가동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17일부터 텍사스주를 강타한 한파로 전력과 물 공급이 끊겼습니다. 주민들은 추운 겨울에도 난방기를 전혀 쓰지 못했고 며칠간 전기가 겨우 순환 공급되며 불도 못 켤 지경이었고요. 배관이 동파돼 물이 안 나오자 주민들은 식수를 구하기 위해 배급을 받거나 눈을 녹여 먹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텍사스주 소재 공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곳엔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을 비롯해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업계 1위 NXP, 인피니언 등이 있습니다. 끊겼던 전기는 금방 공급됐지만, 반도체 공정에서 전기만큼 중요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공장 가동이 계속 지연됐습니다.

삼성전자 공장이 쓰는 물은 천문학적 수준입니다. 2019년 화성사업장에서만 연간 4911만 톤을 썼다고 하죠. 단적으로 말하면, 물이 없으면 반도체를 아예 만들지 못합니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갈무리)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으로 시야를 좁혀봅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7곳 중 한 곳인 오스틴 공장은 10나노급 이상 반도체를 만드는 파운드리로 월 300mm(12인치) 웨이퍼 10만 장가량을 취급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자사에 필요한 반도체 제품은 물론 인텔과 퀄컴, 테슬라, 르네사스 등 고객사 제품도 위탁 생산합니다. 이동통신용 RFIC, 메인보드, 통신용 칩셋, 낸드 플래시, SSD용 컨트롤러 칩셋, 자동차용 MCU 등을 만들죠.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타격은 얼마나 클까요. 삼성전자 공시에 따르면 오스틴 공장은 2020년 매출 3조9131억원, 당기순이익 9220억원을 거뒀습니다. 이 기간 삼성전자 파운드리 총 매출이 17조3136억원이었으니 오스틴 공장은 파운드리의 22.6%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큰 곳입니다.

이번 공장 가동중단으로 입을 매출 감소분을 예상하긴 어렵겠지만, 전년 매출에 비춰봤을 때 하루 매출 감소분은 107억원이며 한 달로 환산하면 3260억원에 달합니다. 이제 겨우 공장 가동이 재개됐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아직 완전 가동 상태는 아니라고 합니다. 향후 공장 가동 상황에 따라 피해액도 달라질 수 있겠죠.

여기에 공장 가동중단으로 버려질 웨이퍼까지 따지면 손실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유안타증권은 리포트를 통해 반도체를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웨이퍼 아웃’ 시점을 4월 중순으로, 웨이퍼 손실액은 4000억원으로 전망했습니다.



오스틴 공장의 실적 감소도 문제지만, 이 사태는 삼성전자의 각종 제품 생산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오스틴 공장에서 만들던 자사 낸드 플래시와 SSD 컨트롤러 칩셋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부품을 원하는 만큼 수급하기 어려워진 것이죠.

이 제품의 생산이 늦춰지면서 타사에 납품해야 할 기업용 SSD는 물론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할 저장장치(UFS) 생산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모바일을 전담하는 IM부문장인 고동진 사장이 주주총회에서 쇼티지의 영향을 설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상황이 이러니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자연재해를 더 두려워할 법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코로나19는 지난해 상반기 삼성전자 매출을 줄인 최대 요인이었고요. 여기에 한파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불가항력적 리스크는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온전히 입지 못하는 중대 요인이 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변수들은 비단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기후변화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고, 이에 기업들이 대처하지 못할 재난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력으로도 쉽게 이겨낼 수 없는 ‘재해의 벽’에 기업들은 연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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