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스타트업]‘육식주의자’의 식탁을 바꾸는 지구인컴퍼니

발행일 2021-04-03 13:56:35
<블로터>는 지난 2월 11개의 벤처캐피털(VC) 및  액셀러레이터(AC), 스타트업 단체들을 대상으로 2021년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을만한 스타트업은 어느 곳인지에 대해 물었다. 각 단체들은 총 108개(중복 기업 포함)의 스타트업을 꼽았고 <블로터>는 유망 스타트업들이 속한  각 업종을 심층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108개 기업 중 일부 스타트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 CEO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일상과 기업의 비전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시작은 못난이 농산물이었다. 못생겨서 시장에 나가지 못한 전국 각지의 제철 과일·채소를 싼값에 내다 팔았다. 창고에 쌓인 재고는 가공식품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쉽게 버려지는 게 싫었다. 1020톤의 농산물을 ‘구조’했지만 곡물은 고민거리였다. 묵은 쌀, 남은 콩으로 생산한 가공식품들은 반응이 미지근했다. 2018년 무렵 미국에서 만난 친구가 곡물을 기반으로 만든 ‘임파서블 버거’를 알려줬다. 이때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도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 이 회사의 식물성 고기, ‘언리미트(UNLIMEAT)’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지난달 23일 서울시 서초구 사옥에서 만난 지구인컴퍼니 민 대표는 지구인컴퍼니에 대해 “지구환경에 덜 해로운 소비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여성중앙 기자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디딘 그는 다음커뮤니케이션 통합마케팅, 카카오 선물하기 마케팅, 우아한형제들 배민쿡 PM을 거쳐 4년 전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못난이 농산물을 유통하다 현재는 대체육인 언리미트를 생산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체육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 소고기는 1kg당 6810리터의 물이 쓰이지만, 식물성 고기에는 5583리터나 적은 1226t만 사용된다고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식물성 고기(1.59kg)가 소고기(7.25kg)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 때문에 윤리·환경적 이유로 비건을 택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지구인컴퍼니)

언리미트는 곡물로 만든 고기다. 현미·귀리, 견과류 등이 원료다. 식감이나 질감, 육즙, 맛과 향이 ‘진짜 고기’와 흡사하다. 철두철미한 ‘비건’(vegan·채식주의자)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나 유동적으로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flexible과 vegetarian의 합성어)이 이 회사의 타깃이다. 실제로 언리미트 구매자의 60% 이상이 육식주의자라고 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식도락(食道樂)을 포기하지 않고도 채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민 대표의 목표다.

“지구인컴퍼니의 지향점은 삼겹살 대신 언리미트를 먹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예요. 두유를 보고 가짜 우유라 말하지 않듯이 식물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영역의 고기로 받아 들여지길 바라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겐 두유가 대안인 것처럼, 고기를 먹고 싶지만 다른 선택을 하려는 분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고기 맛’ 나는 식물성 고기를 만들기까지

주력사업을 트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다. 우선 대체육을 연구·개발(R&D)해 줄 식품공학자부터 찾아다녔다. 미국에선 일찍이 임파서블푸드나 비욘드미트 등이 대체육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국내에선 보고 배울 본보기가 없었다. 마장동에서 고기를 떼다 견본품을 만들고 “이런 것을 만들어 달라”며 아웃소싱을 맡겼다. 기준은 진짜 고기에 뒀다. 식물성 고기에서 원하는 ‘고기 맛’이 날 때까지 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새벽엔 코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비용을 충당했다. 첫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 이를 발판으로 지난 2019년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여유가 생기자 내부 연구소를 차릴 수 있었다. 지난해 4월엔 100% 식물성 대체육을 생산하는 자체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8명이었던 직원은 43명으로 늘어났다.

