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에서도 탄소 순배출량을 전혀 없게 하는 '넷 제로'가 대세다. 굴삭기와 지게차, 휠로더 등 중대형 건설기계의 동력원을 배터리 또는 수소 연료전지로 교체한 산업차량이 등장할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 등 국내 업체들도 산업용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10일 자체 개발한 배터리팩 시제품 1호기를 제작 완료했다고 밝혔다. 배터리팩은 전기차와 중장비 등 전동화 기기에 장착되는 배터리 시스템의 최종 형태다. 수개의 배터리 셀을 하나의 모듈로 묶고, 수개의 모듈을 묶은 팩 형태가 차량과 중장비 등에 장착된다. 배터리팩에는 모듈과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냉각 시스템 등 각종 제어 장치가 함께 탑재된다.

▲ 두산인프라코어가 제작한 배터리팩.(사진=두산인프라코어)
▲ 두산인프라코어가 제작한 배터리팩.(사진=두산인프라코어)

배터리팩은 배터리 사업 가치사슬의 말단에 위치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배터리팩을 직접 생산함에 따라 건설용 중장비의 전동화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미국 캐터필러와 일본 코마츠 등 건설기계 시장의 리딩기업들은 전동화 제품을 개발 중이다. 이들 업체들은 배터리로 구동하는 건설기계 제품을 박람회 등에서 선보이고 있다. 미국 캐터필러는 토목공사에서 쓰이는 휠로더에 소형 전동식 모델을 선보였고, 히타치도 전동화된 미니 셔블을 유럽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두산밥캣은 유럽시장에서 전동식 미니 굴착기를 판매하고 있고, 조만간 전동식 로더를 선보일 계획이다.

완성차와 달리 건설기계 시장은 전동화 전환이 늦은 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넷 제로 실현을 위해 친환경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으면서 건설기계 시장도 친환경으로 서서히 전환하는 추세다. 건설기계의 경우 무게가 수백 톤에 달하는 만큼 소형 건설기계 중심으로 전동화 제품이 개발 중이다.

▲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사진=두산인프라코어)
▲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사진=두산인프라코어)

굴삭기 한대가 연 50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굴삭기 한대를 전동화된 제품으로 바꿀 경우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다. 26톤 굴삭기 2500대를 전동화된 제품으로 바꾸면 내연기관 차량 6만대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발생한다.

다만 굴삭기 등 일부 중장비의 경우 유압 부분을 출력 문제로 전동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전기차와 달리 건설기계는 출력이 높아야 하는 만큼 하이브리드 또는 수소가 대안으로 꼽힌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건설기계 및 로봇용 배터리 셀수요는 2016년 58억개에서 2019년 87억개로 50% 증가했다. 지난해 말까지 89억개로 수요가 소폭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장비용 배터리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고려해 알루미늄을 첨가한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NCM(니콜, 코발트, 망간) 등 삼원계 계열 배터리에 알루미늄을 첨가하면 배터리 출력이 높아진다. 중장비 한 대에는 전기차용 배터리보다 약 8배 가량 많은 양의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도 중장비에 쓰일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배터리팩을 개발해 자사 제품은 물론 경쟁사에 판매할 계획이다. 건설기계 외에도 농기계와 골프 카트 등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장비에 배터리팩을 장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팩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가 합작해 설립한 HL그린파워가 생산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HL그린파워처럼 산업용 차량에 탑재할 배터리팩을 만든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생산한 배터리팩은 원통형 배터리셀을 조합해 단위 전압 및 용량에 맞춰 유연하게 설계 할 수 있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 또한 표준화 및 공용화 설계를 적용해 직·병렬 관계없이 최대 32개 모듈로 배터리팩을 구성할 수 있다. 배터리셀 연결 시 물리적으로는 구조용 접착제를 사용하고, 전기적으로는 와이어 본딩(Wire Bonding)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을 향상시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전동 파워팩(Electric Powerpack) 사업 타당성 검토를 거쳐 배터리팩에 대한 자체 개발을 추진해왔다. 이번 시제품을 실제 테스트 하고, 내년초에는 배터리팩을 탑재한 1.7톤급 전기 굴착기 초도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건설기계를 비롯해 농기계, 골프 카트 등 전기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비에 배터리팩 장착이 가능하다"며 "배터리팩은 2030년까지 연 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월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에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매각 가격은 약 8500억원으로 중국 등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거친 후 인수절차가 마무리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룹 포트폴리오를 수소로 전환하고 있다. 자사의 선박과 건설기계 등에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할 계획인데, 현대중공업그룹이 산업용 차량의 전동화 전환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전략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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