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폐인] 중국 난창의 '트랜스포머 그녀'

발행일 2021-04-12 19:36:20
여행이 사라진 시대다. [디카폐인]은 디지털카메라에 담아둔 여행 사진을 꺼내 보는 코너다. 시간이 흘렀지만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 여행의 기억과 인상적인 장면을 소환해본다. 여행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길 꿈꾸며.
중국 용호산 풍경구 (중국국가여유국 홈페이지 갈무리)

10여 년 전, 중국 여행 초창기의 일이다. 중국 장시성의 중심 도시인 난창(南昌)에 갔을 때였다. 난창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용호산(龍虎山)을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용호산은 도교의 발상지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명소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는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돌아보는 것이 명물로 꼽힌다. 

용호산에 가기 전에 난창 시내의 한 호텔에 머물렀다.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오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TV를 틀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가 쏟아졌다. 당시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시간을 보낼 것이 없었다. 무료하게 누워 있다가 같은 방을 쓰는 동료와 함께 거리 구경을 나섰다. 

무작정 나간 터라 목적지는 딱히 없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보이는 것은 넓은 공원, 뻥 뚫린 도로 정도였다. 북적이는 시장 같은 것을 생각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간단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난창 시내의 노점상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왕 나온 김에 호텔 근처를 벗어나 좀 더 가보기로 한 것이다. 공원을 돌아보고, 허름한 상점에 들르기도 하고 정처 없이 쏘다녔다. 한참 그러다 보니 배도 고프고 지쳤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라도 온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왔던 길이 어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을 걸어오기도 했고, 도중에 특별한 이정표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책 없이 너무 멀리 걸어온 것. 여기인가 싶어서 가면 새로운 곳이었다. 중국은 상상 이상으로 넓다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지도 앱을 이용하거나 번역 앱을 통해 물어서라도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와 나는 스마트폰 대신 일반폰을 대여한 상태였다. 그래도 아직은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곳곳에 큰 호텔이 보였다. 들어가서 직원에게 물어보면 가는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텔 내 직원 누구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난창 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찍은 호텔 사진. 당시의 혼란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른 호텔에 가봤지만 마찬가지로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허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 호텔 이름은 2가지였다. 예를 들어 중국어로는 ‘난창 호텔’로 읽지만 영어로는 ‘임페리얼 호텔 난창’이라고 쓰는 식이었다. 백날 영어명을 말해도 중국인이 못 알아듣는 이유였다. 

택시도 탈 수 없었다. 이렇게 헤맬지 몰라서 현금을 갖고 나오지 않았다. 한국처럼 신용카드만 있으면 모든 결제가 가능한 곳이 아니었다. 영어를 모르는 택시기사와 ‘도착해서 주겠다’는 흥정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더욱 깊어졌다. 길에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중국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기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안이하게 길을 나선 우리를 탓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젊은 여성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상의 왼쪽에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오토봇 심볼’이 수놓아져 있었다. 어쩐지 느낌이 왔다. 그녀에게 다가가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스 아이 캔”.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오토봇 로고

허접한 우리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듣던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너희 너무 멀리 왔다”며 “걸어가면 오래 걸릴 테니 택시를 타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금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지갑을 꺼내더니 “이걸로 가라”면서 위안화 지폐 몇 장을 줬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당황했다. 길을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택시비를 주다니. 못 받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웃었다. 우린 그렇게 서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중국의 모 대형은행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도 진출한 유명 은행이었다. 중국에서도 대형 은행에 다니려면 외국어 실력은 기본인 듯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눈을 반짝이며 반가워했다. 한국을 무척 좋아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낯선 땅에서 한국에 호의적인 사람을 만나다니. 한류 열풍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우리는 “나중에 한국 오면 꼭 연락하라”고 말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택시를 잡아준 그녀는 기사에게 택시비를 선납하며 무언가를 신신당부했다. 아마 외국인이니 잘 부탁한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녀의 배려 덕분에 택시를 타고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했는데 참으로 운이 좋았다.  

난창 용호산 풍경구 전경 (중국국가여유국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에서 만난 그녀는 트랜스포머의 착한 로봇,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우린 일정 때문에 다시 난창 시내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녀 역시 한국에 온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스쳐 간 인연이지만 그때의 경험은 강렬했다. 우선 당시 갖고 있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그리고 한 번의 좋은 경험이 얼마나 크게, 오랫동안 작용하는지도 깨닫게 됐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딜 가더라도 그때처럼 난감한 경험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더 좋은 여행 관련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고, 현지인과 접촉할 일도 사라질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여행은 편리하지만 어쩐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 이후 길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외국인을 보면 근처를 맴돌곤 한다. 오해할 수도 있으니 먼저 말은 못 걸지만 혹시나 도움을 요청할까 싶어서다. 언젠가, 미처 갚지 못한 중국인 여성의 선행을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전할 기회가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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