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전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진=삼성전자)
▲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전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진=삼성전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이나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홍성원을 보내서 그림을 사들였는데, 그 규모가 연간 550억~600억원 어치였다.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홍라희가 산 것이었다. 홍라희가 쓴 돈은 대부분 비자금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학수, 김인주가 걱정을 많이 했다.”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쓴 문장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배우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집착에 가까운 미술품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버랜드 창고에 보관한 고가 미술품 발각, 홍성원 전 서미갤러리 대표와의 소송도 홍 전 리움미술관장의 미술품 사랑을 꺾진 못했다.

그렇기에 미술 업계에선 ‘이건희 컬렉션’ 국립기관 기증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건희 컬렉션엔 홍 전 리움미술관장의 지분도 컸기 때문이다. 홍 전 리움미술관장은 서울대 응용미술학을 전공하고 결혼 뒤에도 경영이 아닌 미술에만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건희는 외척이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홍라희는 삼성 경영에 개입하는 대신 미술계 큰손이 됐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28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고 이 회장 개인소장 미술작품 1만1000여점과 고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기관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사회 환원 이유로 “국가경제 기여, 인간 존중 및 기부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취지다. 유족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회환원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술업계에선 다른 시각도 나온다. 손에 쥔 선택지가 ‘공공기관 기증’뿐이라는 의견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선 ‘미술품 물납’이 불가하다. 물납은 상속세·법인세 등 조세를 주식·부동산 등 자산으로 납부하는 방법이다. 상속세를 미술품 등으로 낼 수 없다면 고스란히 유족들이 상속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더 많은 상속세를 물어야 해 아예 기증을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실제 이건희 컬렉션은 3조원 이상으로 평가받지만 현행법에선 상속세 납부에 도움이 안 된다. 미술품을 상속세 납부에 활용하려면 시장에서 되팔아 현금화해야 한다. 고가의 미술품 거래는 절차가 복잡하다.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물리적으로 상속세 신고 기한 전까지 미술품을 현금화하기엔 시간이 없다.

증여도 만만치 않다. 삼성은 28일 언론 보도자료에서 상속세가 12조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삼성 일가는 5년에 걸쳐 6차례 상속세를 납부할 예정이다. 삼성일가도 현금 12조원은 부담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미술품까지 증여하게 되면 상속세는 더 늘어난다.

▲ 상속세 및 증여세법 12조.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 상속세 및 증여세법 12조.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남는 선택지는 기증 뿐이다. 대외적으론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고 내부적으론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2조 7항에 따르면 상속재산 중 상속인이 신고기한까지 국가나 국공단체에 미술품 등을 기증하면 상속세를 면할 수 있다. 이 전 회장의 상속세 신고기한은 4월 말까지다.

결국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미술품에 대한 집착도 세금 이슈 앞에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셈이라는게 재계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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