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정확한 이건희 상속재산 밝힐까...이제는 국세청 차례

발행일 2021-05-02 11:28:13

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 등 가족이 2010년 미국 CES 박람회에 참석했다.(사진=삼성전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이 고(故) 이건희 회장의 주식과 부동산 등 재산 상속으로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한다고 밝혔죠. 삼성전자가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대략 '12조원'이라면 '약 12조원'이라고 표현하면 되는데, 왜 '12조원 이상'이라고 표현했을까 하는 겁니다.

보통 '~~이상'이라는 표현을 쓸 땐 기준치보다 한참 더 높거나 많은 수치를 암시하는 경향이 있죠. "내 지갑에 10만원 쯤 있어"라고 말할 때와 "내 지갑에 10만원 이상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레벨의 수치를 가르키고 있다는 겁니다.

상속세가 12조원 이상이라면, 즉 상속세가 12조원보다 훨씬 많다면 총 상속재산가액은 얼마나 된다는 걸까요. 언론마다 추정치가 모두 달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희대의 상속세(12조원 이상)가 조금 더 정확히 세간에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흥미요소도 있죠. 세기의 상속이니까요. 그리고 조세 정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차명재산이 큰 몫을 차지했고요. 차명재산이 상속되는 과정에서 적확한 계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또 다시 삼성은 과거처럼 '차명'이나 '비자금'과 같은 단어가 단골로 붙는 그룹이 될테니까요. 출처가 불분명한 상속제산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되겠죠.



삼성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최근 국세청에 상속세 과세표준신고 및 자진납부 계산서, 상속재산명세서, 감정평가수수료 지급서류 등을 제출했습니다. 통상 유족들의 상속 신고가 이뤄지면 국세청은 과세를 위해 실제 상속재산이 신고서류와 일치하는 지 조사에 나서게 됩니다. 상속절차는 사실 이제서야 시작인거죠. 지금까지는 유족간 상속 합의 또는 상속재산 분할 작업만 있었던 것 뿐입니다.

국세청의 정확한 조사는 너무 당연한 절차입니다. 다만 어려움이 있습니다. 수십조원으로 보이는 상속재산가액을 주무관청이 전수 조사하는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인력과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세청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재산의 전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언론보도 역시 기초자료 조사 대상이고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이 제출한 상속재산명세서 및 감정평가서 등도 조사 대상입니다.

삼성전자의 발표 내용, 그리고 각종 언론 보도를 <블로터>가 종합해 본 결과 상속재산가액은 최소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 24조원'이라는 건 30조원이 될 수도 있고 40조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삼성전자가 보도자료에서 "12조원 이상 상속세 납부"라고 밝혔던 것도 상속세가 최소 12조원이라는 뜻일 뿐 15조원이 될 수도 있고 20조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상속재산가액과 이를 기반으로 도출되는 상속세의 예상 범위가 이처럼 넓은 이유는 그만큼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재산을 감정하기도, 추산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추산이 어려운 대표적 이유는 차명재산 때문이고요. 재계에 알려진 차명재산은 최소 4조5000억원입니다. 2008년 조준웅 특검 당시 드러난 재산이죠. 이 재산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인지, 아니면 이건희 회장이 별도로 만든 비자금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재산이 다시 유족에게 상속되는 상황에서 재산의 규모가 정확히 국세청에 신고되고 과세되느냐의 문제가 숙제로 남습니다.

이건희 회장측은 2021년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상속재산 소송에서 "조준웅 특검이 밝힌 4조5000억원 가량의 재산이 상속 재산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차명재산의 실체가 거짓이 아님을 스스로 밝힌 거죠.

이후에도 새로운 차명재산은 여러차례 수면 위로 드러났죠. 금융당국은 2019년 5월 "2018년 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 비리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차명계좌 중 8개 계좌를 보유한 증권사 2곳에 대해 과징금 12여억 원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힌 적 있습니다. 새로운 차명계좌였고요.

알려진 것만 대충 이 정도인데, 수면 아래 있는 재산은 얼마일 지 모릅니다. 이번 상속재산 신고에서 정확한 재산명세가 신고될 지 여부는 유족들만 알고 있고 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임무가 과세당국에 있는 셈입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로터>가 취재한 내역에 따르면 최소 76곳 필지이고 공시지가로만 약 3500억원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시가는 상상이상이겠죠. 또 알려지지 않은 부동산 재산도 있을 수 있고요.

과세당국은 전수 조사가 어려우니 의심가는 항목을 추려내 표본 조사를 하고 신고가액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마무리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만일 지금처럼 12조원이라는 상속규모에 취해 삼성 유족들이 대한민국에 큰 기여를 하는 양 언론보도가 나가거나 정치세력의 기증과 기부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듯한 발언이 나가게 되면 국세청 실무진의 정확한 조사 의욕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삼성 유족들이 신고한 신고 상속재산가액과 삼성 의뢰를 받은 감정평가사들이 적용한 감평 가격을 별 검증없이 수긍해 버릴 수 있다는 거죠.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상속세 규모를 '12조원'이라고 명시적으로 고정시켜 말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언론 보도도 그렇고요. 그래서 자칫 과세당국이 '사상 최대 상속세 액수 12조원'이라는 프레임이 갇혀 버리지 않나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인력과 시간의 부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소득세나 종부세 등으로 1원이라도 틀리지 않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그동안의 조세 당국의 노력이 자칫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산 상속세 문제로 허무하게 평가절하되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상속세로 12조원을 납부하는 재벌이나 소득세로 10만원을 내는 근로자는 모두 국가에 큰 기여를 동일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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