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
▲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

오는 6월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설강화’가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으로 누리꾼의 지탄을 받고 있다. 주인공이 운동권 학생으로 나오는 남파 간첩이고, 안기부를 미화한다는 설정이 민주화운동을 폄훼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설강화 촬영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 26일 청원자는 “민주화운동에 북한의 개입이 없다는 걸 몇 번씩이나 증명했음에도 간첩을 주인공으로 했고, 인간을 고문하고 죽이는 걸 서슴지 않은 안기부의 미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나라의 근간을 모욕하고 먹칠하는 이 드라마의 촬영을 중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해당 청원은 30일 오후 7시 29분 기준 14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JTBC 드라마 ‘설강화’는 공개된 시놉시스만으로도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호되게 받고 있다. 우선 1987년 서울이 배경이며 주인공의 정체가 운동권 학생으로 위장한 ‘남파 간첩’이라는 것이다. 당시 쿠데타로 일어난 전두환 군사정권은 독재를 반대하던 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계한 내란 음모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이른바 ‘북한 개입설’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이 없었던 만큼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 안보’를 내세워 무고한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그 아픈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불거진 설강화의 ‘남파 간첩’ 주인공 설정은 무리수를 넘어 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민들은 ‘독재 정권 타도’라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각계각층에서 분연히 일어섰다. 하지만 드라마 설정만 보면 이러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남파 간첩’이 주도했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드라마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팀장도 등장하는데 소개를 보면 ‘법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어떤 상황에도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자 대쪽 같은 인물‘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안기부의 실상은 완벽히 반대다. 안기부는 무자비한 고문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악명을 떨치던 기관이었다. 따라서 설강화의 캐릭터는 안기부를 미화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포스터
▲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포스터

이러한 흐름은 2화 만에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를 떠올리게 한다. 해당 드라마는 공개 전 “문제 소지가 있는 부분 수정을 했다”고 제작진이 공언했지만 역사 왜곡 논란과 동북공정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누리꾼들은 설강화가 방영될 경우 민주화운동 폄훼 및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사전에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30일 디시인사이드 ‘설강화 갤러리’는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JTBC에 입장표명 및 드라마 폐지를 강력히 요구한다’며 트럭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고문받아 사망한 아픈 역사가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민주주의 의미의 변질과 역사의 왜곡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이은 논란에 JTBC 측은 30일 공식 입장을 밝히고 정면돌파에 나섰다.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한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요원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JTBC 홈페이지 갈무리)
▲ (JTBC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1987년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희생을 도화선으로 6월 항쟁이 시작된 시기였다. 그야말로 전 국민이 민주화항쟁 투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사랑에 빠진다면 굳이 1987년을 배경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또한 안기부 요원이 ‘해외파트’에 근무하니 괜찮다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 안기부 해외파트에서는 1987년 ‘수지킴 간첩조작 사건’을 공작했다. 홍콩에서 한국인 수지킴이 살해되자 안기부가 진상 은폐를 위해 그녀를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한 사건이었다. 결국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독재 정권, 관련 기관, 민주화운동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지적이 쏟아진 상황에서 드라마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남파 간첩이라던 주인공의 정체나 안기부에 대한 묘사, 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등의 세부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미 조선구마사라는 ‘좀비’를 무찌른 시청자들은 극 중 역사 왜곡이나 민주화운동 폄훼를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는 것이다. 공개되는 순간 시청자의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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