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TSMC와 협력하겠다’는 인텔, 실상은 ‘적과의 동침’

발행일 2021-03-24 18:14:34
 

23일(현지시각) 열린 인텔의 'Intel Unleashed: Engineering the Future'웹케스트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자사의 새 비즈니스 전략인 IDM 2.0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인텔 유튜브 갈무리)


지난 2월 취임한 인텔 새 CEO 팻 겔싱어(Pat Gelsinger)의 첫 간담회가 23일(현지시각) 열렸다. 겔싱어 CEO는 이 자리에서 인텔의 새 방향성인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2.0’을 천명했다. 200억 달러(약 22조원)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두 개 더 지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서비스’를 운영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IDM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 판매를 포괄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를 뜻한다. 인텔은 2010년대 중반부터 14나노 공정에 막혀있었고 10나노 이하 공정에서도 겨우 수율을 맞춘 상태였다. 반면 AMD와 엔비디아 등은 7나노는 물론 5나노 제품까지 출하하고 있다. 이에 세간은 인텔이 공장을 줄이고 외부 위탁생산을 늘리는 ‘팹 라이트’(Feb-light)로 갈 것이라 예상해왔다.

그런데 인텔은 IDM2.0을 통해 오히려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겔싱어 CEO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주가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63달러 선에 있던 인텔 주가가 장외 시장에서 68달러까지 치고 올랐다. 인텔의 새로운 전략을 시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반도체 장비 선두 기업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극자외선을 활용한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ASML의 주가도 인텔의 투자 기대감에 상승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TSMC, UMC 등 파운드리 업체는 주가가 모두 하락했다.

겔싱어 CEO는 이날 간담회에서 극자외선을 활용한 7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 공정인 EUV 공정의 수율 문제도 해결(Resolve)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13세대 CPU인 메테오레이크(Metheo Lake)로 올해 2분기 7나노 컴퓨트 타일을 만들기 시작해 2023년에는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23일(현지시각) 열린 인텔의 'Intel Unleashed: Engineering the Future'웹케스트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자사 서버용 GPU 폰테 베키오를 들고 있다.(사진=인텔)


사실 겔싱어 CEO의 IDM 2.0 선언에는 외부 파운드리와의 협력 계획도 함께 담겨있다. 이미 외부 파운드리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향후 그 협력이 더 증가할 것이란 내용이다. TSMC와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 UMC 등 파운드리 회사와의 협력을 늘릴 것이란 발언도 눈에 띈다.

다만 업계는 인텔이 공장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은 것을 전제로 볼 때 파운드리와의 협업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IDM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IDM 2.0’을 선언했고, 갤싱어 CEO가 “대부분의 제품을 인텔 팹에서 계속 구축할 것”이라 밝힌 마당에 파운드리와 손잡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그 이유다.

인텔이 파운드리 서비스를 구축하더라도 언제든 그 공장에서 자사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은 2025년 1000억 달러(약 11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최근 반도체 수급 불균형 문제가 대두되며 IDM 업체들의 팹 라이트 추세가 오히려 위험 요인으로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텔은 세계 최고 수준의 로직 반도체 설계 능력과 함께 패키징 능력도 함께 갖고 있다. 이날 갤싱어 CEO가 간담회 서두에 ‘시스템 온 패키징(SoP)’을 거론하며 포베로스와 EMIB 등 자체 패키징 기술의 우수성을 내세운 것도, 결국 파운드리에서 타사에 비해 갖는 강점이 확실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이번 200억 달러 파운드리 투자 발표로 인텔은 시장의 예상과는 달리 수십년 간 공고히 유지했던 기술적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며 “IDM 의 장점인 제조 역량 확보, 파운드리에 대한 예속 방지, 자유로운 생산량 변경 가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고객들의 자체 반도체 출시 욕구 등의 시대적 변화에도 대응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인텔이 22조원을 들여 '팹 42'를 짓겠다고 밝힌 미국 애리조나주 오코티오 캠퍼스 전경.(사진=인텔)


겔싱어 CEO의 간담회 내용에서는 최근 아시아 지역이 반도체의 중심지가 되는 데 대한 경계심도 함께 읽힌다. “대부분의 파운드리 공장 생산력이 아시아에 집중됐다. 이 산업은 생산 능력에서 지리적 균형이 필요하기에 인텔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확장을 시작할 것”이라는 게 그의 발언이다.

이번 결정은 나아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 확보의 연장선상으로도 해석된다. 이미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설계부문뿐만 아니라 향후 고성장이 확실한 파운드리에서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위험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인텔은 그간 14나노, 10나노에서의 수율 문제 해소를 약속했음에도 그간 이를 실현하지 못했고, 이에 시장에 큰 실망감을 안겨왔다. 만약 7나노로 나올 메테오레이크의 양산조차 늦어진다면 인텔로서는 팹 투자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만큼 재무상태가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이 이번 인텔의 IDM 2.0을 ‘승부수’로 보는 이유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텔이 7나노, 5나노 개발에서 지연을 발생시키고 경쟁력 있는 용량과 수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번 파운드리 투자 발표의 현격한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그러한 경우 인텔은 최신 공정이 아닌 레가시 공정에서 미세 공정에 민감하지 않은 저부가가치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 업체에 머물게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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