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현대엘리베이터 창사 후 유동성 '최대'...현대그룹 재건에 쓰일까

발행일 2021-03-26 11:07:20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생산공장 전경.(사진=현대엘리베이터)


올해 37돌을 맞은 현대엘리베이터의 고민은 '미래'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984년부터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등 단일 제품으로 국내외 시장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설립되던 당시 국내에는 고층 빌딩이 생소했던 시기였습니다. '한강의 기적'의 상징인 서울 63빌딩이 1985년 지어졌으니 당시 서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죠. 당시 승강기 수요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우리가 길을 만든다"는 의지로 100년 전통의 역사를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했다고 합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현대엘리베이터는 연 매출 2조원의 국내 1위 승강기 업체입니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미국 오티스와 핀란드 코네, 일본 히타치 등에 이어 9위입니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 설립된 현대엘리베이터는 '청년'에서 '중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노화는 건설경기 때문입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글로벌 건설경기는 침체됐습니다. 국내 시장은 부동산 시장의 규제가 심화되면서 건설 경기는 동반 침체됐죠. 현대엘리베이터는 고층 건물에 승강기를 공급해야 하는데 시장이 갈수록 줄어든거죠. 전방산업이 침체된 만큼 현대엘리베이터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숙기를 맞게 됐습니다.

성숙기를 맞은 기업의 경우 영업과 생산 모두 안정적으로 이뤄집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현금흐름도 원활하죠. 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데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도 어렵고, 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기도 어렵습니다. 성숙기에 부딪힌 기업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현대엘리베이터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매출 1조8211억원, 영업이익 1500억원을 냈습니다. 순이익은 979억원을 기록했죠. 지난해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제조업들은 유례없는 불황을 맞았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제조업의 보릿고개'에도 더 많은 수익을 냈습니다. 매출은 전년보다 514억원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9.2%(138억원) 증가했죠. 영업이익률은 8.2%를 기록했습니다.

순이익은 55.4%(543억원) 늘었습니다. 1315억원의 '채무조정 이익'이 반영되면서 영업외비용이 줄었고, 순이익이 증가했죠.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전년보다 490억원 증가한 1591억원을 기록했죠.

실적만 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흠잡을 데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도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우수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보면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습니다. 승강기 사업 외에는 이렇다 할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타 기업들이 2차전지와 관련 소재, 수소 등을 미래 먹거리로 선점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밖에 없기 때문이죠. 사업구조도 매우 심플합니다. 납품처로부터 원자재 등을 들여와 조립해 판매하는 게 전부입니다. 후방산업에 진출할 수도 전방산업인 건설업에 진출할 수도 없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사진=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리베이터는 과거 독일 쉰들러홀딩아게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고, 오너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을 두고 범 현대가와 수차례 경영권 분쟁을 벌였습니다. 지배구조가 요동쳤던 만큼 현대엘리베이터는 신사업 등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는 데 여력을 쏟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에도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지난해 2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애프터서비스 사업을 전문화하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를 설립했습니다. AS 부문을 전문화해 승강기 유지보수 및 부품 판매 사업을 확대하기로 한거죠. 지난해 승강기 AS 부문 매출은 4907억원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대 수준의 매출을 냈습니다.

전체 매출의 67.3%가 제품 판매에서 나왔고 AS 부문은 26.9%를 기록했습니다. AS 부문의 비중은 3년 전 19.3%였는데, 갈수록 커지고 있죠. 이 때문에 AS 부문을 전문화하는 게 성장성이 클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신사업을 발굴하는데 전념하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현대엘리베이터는 신사업 기획팀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신사업 기획팀은 국내와 해외에서 사업을 다각화할 아이템을 발굴하고, 투자 기회를 검토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네비게이터' 역할을 하는거죠.

현대엘리베이터 현금성 자산 추이.(자료=금융감독원)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를 위해 '실탄'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5546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6년 4979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이후 보유량을 줄였습니다. 지난해 현금성 자산은 전년보다 1469억원 증가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역대 최대 규모 '실탄'을 보유한 건 M&A 또는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이 신규 투자를 하거나 M&A를 하려면 타인 자본과 자기 자본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타인 자본으로만 투자할 경우 재무 부담이 커져 재무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죠. 이 때문에 자기 자본과 타인 자본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게 안정적입니다.

차입금 상환 용도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차입금은 6899억원으로 상환 기간이 1년 미만인 단기성 차입금은 1434억원입니다. 단기차입금은 전년에 비해 1214억원 줄었습니다. 부채비율은 156.1%로 재무건전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상황으로 보입니다.

시장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M&A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9년 중국 상하이 신공장을 완공하면서 2030년까지 글로벌 7위로 점유율을 높일 전략을 짰습니다. 이미 본업인 엘리베이터 시장의 성장 전략을 마련한거죠. 시장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본업인 엘리베이터보다 이종산업에 진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HMM의 선박 사진.(사진=HMM)

정부가 HMM(옛 현대상선) 매각을 저울질하는 만큼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에 대비해 유동성을 쌓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현대그룹은 2016년 출자전환을 통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산업은행에 넘겼습니다. 정부가 HMM 민영화 작업을 검토하는 만큼 '영끌'해 현대상선을 되찾자는 설명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지주사입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떼내면서 위상이 급격하게 줄었는데요. 현대상선을 되찾는 건 현대그룹의 재건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라는 게 재계의 설명입니다.

이렇듯 현대엘리베이터가 '실탄'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두고 재계는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현대그룹의 재건을 위한 '실탄'일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현금을 쌓은 건지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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