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주요 경영진.(사진=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주요 경영진.(사진=삼성전자)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기업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삼성은 1938년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태동했다.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 그리고 이재용 회장까지 현재 3대째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순위 1위의 그룹이다. 자산 총액은 424조원, 계열회사 수는 59개에 달한다.

삼성의 자산 규모는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농협 △신세계 △KT △CJ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 이들 회사의 자산총액을 합하면 422조원, 삼성은 424조원이다. 이 굴지의 대그룹을 이끄는 컨트롤타워는 현재 공식적으로 없는 상태다.

삼성은 2017년 '박근혜-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미래전략실의 전신은 회장 비서실이다. 회장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꿨고 미래전략실을 끝으로 해체됐다.

'명암'을 안고 사라진 미래전략실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이 고 이건희 회장의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과거 비서실이나 미래전략실과 같은 '팀'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규모만 12조원에 달한다. 유족들은 코로나19 등 감염병 예방과 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1조원을 기부하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 개인소장 미술작품 2만3000여점을 국립기관에 기증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역대급 상속이다.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의 상속은 누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자문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 것이다.

▲ 이건희 회장 주식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이건희 회장 주식 현황.(자료=금융감독원)

특히 상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증여 방식에 따라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될 수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될 수도 있다. 재계에서는 선친 타계 후 형제가 경영권을 두고 지분 다툼을 벌인 사례가 여럿 있다.

그룹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사전 정리와 준비 작업, 그리고 후속 작업을 위해서도 모종의 '상속 관련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해체되지 않았다면 미래전략실이 상속 절차를 마련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 전신인 구조조정본부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쓴 저서 '삼성을 생각하다'에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김 변호사는 "(구조조정본부인) '실'은 회장의 분신"이라며 "구조조정본부 팀장은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기 위해'라는 말을 자주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구조조정본부가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이건희의 이익"이라며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 삼성그룹 콘트롤타워 추이.(자료=김용철 변호사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 및 언론 등)
▲ 삼성그룹 콘트롤타워 추이.(자료=김용철 변호사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 및 언론 등)

삼성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25일 타계했고, 미래전략실은 2017년 해체됐다. 삼성전자 홍보팀은 언론기사에 '삼성그룹'이라고 적시될 경우 "그룹은 해체됐다"고 읍소한다.

이번 상속 절차 또한 이재용 부회장과 그의 최측근에 있는 임원과 실무진이 마련했을까. 아니면 미래전략실을 대체할 별도의 '팀'이 구성됐을까. 재계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구성된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번 상속절차도 이 TF가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9년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서 회사 노트북이 여러대 발견돼 검찰에 압수됐다. 이를 토대로 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과 증거 인멸은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의 주도로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사업지원 TF를 신설했다. TF는 미래전략실 출신인 정현호 사장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TF에는 △안중현 부사장(TF 담당임원) △최윤호 부사장(TF 담당임원) △김홍경 전무(TF 담당임원) △이승욱 전무(TF 담당임원) △주창훈 전무(TF 담당임원) △손성원 상무(TF 담당임원) △윤준오 상무(TF 담당임원) △조기재 상무(TF 담당임원) △문희동 상무(TF 담당임원) △이제현 상무(TF 담당임원) △최광보 상무(TF 담당임원)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대부분은 미래전략실의 지원팀과 인사팀, 기획팀 출신이다.

현재 사업지원 TF의 인원은 15명으로 임원 3명이 추가됐다.△정해린 부사장 △이병준 부사장 △박순철 전무 △이동우 전무 △여형민 상무 △김장경 상무 △구자천 상무 △이재영 상무 △이종민 상무가 사업지원 TF에 들어갔다. 미래전략실은 해체됐지만, 사업지원 TF가 미래전략실의 몸집을 줄여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 일각의 추측이다.


▲ 정현호 사업지원 TF장.(사진=삼성전자)
▲ 정현호 사업지원 TF장.(사진=삼성전자)

정현호 TF장은 1990년대 이재용 부회장과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건희 시대' 이학수 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장이 있었다면, '이재용 시대'에는 정현호 TF장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그의 저서에서 "이학수의 가장 큰 역할은 이재용에게 그룹을 넘겨주는 작업이었는데, 이를 위해 숫자에 뛰어난 김인주(재무 전문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같은 대그룹을 운영하려면 컨트롤타워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더라도 유사한 역할을 할 기구는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번 상속 절차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미래전략실과 유사한 기구가 오래도록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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