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네트워크를 평가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속도'가 떠오른다. 전파가 수신 측에 얼마나 무사히 전달되는지를 보는 '도달률'도 있다. 기타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수신이 안정적이면 네트워크 '품질'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선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무선은 유선과 달리 전파가 공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해 요인에 맞닥뜨리며 사업자가 이를 제때 찾아 고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즉각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지금껏 네트워크 관제 및 유지·보수 책임은 대부분 사람의 몫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국내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 규모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이를 인력만으로 감당하기엔 어렵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KT가 인공지능(AI) 네트워크 관제 솔루션 '닥터로렌(Dr. Lauren)'을 개발한 배경이다.

▲ 최민환 KT 선임연구원 (사진=KT)
▲ 최민환 KT 선임연구원 (사진=KT)
최근 서울시 서초구 KT융합기술원에서 만난 최민환 KT 선임연구원은 "무선 네트워크 관제 중에는 다양한 장애 요인이 계속해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선이 빠지거나 손상되는 문제는 기본이고, 만약 섬과 육지 사이라면 바다 위 해무(물안개)나 높은 파도에도 전파 산란으로 인한 신호 불안정이 나타날 수 있다. 두꺼운 벽이나 철판도 익히 알려진 전파 장애물이다.

최 연구원은 "닥터로렌 도입 전에는 문제가 발생 시 발견부터 관련 정보 분석, 해결까지 수작업으로 최대 40분 정도가 소요됐다"며 "문제는 네트워크 이상 경보가 하루에 480번씩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40분씩 480번이면 1만9200분, 320시간이다. 단순 계산이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제 인력만으론 모든 네트워크 문제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는 날이 왔다는 것.

KT는 구원투수로 AI를 등판시켰다. KT 기술진이 지난 4월 상용화에 성공한 AI 기반 무선전송망(Microwave, MW) 관제 시스템 '닥터로렌 MW'이다. 기상정보, 네트워크 성능 등의 빅데이터를 특화 AI 엔진으로 실시간 분석한 뒤 네트워크 장애의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특히 통신 장애에 취약한 도서산간지역, 날씨로 인한 장애 대응에 특화돼 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광주, 목포, 군산, 여수, 완도 등 전라남·북도 도서산간지역 네트워크 관제에 도입돼 운용 중이다.

▲ 최 연구원이 서울시 서초구 KT융합기술원에서 닥터로렌 MW 기반의 네트워크 관제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KT)
▲ 최 연구원이 서울시 서초구 KT융합기술원에서 닥터로렌 MW 기반의 네트워크 관제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KT)
닥터로렌 도입 효과는 곧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무선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각종 장애를 사람 대신 AI가 24시간 감시하게 됐으며 문제 발생 시 알림부터 조치 방안 제시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이내로 대폭 감소했다. 이전까지 관리자가 장애 요인을 직접 확인하고 장비별 대응 매뉴얼을 찾던 과정이 AI 연산으로 자동화된 덕분이다.

닥터로렌에는 상용화 수준에서 업계 최초로 기상 데이터까지 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접목됐다. 최 연구원은 "기온, 풍향, 풍속, 습도, 기압 등의 핵심 데이터를 기상청과 실시간 연동해 가져온다"며 "여기에 지역별로 각기 다른 날씨 특성을 감안한 AI 분석 필터를 개발해 정확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역별로 살펴볼 때 같은 섬이라도 남해와 동해는 안개 생성 빈도, 강수량, 일교차 등의 수준이 상이하다. 최 연구원은 "AI의 분석 정확도를 높이고 오감지 빈도를 낮추기 위해 각 지역별 특성 데이터를 AI 딥러닝 알고리즘에 학습시킨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는 기상청과 네트워크 관리 시스템에서 수집된 20종류 이상의 데이터를 '상관관계 분석' 기법으로 처리하는 전처리 과정이 포함되며 도출된 결과와 실제 장애 상황의 연관성을 비교한다. 그중 장애 연관성이 높은 요인들을 AI에 넘기는 것이다. 닥터로렌은 이를 토대로 학습한 뒤 실전에서 마치 '문제지를 풀 듯' 감지된 상황이 장애인지 아닌지 판별한다. 마지막으로 '포트 분리', '장비 과열', '날씨 요인' 등 분석된 장애 속성에 맞춰 현장 관리자의 출동 여부까지 판단해주는 것이 닥터로렌의 역할이다.

물론 AI가 만능은 아니다. 최 연구원은 "솔직히 AI에 대한 현장의 기대는 항상 큰 편이지만 아직 AI가 모든 일을 대체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닥터로렌도 처음 현장에 도입되면 앞서 설명한 지역별 데이터 최적화를 위한 전처리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대신 이 과정만 지나면 AI 자체 학습을 통해 자동화 수준이 점점 개선되며 현장의 업무량도 줄어든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무선 네트워크 관제에 업무 시간의 80%를 투입했던 인력이 지금은 그 비중이 20%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 최 연구원이 서울시 서초구 KT 융합기술원에 설치된 닥터로렌 MW 시범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KT)
▲ 최 연구원이 서울시 서초구 KT 융합기술원에 설치된 닥터로렌 MW 시범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KT)
이처럼 도입 효과가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현장에서는 전국 확대 도입을 서둘러 달라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KT는 늦어도 연말까지 전국 KT 무선 네트워크에 닥터로렌을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닥터로렌 도입에는 별도의 하드웨어가 필요 없고 소프트웨어 추가만 필요한 만큼, 도입에 별다른 장애물은 없을 전망이다. 최 연구원은 "향후에는 엔진 버전 업그레이드도 AI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닥터로렌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닥터로렌 개발 노하우는 앞으로 KT의 여러 AI 사업 전반으로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최 연구원에게 중·장기적 목표를 물어봤다. 그는 "네트워크 부문에선 '감시제로화'를 실현해 사람을 통한 감시 빈도를 한달에 한 번만 보게 하거나, 문제가 발생해도 모바일을 통해 원격제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자동 수정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비네트워크 부문에선 닥터로렌 AI의 학습, 분석 능력이 홈 네트워크 및 영상 관제, 자동차 내 전장 장비 네트워크 관제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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