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현대차와 기아차 사옥 전경.(사진=현대자동차)
▲ 현대차와 기아차 사옥 전경.(사진=현대자동차)

국내 시가총액 10위 기업 2곳 중 1곳은 지난해 법인세 부담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전자와 LG화학, 카카오는 영업이익이 증가해 법인세 부담이 그나마 덜했습니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영업이익마저 전년보다 각각 50%, 20% 줄면서 법인세 부담이 컸습니다.

법인세는 국세 비중 중 3번째로 높은 세금입니다. 지난해 국세청이 걷은 세수는 총 28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중 소득세가 98조2000억원에 달해 전체 세수의 35.4%를 차지했습니다. 부가가치세는 64조9000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23.4%를, 법인세는 55조5000억원을 차지해 20%를 차지했죠.

2019년 걷힌 법인세는 72조2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법인세 수입은 23.1%(16조7000억원) 줄었습니다. 기업들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절벽효과(금융시장에서 발생한 사건이 순식간에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에 대비해 현금 유출을 자제하면서 법인세 납부를 연기한 영향도 있습니다.

▲ 주요 세목별 세수 현황.(자료=국세청)
▲ 주요 세목별 세수 현황.(자료=국세청)

그럼에도 지난해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이 부담해야 할 법인세 부담은 전년보다 47.5%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중 법인세 부담이 커진 기업은 △삼성전자 △LG화학 △현대자동차 △카카오 △기아자동차 등입니다.

시가총액 10위권에는 반도체와 IT, 바이오 등 기술주가 대부분입니다. 평균 영업이익률은 15.8%에 달합니다. 수익성이 높은 만큼 법인세 부담도 큽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약 4조원에 달하는 법인세를 납부해 전체 법인세 납부액의 약 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차 실질 법인세율 127.4%...LG화학은 55.3%

<블로터>는 시가총액 10위 기업의 지난해 '법인세 부담액'을 조사했습니다.

법인세는 기업의 세전이익(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에 적용세율을 곱해 책정됩니다. 세전이익이 2억원 이하인 기업의 세율은 10%, 200억원 이하는 20%입니다. 3000억원 이하는 22%, 30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25%를 적용받죠.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의 세전이익은 모두 3000억원을 초과해 25%의 세율이 매겨집니다.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법인세 부담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법인세 부담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 세액입니다. 기업은 법인세를 납부하기 위해 세무조정 과정을 거칩니다. 세전이익을 토대로 책정된 '법인세 비용'은 기업의 회계기준에 따라 책정된 것인데, 이를 세무회계에 따라 과세소득을 산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기업 회계는 수익과 비용 등 재무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처리하는 발생주의 회계를 쓰는데, 세무회계는 현금이 오갈 때만 기록하는 현금주의 회계를 쓰죠.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법인세비용'과 기업이 국세청에 납부해야 할 '법인세 부담액'과 차이가 발생합니다. ​'법인세비용'은 법인세부담액에 이연법인세 변동액을 가감하여 산출된 금액을 말하고요. '법인세부담액'은 법인세법 등의 법령에 의하여 각 회계연도에 부담할 법인세 및 법인세에 부가되는 세액의 합계액을 말한다. 용어가 어려운데, 

현대차는 지난해 실질 법인세율이 12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에는 19.0%였는데 부담이 급증했죠. 이는 현대차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수익이 급감한 반면 영업 현금흐름이 크게 개선된 영향 때문입니다.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법인세 비용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법인세 비용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현대차는 별도 손익계산서 기준 매출 50조6610억원, 영업이익은 768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전년보다 3.0%(1조5053억원) 증가했는데 영업이익은 51%(8115억원) 줄었습니다. 영업이익에 영업외수익을 반영한 세전이익은 526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현대차는 적용세율 27.5%에 따라 1345억원의 법인세를 회계상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세액공제 등 세금조정 과정을 거쳐 도출한 법인세 비용은 마이너스(-) 1억원 입니다. 1409억원의 세액공제가 큰 영향을 줬죠. 이는 기업의 회계기준에 따라 산정한 법인세로 국세청에 납부할 금액이 아닙니다.

