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GS④]‘혁신은 있고 투자는 없다?’...재무통 허태수의 보수적 성향

발행일 2021-04-12 15:10:19
허태수 GS그룹 회장.


지난해 허태수 GS그룹 회장 취임 이후 GS는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신성장동력 찾기에 혈안이지만 과연 대규모 투자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현재까지 GS의 투자는 스타트업 위주의 소규모로만 이뤄지고 있고, 허 회장도 과거 GS홈쇼핑 시절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경험이 없다.

물론 혁신을 위해 대규모 M&A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이 “새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 도전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며 자리에서 내려온 만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중요도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게다가 대규모 M&A 외에 단 번에 신사업을 장착할 수 있는 별도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10년간 3600억 투자, 많았나 적었나

허 회장은 지난해 그룹 지주사인 ㈜GS 회장을 맡기까지 무려 18년이란 시간 동안 GS홈쇼핑에 몸담으며 사업을 키웠다. 2002년 GS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부임한 뒤 이듬해 바로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LG그룹에서 계열분리 되고 2년 후인 2007년에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돼 10년 넘게 GS홈쇼핑을 이끌어왔다. 사실상 현재 GS홈쇼핑을 국내 대표 홈쇼핑 사업자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GS홈쇼핑 실적 추이.(출처=GS홈쇼핑 사업보고서.)


지난 10년간 실적을 보면 GS홈쇼핑은 매년 꾸준히 매출을 늘려왔다. 2011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2020년까지 매출규모가 1조원을 밑돌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19년과 2020년에는 2년 연속으로 1조2000억원 규모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 규모는 매해 편차는 있지만 1000억~1600억원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허 회장은 GS홈쇼핑 시절 꾸준히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그룹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GS의 보수적인 경영문화와 투자성향을 감안하면 허 회장의 이 같은 스타트업 투자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GS홈쇼핑 내 벤처투자팀을 신설했고 2014년에는 이 팀을 미래사업본부로 확장하며 투자에 힘을 실었다.

허 회장이 2011년부터 GS홈쇼핑에서 투자한 스타트업 수만 600여개에 달하며 총 투자금액은 3600억원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는 2013년 160억원을 투자한 전자상거래 업체 ‘텐바이텐’, 2017년 500억원 어치 지분을 투자한 NHN페이코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소셜 네트워크 빙글, 마케팅 플랫폼 픽스리, 중고거래 플랫폼 헬로마켓, 반려동물 용품 배달 서비스 펫프렌즈 등 수없이 다양한 사업들에 투자했다.

다만 GS홈쇼핑의 이러한 투자 레코드는 벤처투자사로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계 8위의 대기업집단에게 어울릴 만한 투자전략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10년 넘게 회사를 경영하며 투자한 총액이 3600억원이라면 적은 편이다”고 말했다.

GS홈쇼핑 관계기업 투자내역.(출처=GS홈쇼핑 사업보고서.)


게다가 GS홈쇼핑이 지분투자한 업체들의 호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GS홈쇼핑의 관계기업 재무정보를 살펴보면 순손실을 내는 업체들이 흑자업체보다 더 많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관계기업으로 설정된 총 28개 업체 중 22개 업체가 순손실을 기록했다.

GS홈쇼핑이 2019년 60억원을 투자한 밀키트 업체 프레시지는 지난해 600억원의 순손실을 냈으며, 2015년 투자한 비디오 스트리밍회사 ODK미디어는 1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또 2012년 중국의 차이나홈쇼핑그룹과 합작해 만든 중국법인도 148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이외에도 스포카, 헬로마켓, 제로웹, 다노, 픽스리, 펫프렌즈 등이 모두 순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스타트업 업체 특성 상 사업 초반 적자를 내는 경우가 많다. 또 GS홈쇼핑이 투자 후 지분매각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어 이를 절대적 경영지표로 삼기는 어렵다.

현금 풍부했는데도...‘베팅’ 없었다

허태수 회장은 GS홈쇼핑에 몸담기 전 증권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투자와 재무감각을 익혔다. 1986년 콘티넨탈은행을 시작으로 1988년 LG증권에서 M&A팀장과 국제금융팀장 등을 거쳤다. 2002년 GS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기기 까지 16년 동안 증권맨으로 살았다.

이처럼 증권업계에서 오래 생활했음에도 투자본능은 스타트업 투자에만 제한적으로 발휘됐다. GS홈쇼핑이 안정적인 재무상태를 바탕으로 항상 대규모 실탄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베팅을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GS홈쇼핑 재무지표 추이.(출처=GS홈쇼핑 사업보고서.)


실제로 과거 10년치 GS홈쇼핑의 재무상태 추이를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GS홈쇼핑은 단 한 푼도 남의 돈을 빌리지 않고 회사를 경영해왔다. 차입금, 사채 가릴 것 없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차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2018년 처음으로 차입금을 인식했지만 그 규모는 5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부채비율 26.9%로 더 이상 좋을 수도 없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현금은 항상 풍부했다. 2011년 3200억원규모의 현금성자산은 2014년 8100억원까지 불어났다. 2015년부터는 매년 6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사마음만 먹으면 1조원도 넘는 M&A를 계열사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상태가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온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오랜 기간 현금활용의 기회를 놓쳤다고도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보수적 경영은 GS그룹의 특성과 허 회장의 재무통 경력이 더해져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GS그룹 계열사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재무상태를 유지하는 편이지만 GS홈쇼핑은 특히나 재무관리 상태가 뛰어나다”며 “재무출신 경영인들이 회사를 경영할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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