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에서 계열분리하는 LX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로 실리콘웍스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은 구본준(왼쪽) LG 고문과 손보익 실리콘웍스 사장.(사진=LG, 실리콘웍스)
▲ LG에서 계열분리하는 LX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로 실리콘웍스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사진은 구본준(왼쪽) LG 고문과 손보익 실리콘웍스 사장.(사진=LG, 실리콘웍스)

LX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는 무엇일까. 실리콘웍스를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1세기를 선도하는 반도체 산업에 속해 있다 보니 성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LG상사와 LG하우시스(건자재)가 성숙기 산업에 속한 회사란 점에서, 실리콘웍스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업계에선 실리콘웍스가 LX를 이끌 회사인지는 불투명하다는 평이 나온다. 실적이 매년 수직 증가하고는 있지만 포트폴리오가 다소 편중돼있고, 시장 변화에 따른 흐름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실리콘웍스의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는 그룹을 이끌 구본준 LG 고문의 결단력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 (사진=실리콘웍스)
▲ (사진=실리콘웍스)

실리콘웍스는 아날로그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회사)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빛이나 소리 같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실리콘웍스는 아날로그 반도체 가운데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동하게 해주는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집적회로(DDI)와 DDI에 화상 정보를 신호로 전달하는 티콘(T-CON) 등을 설계한다.

주력 상품은 DDI다. 2020년 연간 기준 총 매출 가운데 86.38%가 DDI에 집중돼있다. 실리콘웍스는 모바일 기기와 노트북·모니터 등 IT기기, 가전·TV 등 모든 사이즈의 DDI를 설계하며, 특히 고부가가치를 가진 OLED용 DDI에서는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 (사진=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

지난해 매출은 1조1619억원으로 창사 이래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매출증가율은 33.9%에 달했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99.2%나 늘어난 942억원으로 1000억원을 목전에 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 안에서의 활동이 늘며 TV, 모니터를 비롯해 가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에 패널 제조사들이 DDI를 비롯한 부품 재고 확보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LG라는 든든한 우군을 두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실리콘웍스는 LG디스플레이에 OLED TV 패널은 물론 스마트폰용 폴레드(P-OLED) 패널, LCD 패널에 들어가는 DDI를 대량 납품한다. LG디스플레이가 애플 아이폰에 패널을 공급하면서 실리콘웍스도 덩달아 수혜를 봤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해외법인 포함)에서 발생한 매출만 8619억원으로 전체 매출에서 74.2%를 차지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김찬우 연구원은 리포트에서 “2021년 OLED를 탑재한 아이폰 판매량은 1억8000만 대로 전년 대비 60% 이상 늘며 P-OLED용 DDI 수요도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라며 “전방 수요 급증으로 실리콘웍스의 P-OLED와 OLED TV용 비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각각 3260억원, 3250억원으로 전년 대비 61.5%, 62.9% 증가할 것”이라 내다봤다.

중국향 매출도 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매출(LG디스플레이 중국·광저우 제외)은 2699억원으로 2019년(1177억원) 대비 129.3%나 뛰어올랐다. 이 추세는 2021년 BOE와 CSOT 등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사들이 공장 증설에 나서는 것과 맞물려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단기적 성장세와 별개로 거시적 관점에서 실리콘웍스의 비전엔 ‘물음표’가 달려있다.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이 DDI에 쏠려 있고, 반면 다른 반도체에 투자하는 움직임은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회사의 현금·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은 2514억원에 달했다. ‘실탄’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뜻으로, 언제 다른 분야에 투자해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2014년 LG가 회사를 인수한 이래 실리콘웍스는 루셈과 LG전자의 시스템IC(2015년), LG전자 OLED TV용 티콘 사업(2018년) 인수 말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들 회사 인수 또한 디스플레이 부품 기술력 확보 차원이었다.

최근 KB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은 리포트를 통해 향후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과 실리콘 카바이드(SiC) 전력 반도체 등 성장성이 높은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등 장기적 사업 다변화를 예상하기도 했다.

MCU는 사물인터넷(IoT)과 맞물려 전반적인 가전 시장의 확장과 측면에서 유효하다. SiC 전력 반도체는 전기차와 우주항공 등에서 전력 효율이 높고 고온·고압에서의 내구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기존 실리콘(Si) 전력 반도체를 대체할 전망이다. 회사는 배터리 모니터링과 관리에 쓰이는 BMS IC에 대한 연구개발도 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황고운 KB증권 연구원은 “실리콘웍스가 신규 지주사에 편입되면 중장기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보유하고 있는 기반으로 MUC와 SiC 전력용 반도체 등 성장성이 높은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등 장기적으로 사업 다변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구본준 고문은 LG반도체의 마지막 사장으로 1998년 정부의 '빅딜정책' 하 '현대전자-LG반도체' 흡수합병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전력이 있다.
▲ 구본준 고문은 LG반도체의 마지막 사장으로 1998년 정부의 '빅딜정책' 하 '현대전자-LG반도체' 흡수합병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전력이 있다.

이런 예상은 과거 구본준 고문의 행보와도 맞물린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던 1998년 정부는 ‘빅딜 정책’이란 이름으로 현대전자에 LG반도체를 흡수합병토록 했는데, 당시 LG반도체 사장으로서 회사 매각을 거부했던 인물이 바로 구 고문이었다.

당시 구 고문은 LG반도체의 경영 주체로 현대가 적합하다는 아서 D.리틀(ADL)의 보고서에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와 전경련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회사를 매각했다.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바꾼 회사는 2012년 SK그룹에 인수돼 오늘날 연 매출 32조원, 시가총액 100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양대 반도체 회사 중 한 곳이 됐다. LG그룹에게 속 쓰린 역사다.

구 고문은 LG반도체를 매각한 1999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사장을 맡았다. 구본무 체제에서 LG필립스LCD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2003년 LCD 업계 1위에 올랐다. 업계에선 구 고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신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경영자로서의 역량도 뛰어나다는 평이 나온다.

또 한가지 주목할 건 실리콘웍스 손보익 대표의 직급이다. 손 대표는 계열분리하는 5개 계열사(LG상사·LG하우시스·LG MMA·판토스·실리콘웍스) 가운데 유일한 사장이다. 지난해 계열분리에 앞서 LG그룹 임원 인사에서 오직 손 대표만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대표이사 직급은 그룹 내에서 회사의 존재감을 가늠하는 핵심 잣대로 언급된다. 결국 손 사장의 승진은 회사의 계열 분리에 앞서 구 고문이 일찌감치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또한 LX그룹 내 유일한 사장 계열사란 점에서 구 고문이 실리콘웍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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