현대차가 2020년 한해 동안 국세청에 납부해야 할 법인세 부담액은 6714억원입니다. 2019년에는 6092억원이었죠. 법인세 비용과 법인세 부담액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기순손실이 난 기업이더라도 세무조정 과정을 거쳐 내야할 법인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기손익은 마이너스(-)라 하더라도 과세표준은 플러스(+)일 수 있다는 거죠. 현대차의 경우도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8115억원만큼 줄었는데, 법인세 부담액은 622억원 증가했죠. 이유는 현금 항목을 보면 추정할 수 있습니다.

▲ 현대차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현대차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6조933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4388억원 커졌습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유입되거나 유출된 현금을 기록하는 항목입니다. 순이익은 줄었는데 현금 흐름은 좋아진 거죠. 이는 지난해 법인세 부담이 될 만한 현금 유입이 크게 늘어났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지난해 국세청에 실제로 납부한 법인세는 3256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이전연도 미지급한 법인세와 당해연도(2020년) 납부한 법인세 일부를 합산한 것입니다. 2019년 실제 납부한 법인세는 4502억원입니다.

▲ 정의선 현대차 회장.(사진=현대차)
▲ 정의선 현대차 회장.(사진=현대차)

현대차 외에도 LG화학과 기아차, 네이버의 실질 법인세 부담액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LG화학은 지난해 3996억원을 법인세 부담액으로 책정했습니다. 전년보다 법인세 부담액은 2075억원 증가했습니다. 세율은 55.3%로 전년보다 30.2% 포인트 높아졌죠.

네이버는 4121억원(세율 24.8%), 기아차는 2230억원(22.4%)을 법인세 부담액으로 책정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적용세율과 비교하면 법인세 부담이 적습니다. 하지만 세 부담은 늘어났죠.

국세 기여도 '부동의 1위' 삼성전자...올해 납부할 법인세 5조원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도 국세 기여도가 가장 컸습니다. 시가총액 2위부터 10위 기업이 낼 법인세 부담액을 모두 합해도 삼성전자가 납부하는 법인세보다 적죠.

삼성전자의 지난해 법인세 부담액은 5조737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019년보다 법인세 부담액은 1조8246억원 증가했습니다. 2019년 삼성전자의 실질 법인세율은 17.0%인데, 지난해 24.8%로 7.8% 포인트 증가했죠. 이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 삼성전자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삼성전자 법인세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삼성전자는 별도 기준 매출 166조3111억원, 영업이익은 20조5189억원을 기록했죠. 전년보다 매출은 7.4%(11조5383억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45.0%(6조4039억원)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은 초호황이었죠.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가격이 상승했고, 삼성전자의 수익성은 급등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2.3%로 전년(9.1%)보다 3.2% 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같은 기간 14조7127억원 늘어난 37조509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시장이 초호황을 이루면서 영업이익과 현금 유입 모두 커졌습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세 부담액도 커졌죠.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실적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실적 현황.(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삼성전자가 국세청에 낸 법인세는 2조4622억원입니다. 2019년에는 10조5403억원을 냈죠. 지난해 삼성전자가 국세청에 낸 법인세는 현대차보다 7.5배 많습니다. SK하이닉스보다 9.1배 많죠. 단일기업으로 국세 기여도가 가장 높은 곳이 삼성전자입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세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납부해야 할 법인세 부담액은 9470억원으로 창사 후 처음으로 1조원에 육박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조5458억원으로 전년보다 128%(2조5561억원) 늘었습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삼성전자)

지난해 '중후장대(크고 무거운 산업)' 기업들이 코로나19로 고전할 때 반도체와 IT 등 첨단산업군의 기업들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기업의 수익이 늘어난 만큼 세 부담도 커졌죠.

법인세는 국세 중 3번째로 비중이 높습니다. '나라 살림'에 필요한 세금 중 법인세는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코로나19로 정부의 공적 지출이 많아진 상황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영업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업들을 응원해야 할 것 같네요.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