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LG·SK]신학철·김종훈 'MVP'로 각인...최태원·구광모 회장 빠졌던 소송 '

발행일 2021-04-12 14:30:42
왼쪽 최태원 SK 회장, 오른쪽 구광모 LG 회장.(사진=각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11일 SK측의 영업비밀 침해로 불거진 '기나긴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SK이노베이션은 2조원(현금 1조원, 로열티 1조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하면서 이번 분쟁을 종결했다.

이번 분쟁은 2011년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이었다. 국내외 주목을 한몸에 받았고, 국내에서 불거진 분쟁이 미국 행정부의 중재로 막을 내린 점도 특이점이다.

업계는 이번 분쟁에서 활약한 주역으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을 꼽고 있다. 신 부회장은 LG화학의 사내이사, 김 의장은 SK이노베이션의 사외이사이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양측에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이끌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재계 3위와 4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그룹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이번 소송과 시작부터 끝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SK와 LG의 '배터리 분쟁'은 사실상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음에도 그룹을 대표하는 오너가 '수수방관'한 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이번 분쟁을 조기 해결하려면 이른바 '빅딜'을 위한 오너의 역할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신학철 부회장이 쏘아올린 공, 김종훈 의장 깐 '판'에 정리됐다

이번 분쟁의 이른바 'MVP(최우수선수)'로 꼽히는 신학철 부회장과 김종훈 의장부터 살펴보자. 신 부회장은 2018년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면서 데려온 첫번째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다. 그는 1984년 3M 한국지사 평사원으로 입사해 필리핀 지사장과 본사 비즈니스그룹 부사장을 거쳤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사진=LG화학)

신 부회장은 LG화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데려온 인사였는데, 그의 재능은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빛났다.

3M은 자사의 특허를 침해받았을 경우 법적 소송을 통해 대응했다. 여타 LCD용 광학 필름과 달리 프리즘시트는 3M이 원천 특허를 갖고 있다. 3M은 지적재산권을 사수하기 위한 분쟁을 세계 곳곳에서 벌였다. 3M은 2015년 국내 LCD용 프리즘시트 제조업체인 LMS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3M은 2007년 LM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패소했다.  

3M은 LG하우시스에 접착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아모센스에는 '나노결정립자기장 차폐시트'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해외 업체와 다수의 특허 소송이 있었다.

신 부회장은 3M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특허 분쟁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었던 만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여론화시켰고, 해외 법원으로 이번 소송을 가져갔다. LG화학은 2019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특허침해 소송과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해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셀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소송을 신청했다. 

LG화학은 국내 소송과 해외 소송을 동시에 진행했고, 해외에서는 준사법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와 사법기관인 지방법원에 동시다발로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은 2019년 11월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이유로 무변론판결(default judgement)'을 신청했다. 무변론판결은 피고가 소송과 관련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경우 원고의 의견을 토대로 결정한다는 의미다.

LG화학은 소송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빠져나갈 수 없게 '운신의 폭'을 크게 좁혔다. 이는 특허 소송에 경험이 많은 신학철 부회장의 '노하우'가 통했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칫 흐지부지될 수 있었을 소송을 국내외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배터리 전쟁'으로 키울 수 있었던 건 신학철 부회장의 공이 컸다"며 "LG는 소송으로 명분과 합의금을 모두 챙겼다"고 말했다.

김종훈 의장은 지난 2월 ITC 판결 직후 전면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저하게 낮추는 요구는 수용 불가능하다"고 감사위원회 성명을 통해 못박았다. LG에너지솔루션에 조 단위 합의금은 지급할 수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사진=SK이노베이션)

이후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 의회 등 정관계 인사를 두루 접촉했다. 그는 미국 ITC의 판결이 수용될 경우 SK이노베이션 조지아주 공장을 유럽으로 옮기겠다며 거부권 행사를 읍소했다.

같은 시기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를 만나 합의를 종용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ITC 판결을 수용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낸 샐리 예이츠 전 차관을 영입했다.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마감을 약 보름 앞두고 전방위적인 로비전에 나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당시 한국 측 대표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김종훈 의장의 인맥도 '풀가동'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의에 이르렀고, 합의금도 최소 1조원 이상 낮출 수 있었다. 김종훈 의장은 자신의 보수(8400만원) 이상의 역할을 해냈고, SK이노베이션에 기여할 수 있었다.

글로벌 관심 '배터리 전쟁'서 쏙 빠진 최태원·구광모 회장

신학철 부회장과 김종훈 의장은 이번 배터리 전쟁에서 제 몫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LG와 SK의 오너인 구광모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이번 소송에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두 오너는 이번 분쟁에서 '이선후퇴'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두 오너가 독대해 '빅딜'을 성사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재계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두 오너의 만남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두 오너는 지난달 31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최 회장과 구 회장은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오너는 이번 분쟁이 발생한 2019년부터 현재까지 소송과 관련한 발언을 삼가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사진=SK)

최 회장은 ITC 판결 직후인 지난 2월19일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배터리의 기술 미래' 환영사를 통해 짧게 언급했다. 최 회장은 "배터리 시장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학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의 오랜 협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배터리용 신소재 개발과 배터리 생태계 확장이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배터리 소송 합의가 있기까지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번 현안은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실무진 선에서 마무리하라는 의미였다.

구광모 LG 회장(오른쪾)이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연구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LG)

재계는 이번 소송은 오너가 직접 나서 풀어낼 사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회장으로 취임했고, 최태원 회장은 1998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회장이 최 회장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불만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두 오너 모두 이번 소송 시작부터 끝까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두 그룹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이번 소송이 확전되지 않고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소송은 국내에서 시작돼 해외로 이어졌고, 중재가 되지 않아 미국 행정부에서 나서서 풀었다. 배터리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며, 국내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합의를 종용했다.

하지만 두 오너는 나서지 않았고, 결국 양사의 고위급과 USTR이 거부권 행사 마감시한 직전 가까스로 합의를 일궈냈다는 평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11년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전쟁 당시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게 잘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고 이건희 회장은 "애플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며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기술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그런 견제에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너인 이 회장이 애플과의 특허 전쟁에서 '물러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이번 배터리 전쟁에서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과 달리 SK와 LG 두 오너의 공식적인 메시지는 없이 마무리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분쟁은 애플과 삼성전자 이상으로 확전됐다"며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국내 기업 간 분쟁을 의식해서인지 공식적인 발언이나 상대를 자극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두 오너의 통큰 결단이 있었다면 이번 분쟁이 3년이나 끌지 않고 조기 해결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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