언리미트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지구인컴퍼니는 구이용 고기부터 패티, 민스, 잘게 찢은 양념 바비큐 등 각종 육류를 구현해냈다. 개발 과정에서 화학첨가물은 가급적 배제하고 한국인 입맛에 맞는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민 대표는 “소고기는 버섯으로 식감을 잡았고, 콩 특유의 잡내는 마늘과 양파로 가렸다. 외국인 입맛에는 안 맞을 수 있지만 아시안 푸드테크 회사의 정체성을 맛과 형태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과는 곧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브웨이와 함께 ‘얼터밋썹’이라는 샌드위치를 선보였고 샐러드 프랜차이즈인 샐러디에도 공급을 시작했다. 이외에 몽크스부처 등 총 8개 식당에서 언리미트가 판매되고 있다. 해외로도 길을 뚫어 현재 홍콩, 중국, 미국, 호주 등지에 수출되고 있다. 2020년 ‘몽드셀렉션’ 동상을 수상한 데 이어 ‘아시아 알트(Asia Alt)100’에 선정됐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대형 육가공공장들의 가동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육류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자 식물성 고기가 대안으로 주목 받게 됐다. 지구인컴퍼니의 수출 물량도 덩달아 늘었다.

시장 전망은 밝다. 2008년 15만명에 불과했던 국내 비건 인구는 200만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FRA는 2018년 22조원 규모였던 전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가 2030년 11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는 한편, 지속가능성의 중요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동물복지 등을 추구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가능성을 인정 받은 지구인컴퍼니는 올해 1월 100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민금채 대표는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다양한 아이템을 빠르게 전환해가며 다루는 일이 몸에 배어 있던 덕에, 사업에서의 '모드 전환'이 보다 수월했다고 한다.(사진=지구인컴퍼니)

환경을 위한 고민은 계속...공장엔 국내 최초 탄소저감 시스템 도입

지구인컴퍼니는 또 다른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원료부터 제조 과정, 제품 용기까지 친환경을 추구하는 일이다. 못난이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던 시절, 신제품인 분말스프를 담을 생분해성 용기를 구하기 위해 1년여간 발품을 팔았다. 우여곡절 끝에 제품을 내놨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뼈 아픈 실패였다. 경험을 거름 삼아, 제품을 성공시키면서 친환경 제조·포장 등을 개선해 나가는 길을 찾고 있다. 언리미트의 경우 곡물로 고기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까지는 원료를 100% 재고로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적용하지 못했다. 국내에는 사용 가능한 100% 생분해성 트레이가 없어 코코넛 원료로 만든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고 있다. 이를 바꿔 나가는 게 지구인컴퍼니에게 주어진 숙제다.

불필요한 포장이라도 최대한 간소화하고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민 대표는 “식품회사라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패키지도 줄이고 불필요한 라벨도 떼어내고 싶지만 현행법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면서 “새벽배송을 하는 회사들은 종이박스로 냉동식품을 보내면 변질이 돼 이 역시 당장은 대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100%는 아니어도 가능한 수준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우아한형제들’ 출신 창업가들은 이른바 ‘배민 마피아’로도 불린다. 민금채 대표 역시 ‘마피아’의 일원이다. 언리미트 제품 개발단계에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맛 평가를 해주기도 한다. 지구인컴퍼니의 조직문화를 비롯해 마케팅 방향, 성향이 맞는 투자자 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때 김 의장에게 조언을 구한 적도 있다.(사진=지구인컴퍼니)

투자 유치로 얻은 ‘실탄’으로는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공장에는 탄소 저감이 가능한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로 했다.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과정이 환경에 기여하는 바를 ‘데이터화’하겠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재고를 얼마나 없앴고, 소비했고, 물은 얼마나 썼고 탄소저감 효과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며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수치를 측정해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이 실현되는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식물성 차돌박이를 개발하고 하반기에는 만두를 출시한다. 소시지, 갈비, 스테이크로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다양한 식물성 고기를 만들고 많이 팔아 더 많은 재고를 처리하는 게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공격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민 대표는 “아시아에는 대체육을 개발하는 회사가 드물다. 미국에 이어 유럽으로도 진출해 아시아의 ‘팬시’한 식물성 고기 회사로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맛있고, 포만감 있는 채식을 즐길 수 있도록 일상을 바꿔 나가고 싶어요. 이렇게 소비하는 식물성 고기가 탄소를 저감한다는 데 또 한번 만족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맛있게 먹으면서 지구의 건강까지 챙기는, 가치·환경소비를 돕겠습니다.”

▲ 2,000명 이상이 맛 본 식물성 고기로 만든 밥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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