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GS②]'애자일' 가로막는 가문 경영...'산업 격변기' 득될까

발행일 2021-04-09 13:33:34
왼쪽 허창수 GS건설 회장, 오른쪽 허태수 GS그룹 회장.(사진=각사)

1897년 설립된 200년 전통의 프랑스 자동차 회사 푸조(현 PSA그룹)는 대표적인 가족 경영 회사다. '푸조 패밀리'는 1936년 가문의 재산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룰'을 정했다. 모든 주식은 아들에게만 상속되고 딸과 사위는 배제된다. 푸조는 가족들만 참여하는 파트너십에 의해 지배됐다. 아들은 지분과 의결권이 주어졌고, 의결권의 수는 나이와 경험에 따라 증가했다.

'가족에 의해, 가족을 위해' 운영됐던 푸조의 현 최대주주는 '푸조 패밀리'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와 중국 둥펑자동차가 각각 14%의 지분을 갖고 있고, 푸조 가문은 2.91%의 지분을 갖고 있다. 푸조 패밀리는 이사회에서도 제외됐다. 현재 푸조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합병했고, 스텔란티스(Stellantis)라는 사명으로 재출범했다.

스텔란티스의 지분은 50대 50으로 CEO는 카를로스 타바레스가 맡고 있고, 존 엘칸 현 FCA 회장이 신설 법인의 회장을 맡게 됐다. 푸조 가문은 PSA의 지분 일부를 갖고 있을 뿐 경영에도 일절 참여 못하고 있다.

푸조 로고.(사진=푸조)

푸조의 몰락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출발했지만, 위기의 본질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다. 가족 중 유능한 경영인을 배출해 '소유와 경영'을 맡게 하려고 한 푸조 가문의 꿈은 결국 실패했다.

푸조 가문의 이야기는 국내 재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대그룹들 중 다수는 가족을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이중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순위 기준 8위인 GS그룹은 '가문 경영'을 위주로 운영되는 대그룹이다.

푸조 가문에서 GS그룹을 떠올린 건 최근 국내 산업계가 격변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전통산업의 노화 속도는 빨라지고, 제조업은 스마트와 친환경, 재생 에너지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SK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포스코그룹 등은 2차전지와 수소, 재생 에너지 위주로 사업구조를 속도감있게 재편하고 있다. 반면 GS그룹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GS건설이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GS칼텍스는 자사의 주유소에 전기차·수소차 충전스테이션을 구축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 중 어느 곳도 M&A를 통해 미래 사업에 진출하거나,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밸류체인을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GS는 계열회사와 함께 지난해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를 위해 'GS퓨처스'와 'GS비욘드'를 설립했다. 계열사 10곳이 출자한 금액은 1억5500만 달러(한화 1700억원) 규모로 금액도 크지 않은 데다 시기적으로 뒤쳐졌다는 설명이다. 계열사인 GS에너지는 지난해 M&A 전문가인 리먼브라더스 출신의 강동호 상무를 신사업부문장으로 임명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GS그룹 특유의 '가문 경영'이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GS건설을 제외하면 나머지 계열사들은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오너일가가 참여하는 '가족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말 기준 ㈜GS 지분현황.(자료=금융감독원)

GS그룹은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가족회의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너일가가 지분을 잘개 쪼개 쥐고 있는 만큼 오너일가 간 의견을 일치 하기 어려운 구조다.

GS그룹은 허태수 그룹 회장(전 GS홈쇼핑 부회장)을 비롯해 48명에 달하는 오너일가가 ㈜GS의 지분을 쪼개 나눠들고 있다. 오너일가의 지분은 총 52.12%에 달한다. 오너일가가 그룹 지주사의 지분을 50% 넘게 갖고 있어 막강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유교적 가풍과 지분 관계 등으로 인해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그룹 지배구조는 투자형 지주사인 ㈜GS가 에너지와 유통 등 계열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GS건설은 사실상 허창수 회장의 개인회사로 분류돼 있다.

전임 회장인 허창수 회장(현 GS건설 회장) 시절에는 그룹 회장의 입김이 현재보다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회장이 2004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후 자리를 잡는 데 있어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게 영향을 미쳤다.

