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넥슨'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여전히 넥슨은 게임사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V4' 등 온라인·모바일 게임을 서비스 하는 기업이죠. 지난해 넥슨은 연간 매출 3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습니다. 물론 게임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했죠. 

이런 넥슨도 다른 기업에 통째로 팔릴 뻔했는데요. 2019년 당시 넥슨 창업주이자 지주회사 NXC의 대표인 김정주 대표는 자신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98.64%를 매각하려 했습니다. 당시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 일렉트로닉아츠(EA), 텐센트 등 해외 기업부터 카카오, 넷마블 같은 국내 업체들까지 인수 의사를 밝혔죠. 그러나 10조원 이상의 가치를 바랬던 김정주 대표에 비해 인수 후보자들이 적어낸 희망 가격은 큰 격차를 보였죠. 결국 김정주 대표가 인수 후보자들에게 철회 의사를 통보하며 넥슨 매각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 넥슨 판교 사옥 전경. (사진=넥슨 링크드인 페이지 갈무리)
▲ 넥슨 판교 사옥 전경. (사진=넥슨 링크드인 페이지 갈무리)
업계에서는 김정주 대표가 넥슨을 포함한 NXC 지분을 재매각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는데요. 게임 사업을 영위하는 넥슨을 비롯해 그룹사 전체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실제로 2019년 이후 넥슨은 사업 및 개발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게임이 아닌 사업도 대폭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NXC를 통한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 인프라 창출이었습니다.

넥슨그룹은 어떤 기업?

가상자산 투자에 대해 알아보기 전 넥슨그룹의 지배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주체에 따른 투자 건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넥슨은 1994년 서울대학교 동기인 김정주 대표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등 4인의 젊은 창업가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기업입니다.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등을 서비스하며 게임사들을 인수해 몸집을 불린 넥슨은 기존 순환출자 방식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해 '넥슨홀딩스'를 설립합니다. 이는 지금의 NXC인데요. NXC는 김정주 대표가 67.49%의 지분을 갖고 있고 친족인 유정현, 김정민, 김정윤 씨가 각각 29.43%, 0.68%, 0.68%의 지분을 보유중입니다. 

넥슨그룹은 지주회사 NXC를 통해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중간 지주회사 격인 넥슨(일본법인) 밑으로 100% 자회사인 넥슨코리아가 자리하고 있죠. 다른 국내 개발스튜디오들은 대부분 넥슨코리아의 자회사로 구성됐습니다. 이를 통해 게임 사업의 계열화를 완성시켰죠. 

▲ 김정주 넥슨 창업주 겸 NXC 대표. (사진=NXC)
▲ 김정주 넥슨 창업주 겸 NXC 대표. (사진=NXC)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넥슨(일본법인)의 탄생도 들여다 봅시다. 넥슨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2009년 넥슨재팬의 사명을 '넥슨'으로 변경합니다. 사실 넥슨코리아의 경우 지주회사 전환 전부터 넥슨재팬이 100% 소유하고 있던 자회사였는데요. 2011년 넥슨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편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넥슨코리아는 지배구조상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 외의 사업 분야는 어디에서 담당하고 있을까요. 최상위지주회사인 NXC와 벨기에 법인 NXMH는 각각 비 게임 사업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데요. 지난 9일 공개된 NXC의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 소재 자회사 NXMH B.V가 유럽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 이탈리아 동물용 사료업체 '아그라스델릭', 영국 컨설팅 회사 라이언탑코, 미국 부동산업체 '347 보우리 커머셜 홀딩스', 노르웨이 가정용품 판매업체 '스토케' 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북미·유럽 내 비 게임 사업의 경우 NXMH의 지배구조 하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 중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을 활용한 사업은 NXC와 NXMH가 각각 별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넥슨도 1000억원이 넘는 비트코인을 매수하면서 각 주체별로 각기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모습인데요.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넥슨그룹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지역별 분산 투자, 핵심은 '연결'

넥슨그룹이 가상자산에 관심을 보인 것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NXC는 2017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을 인수합니다. 당시 912억원이 넘는 투자를 통해 지분 65.19%를 사들였는데요. 지난해 말 기준 NXC 외 1인의 코빗 지분은 82.72%까지 확대됐습니다. 

2018년에는 벨기에 투자법인 NXMH가 유럽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스탬프'를 인수하며 북미·유럽 시장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는데요. NXMH는 80%였던 비트스탬프 지분을 99.88%까지 늘렸습니다. 이를 통해 넥슨그룹은 국내와 유럽시장에서 각각 코빗과 비트스탬프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 시장 내 입지를 굳힙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표=채성오 기자)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표=채성오 기자)
넥슨그룹은 거래소 확보에 이어 관련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개발에 착수합니다. 지난해 3월 'NXCL'을 핀테크 개발자회사인 '아퀴스코리아'로 재출범 시키면서 금융자산 트레이딩 플랫폼 개발에 나섰는데요. 

아퀴스코리아는 NXC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수십억대 규모의 운영자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운영자금 사용 항목을 보면 크게 플랫폼 개발비용과 가상자산 확보로 나뉘는데요. 아퀴스코리아는 지난해 퀀트(수학 알고리즘 기반) 투자 스타트업 '웨이브릿지'로부터 암호화폐 13억원을 사 들인 데 이어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 운영사인 ‘스트리미’로부터 35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매입했습니다. 당시 NXC 측은 "관련 플랫폼 개발을 위해 암호화폐를 취득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별도로 지난 28일 넥슨(일본법인)은 1억달러(약 1130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고 발표했는데요. 매수 개수는 총 1717개이며, 평균 단가는 5만8226달러(약 6580만원)이라고 합니다. 오웬 마호니 넥슨(일본법인) 대표이사는 "주주가치 제고 및 현금성자산의 가치 유지를 위한 전략"이라며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비트코인은 장기적으로 안정성과 유동성을 이어가고 미래 투자를 위한 자사 현금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오웬 마호니 넥슨(일본법인) 대표. (사진=넥슨 IR북 갈무리)
▲ 오웬 마호니 넥슨(일본법인) 대표. (사진=넥슨 IR북 갈무리)
NXC와 NXMH가 각각 국내와 북미·유럽의 가상자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넥슨(일본법인)의 비트코인 매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재 넥슨그룹은 지역별 상황에 맞게 가상자산 사업을 분리한 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면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의 유동성 및 안정성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금융 트레이딩 플랫폼으로 접근성을 확보하는 한편 비트코인 매수를 통해 자산 확대를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이나 '넥슨 코인' 같은 신규 가상자산 활용법도 주목할 만한 대안입니다. 넥슨의 게임 아이템을 NFT화 하거나 직접 발행한 코인으로 거래하는 방안이죠. 지난해 매출의 56%가 한국에서 나온 만큼 관련 계획을 진행한다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추가 인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난 1월 NXC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런 예상에 무게가 실리는데요. NXC를 통한 국내 가상자산 사업의 밸류체인이 완성되면 비트스탬프와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시장 입성에 도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자본과 인프라를 확충한 만큼 가상자산을 활용한 선택폭도 넓어지겠죠. 물론 넥슨(일본법인) 측은 "이번 비트코인 매수의 경우 일본법인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김정주 대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넥슨그룹 차원에서 본다면 '큰 그림'을 시도해 볼 기회가 아닐까요.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