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이번 분쟁으로 미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조지아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11일 오후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분쟁을 종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양사의 공식발표와 별개로 추가 입장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은 합의금 명목으로 2조원(현금 1조원, 로얄티 1조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장기간 지속된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한 한국과 미국 행정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며 "미국 내 배터리 사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추가 투자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추가 입장문을 통해 "이번 합의로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이 인정받았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양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은 "전세계적인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고, 전기차를 확산시킬 수 있게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비교적 평이한 수준의 추가 입장문을 발표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의 설명에는 두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의 '넷 제로' 정책과 경제 성장의 파트너사라고 밝힌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의 친환경 정책과 조지아주의 경제 성장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미국 백악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미국 백악관)

SK이노베이션, 합의금보다 큰 브랜드 홍보 효과 얻을 듯

이는 SK이노베이션이 보도자료를 통해 스스로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주요 배터리 업체는 일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이 있다. SNE 리서치가 발표한 1·2월 배터리 사용량 조사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점유율 19.2%)이 2위, 파나소닉(17.2%)이 3위이다. SK이노베이션(5.0%)은 6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10위권 업체(중국 AESC 제외) 중 미국에 생산기지를 갖춘 곳은 3곳 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10GWh 규모의 1공장을 완성했고, 2023년 완공을 목표로 10GWh 규모의 2공장을 짓고 있다. 현재까지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생산해 납품한 배터리는 없는 셈이다.

▲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사진=SK이노베이션)

이는 LG에너지솔루션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미시간주에 5GWh 규모의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 연간 전기차 2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GM과 합작공장 '얼티엄 셀즈(Ultium Cells)'를 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점유율 1위와 2위를 다투고 있는 만큼 미국 내에 생산기지를 갖고 있고, 영업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제 막 미국 현지에 진출한 업체다. 독일 폭스바겐 및 미국 포드와 납품계약을 체결했지만, 미국 공장이 양산을 하지 않은 만큼 현지 생산·현지 납품한 '트랙 레코드'는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을 계기로 단숨에 미국 내 주요 배터리 업체로 급부상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캐서린 타이 대표는 지난 2월 ITC 판결 직후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고위 임원과 조지아주 상원의원을 여러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은 미국 대통령이 ITC 판결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권고문을 작성해 보내고 있다.

그런데 USTR이 LG와 SK의 '배터리 전쟁'에서 권고문을 작성하기 보다 중재에 나선 것이다. 2013년 애플의 삼성전자 특허 침해 판결과 관련해서는 USTR은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과 2021년을 동일선에 두고 비교하기 어렵지만, USTR이 이례적으로 중재에 나선 점은 분명하다.

SK이노베이션의 생산 중단으로 빚어질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USTR이 중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공장에는 3조원이 투자되고, 26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이번 갈등을 계기로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에 주요한 영향을 차지하고 있음을 미국 행정부에 과시할 수 있었다"며 "이번 갈등으로 2조원의 합의금을 납부하게 됐지만, 미국과 글로벌 전역에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는 최근 들어 실적보다 브랜드와 같은 무형 자산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이 2030년까지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밝히면서 새로운 대형 납품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갈등이 자사의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미국 행정부에 '넷 제로'를 추진할 파트너사임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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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5G 기지국의 30%를 중국 화웨이(Huawai) 장비를 사용해 문제가 됐다. 지난해 미국 의회는 군사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와 ZTE 등 중국산 통신 장비를 쓰는 국가에 미군 파병 등을 재검토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는 화웨이산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동맹국에 요청했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을 계기로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주목받았다. ITC 판결이 효력을 발휘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향후 10년 동안 미국에서 생산을 할 수 없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 판결을 명분으로 삼아 SK이노베이션을 압박했다. 결국 USTR의 중재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은 봉합됐다.

ITC 판결이 수용될 경우 미국 남동부의 배터리 '밸류체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ITC 소송이 결과적으로 미국 내 밸류체인에 악영향을 가져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미국민의 이익(American's interest)'을 최우선으로 하는데, LG와 SK가 분쟁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렛대'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LG·SK 합의는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업계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의 혜택이 자국의 산업에 돌아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이번 소송은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의 법적 소송이 배터리 산업의 지식재산권을 세계적으로 여론화하는데 기여한 건 긍정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양사가 합의 가능성 없이 '강 대 강'으로 대치해 제 3자인 미국 행정부가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 모두 미국에 3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공장은 수요를 먼저 고려한 후 증설해야 하는데, 두 회사 모두 미국 행정부에 '손짓'하기 위해 증설 계획부터 밝힌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1년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분쟁의 경우 객관적인 특허보다 디자인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SK와 LG의 소송 또한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을 중심으로 진행된 만큼 향후 부정적인 여파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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