2019년 2대 회장인 허태수 회장 체제로 바뀌었고,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과 허윤홍 GS건설 신사업부문 사장 등 4세 간 경쟁이 치열해져 그룹의 미래 전략을 짜는데 있어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여타 대그룹들은 전통산업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수소와 재생 에너지 등 미래 산업으로 전환할 채비를 마쳤는데, GS그룹은 미래사업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수준에 그쳐 있다.

㈜GS는 최근 친환경과 바이오 분야의 6개 스타트업 회사를 그룹 차원에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GS는 계열사와 함께 스타트업 회사의 사업화를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은 데다 벤처 회사의 사업화를 지원한다는 것 외에는 구체성이 떨어진다. SK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수소 등 친환경 분야에 수조원의 투자금을 배정한 것과 대비된다. 

GS그룹은 M&A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했지만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GS건설이 중점으로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사업에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8500억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 등이 부담돼 인수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접은 데는 여타 오너일가의 눈치를 봤다는 의견도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자산총액 5조원의 대기업이다. 연간 1000억~20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GS건설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허창수 회장의 개인회사인 GS건설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질 수 있어 부담이 됐다는 설명이다.

GS그룹의 2000년 이후 대형 M&A 추진 사례.(자료=언론 등)

GS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CJ대한통운(2008년) △하이마트(2012년) △아시아나항공(2019년) 등 빅딜에 참여했지만 인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특히 CJ대한통운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류 수요가 높아지면서 인수했다면 그룹 성장의 한축을 담당했을 것으로 예상돼 아쉬움이 남는다.

재계는 GS그룹이 '가문 경영'으로 인해 그룹 성장을 견인할 전략적인 사업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제조업에서 미래 사업으로 꼽히는 유망 사업들은 막대한 자본적 지출(CAPEX)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신속한 의사결정과 함께 내부와 외부에서 투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가족 간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는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그룹들이 관심을 보이는 수소는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사업을 육성하는데만 수조원이 들어간다"며 "미래 사업은 불확실성이 있지만 성공할 경우 성장성이 커 그룹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GS그룹의 지배구조에서는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뛰어 들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GS 주요 인물 가계도.(자료=GS그룹 등)

오너일가의 구성원들이 그룹의 주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은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안정적이다. 가족 간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낮고, 50여명의 오너일가가 지분을 나누어 보유하고 있어 특정 인물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 이런 점은 3세·4세 경영 체제를 맞은 기업이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은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있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문 경영의 단점은 주로 산업 격변기 두드라지게 나타난다. 사업이 잘 되고 수익이 많이 날 때는 오너일가 구성원들 간 불협화음도 적다. 그런데 성장이 침체되고 산업구조가 바뀌는 산업 격변기에는 가문 경영의 비효율성은 수면 위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가문 경영이 중심이 된 미국 포드와 프랑스 푸조의 사례가 한 예다. 200년 역사의 푸조는 위기 때마다 가족들이 똘똘 뭉쳐 대응했다. 그런데 2014년 가족 간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외부 지원을 받기로 했고 결국 지배구조가 바뀌었다.

반면 포드는 2008년 위기를 겪었는데 창업주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 회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가문이 똘똘뭉쳐 대응했다. 당시 GM과 크라이슬러의 오너는 경영권을 뺏겼지만, 포드는 미국 완성차 회사 중 유일하게 경영권을 지켰다.

국내 대그룹 중 가문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곳은 '범 LG가'와 두산그룹이 있다. 범 LG가는 LG그룹과 LG에서 계열분리된 GS그룹과 LS그룹, LIG그룹이 있다. 범 LG가는 '대대손손' 자손이 많은 집안이었다. '피자를 같이 먹지 않으면 적이 될 일이 없다'는 말처럼 범 LG가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가문 중심의 경영 문화가 산업 격변기에는 기업가치를 높이고 경영 효율을 높이는 데 어울리지 않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범 LG가는 오랜 기간 인화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재 같은 격변기에는 성장동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추진력 또한 중요하다"며 "GS그룹은 승계 이슈 등이 있어 3세와 4세 등 오너일가가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GS의 가문 경영은 그룹이 강조한 '애자일(기민함과 민첩함)' 경영을 하는 데 있어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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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호
    윤정호 2021-04-10 00: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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