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분사한 지 1년 반이 됐다. 사업 첫해 만에 700억원 가까운 매출을 거두고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오르는 등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새내기’ 회사인 만큼 뚜렷한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의 부재, 모호한 정체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사업 특성상 매출을 키우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고 인건비 비중도 높아 당분간 적자행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매출 681억원, 영업손실 36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비용은 1049억7200만원, 당기순손실은 367억9300만원으로 나타났다.

▲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 찍었다.(사진=카카오)
▲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 찍었다.(사진=카카오)

분사 1년 넘긴 이 회사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조직 개편됐던 AI 랩(Lab)이 분사한 회사다. 2017년 처음 공개된 스마트 스피커 ‘카카오 미니’를 시작으로 검색엔진·챗봇 등의 개발에 주력하면서 카카오의 각종 서비스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왔다. 당시 △현대자동차 △GS건설 △포스코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과도 협력하면서 접점을 늘려갔지만 소비자 대상(B2C) 사업으로는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기업간거래(B2B)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로 했다. 2019년 8월26일 법인을 설립했고, 12월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공식 출범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억원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납입자본금은 7억5000만원이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대해 “메신저, 포털 등 사업을 하면서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력을 토대로 설립한 자회사”라며 “앞으로 AI, 데이터 등을 실제 산업에 적용해 카카오의 비즈니스 외연을 넓히고 회사의 미래 먹을거리를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 백상엽 전 LG CNS 미래전략사업부장 사장을 수장으로 영입했다. 백 대표는 작년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추진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약 30억원을 들여 주식 20만3000주(지분율 1.44%)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B2B 산업 DNA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카카오는 백상엽 전 LG CNS 미래전략사업부장에게 엔터프라이즈 대표직을 맡겼다. 24년간 LG그룹에 몸 담았던 백상엽 대표는 B2B 분야 전문가로 불린다.
▲ △B2B 산업 DNA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카카오는 백상엽 전 LG CNS 미래전략사업부장에게 엔터프라이즈 대표직을 맡겼다. 24년간 LG그룹에 몸 담았던 백상엽 대표는 B2B 분야 전문가로 불린다.

‘카카오’가 가장 큰 경쟁력

무기는 카카오다. 엔터프라이즈 앞에 달린 ‘명패’가 주는 신뢰도가 높다. 카카오가 10년간 축적해온 데이터 운영 노하우도 이 회사가 내세우는 장점 중 하나다. 또 카카오 공동체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우선 적용, 다른 기업들로 확대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역시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유리한 지점이다. 주요 사업은 △카카오워크 △카카오i 커넥트 △카카오i 엔진 △카카오i 인사이트 △카카오i 클라우드 등이다. 희망사항은 가전부터 문화·레저, 헬스케어, 금융, 물류 등 다양한 기업들과 접점을 늘려가면서 각 산업의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것.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년여간 특허청, NH투자증권, 에버랜드, 교보생명, KBS, 코맥스 등 다양한 기업과 16건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작년 9월 출시한 기업용 메신저 ‘카카오워크’는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반향이 적었지만, 반년 동안 약 14만개 기업·조직 등을 확보했다. 카카오톡과 유사한 사용성으로 전자결재부터 근태관리 등 업무용 기능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고객 응대에 카톡 채널·챗봇을 결합한 ‘카카오i 커넥트 톡’도 서비스하고 있다. 기존 전화상담 위주의 기업 고객센터를 별도 시스템 구축이나 앱 개발 없이 카톡·챗봇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 효율을 높여주는 용도다. 대표 고객은 카카오뱅크다.

클라우드 시장도 노리고 있다. 카카오i 클라우드는 ‘서비스형 플랫폼(PaaS)’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제공을 표방한다. 카톡 메신저와 챗봇을 활용해 인프라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타 클라우드 서비스와의 연동도 가능하다. 주 고객은 카카오 공동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의료(대형병원)·금융 분야 일부 기업들도 고객으로 확보했다. 구체적인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클라우드 기반의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데이터센터는 아직 ‘셋방살이’ 중이다. 카카오는 오는 2023년까지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캠퍼스혁신파크 내 1만8383m² 규모 부지에 4000억원을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총 12만대 서버를 보관할 수 있고, 저장 가능한 데이터량은 6EB(엑사바이트)에 달한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데이터센터 건립은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데이터센터 설립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목표는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것이다. (이미지=카카오)
▲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목표는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것이다. (이미지=카카오)

몸값은 1조...‘이름값’ 언제쯤

공시에 의하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작년 영업비용은 1049억원, 영업손실은 368억원이었다. 급여로만 640억원의 비용 지출이 있었다. 인건비 비중이 영업비용의 61%를 차지했다. 출범 당시 500여명이었던 카카오엔터프라이즈 근무인원은 약 900명으로 늘었다. 단순 계산하면 최소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사업 초기인 만큼 이 회사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 개선은 장기적인 과제다. 클라우드·AI 사업이 ‘대형 먹거리’로 여겨지고 있긴 하나, 후발주자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내기 쉽지 않아서다. 경쟁도 치열하다.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주력하는 국내 PaaS 시장은 MS·AWS·오라클 등 외국계 기업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각각 18%, 13%, 10%다. SaaS에선 SAP·MS·더존비즈온 등이 선두그룹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클라우드 사용률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거는 기대감이 높다. 이 회사의 몸값은 1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1월 산은으로부터 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이 같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산은은 기존 스타트업에 대한 대형 투자는 주로 해외자본에 의존해 왔는데, 이를 국내기관이 단독으로 실행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공공기관·공기업의 업무용 도구로 채택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산은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다. 2021년 4월 기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지분율은 카카오 87.4%, 산은 8.8%, 임직원 3.7%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산은으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카카오워크, 카카오i 클라우드 등 주요 사업 고도화, 신사업 영역 진출을 위한 기술투자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카카오라서 ‘고(高)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사업방향이나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들이 있다”며 “사실상 매출을 뽑아낼 구체적인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분사를 했기 때문인 듯하다. 사업 확장을 위해 올해 보다 선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시장의 기대만큼 ‘이름값’을 증명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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