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삼성 오너일가들이 이건희 회장이 남긴 계열사 주식 중 삼성생명 주식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몰아준 것은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주식 취득 수를 늘리기 어려워 내린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주식을 직접 상속 받기에는 상속세가 만만치 않아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 지배력을 확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상속세 마련 정말 어려웠나

30일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등 이 회장이 생전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들은 일제히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를 통해 유족들의 지분 상속내역을 공개했다.

공시에 따르면 홍라희 여사를 비롯한 이재용‧이부진‧이서현씨 등 4인의 유족들은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SDS 주식들을 모두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상속 받았다. 홍 여사가 9분의 3을 차지하고, 나머지 9분의 6은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동일하게 나눠 갖은 식이다.

▲ 삼성생명 최대주주 변경 내역.(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삼성생명 최대주주 변경 내역.(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생명의 지분 분배율이다. 다른 주요 계열사와는 달리 홍라희 전 관장이 이 회장이 남긴 삼성생명의 주식을 이 부회장에게 일부 몰아주는 선택을 했다. 법정 상속비율에 따르면 가장 많은 주식을 차지했어야 할 홍 전 관장은 단 한 주도 상속받지 않았으며, 이 회장이 소유했던 전체 주식 중 절반 이상을 이 부회장이 상속 받았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율은 기존 0.06%에서 10.44%로 확 늘어났다. 개인주주 중에서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에 오른 것이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1383만9726주(6.92%)를 상속해 이 부회장 다음으로 많은 주식을 물려 받았으며,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3남매 중 가장 적은 691만9863주(16.7%)를 취득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대거 상속하며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간접적으로 이전보다 늘릴 수 있게 됐다.

▲ 삼성전자 직간접 지배구조.(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일호 기자 집계)
▲ 삼성전자 직간접 지배구조.(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일호 기자 집계)

이 부회장이 모친의 삼성전자 주식까지 몰아서 물려받지 못 한 이유로는 대규모의 상속세가 꼽힌다. 30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487조원으로 삼성생명 시총 16조원에 비해 30배나 덩치가 크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상속 주식을 늘릴수록 마련해야 할 상속세 자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특히 상속세 납부를 위해 오너일가들이 개인 신용대출까지 활용했다는 소식도 최근 알려졌다. 이를 고려하면 삼성생명 주식을 대량으로 상속받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승계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 지배력을 확대했지만, 직접 지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속의 최종 목적이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최종적으로 모든 지분을 물려받는 것이라고 볼 때, 홍 여사의 지분을 재차 물려줘야 하는 이슈가 있다. 또 이 부회장 혼자만 계열사 주식을 물려받지 않았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함께 계열사 주식을 물려받아 '승계의 집중력'은 깨졌다.

게다가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문제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팔아치워야 한다. 이 부회장이 애써 삼성생명 지배력을 늘렸지만 결국 삼성생명을 통한 간접지배도 못 하게 되는 셈이다.

보험사들은 총자산의 3% 이상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 개정안은 이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8.51%로 3%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팔아야 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지배구조 관련 한 전문가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분만 많이 상속받은 것은 아마도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며 “직접지배 확대 및 향후 홍 여사의 지분율을 상속받는 것 까지 감안하면 완전한 승계작업은 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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