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화학 사업장 전경.(사진=LG화학)
▲ LG화학 사업장 전경.(사진=LG화학)

LG에너지솔루션이 잇단 화재 사고가 발생한 ESS(에너지 저장장치)의 리콜을 실시한다. ESS 배터리 교체 등에 들어가는 리콜 비용은 약 4000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및 ESS에 탑재된 배터리의 결함으로 1조원 이상을 리콜 비용에 쓰게 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ESS용 배터리에 대한 리콜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은 2017년 4월부터 2018년 9월까지 ESS 전용 생산라인에서 생산된 배터리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화재 원인에 대한 정밀 분석을 실시한 결과 중국 생산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전극에서 결함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생산라인에서 일부 공정 문제로 인한 잠재적인 리스크가 발견됐고, 해당 리스크가 가혹한 외부환경과 결합하면 화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남경공장에서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생산된 고전압 배터리 중 일부에서 음극탭 접힘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리콜(현대차 납품 차량 대상)을 실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배터리를 탑재한 국내외 ESS 구매자를 대상으로 협의 후 리콜을 포함한 후속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배터리 리콜 후 배터리 충전율(SOC)을 정상 운영하고, 배터리 진단 및 제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화재 리스크를 관리할 계획이다.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사진=LG에너지솔루션)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안전과 품질을 모든 의사결정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며 "품질 혁신으로 어떤 위험에도 견딜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LG엔솔 3년 만에 리콜...뒤늦은 조치 배경 '상장 리스크 대비용'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의 리콜 조치가 상당히 늦었다는 반응이다.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이하 민관위)'가 최초로 사고 결과를 내놓은 건 2019년 6월이다.

민관위는 △배터리 시스템 결함 △전기적 충격 요인에 대한 보호체계 미흡 △운용환경 관리 미흡 및 설치 부주의 △ESS 통합관리 체계 부재를 화재 원인으로 꼽았다.

첫 화재는 2017년 8월 전북 고창의 풍력발전 연계용 ESS에서 발생했다. 민관위는 2019년 6월까지 총 2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까지 29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상당수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제조한 ESS 배터리였다. 2019년 5월에 경남 하동군에서 발생한 ESS 화재 사고는 중국 공장이 아닌 오창 공장에서 제조된 것이다.

▲ 민관위가 발표한 ESS 화재 사고 현황.(자료=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
▲ 민관위가 발표한 ESS 화재 사고 현황.(자료=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

이후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충전 잔량(SOC)을 기존 95%에서 70%로 낮춰 가동하도록 업데이트했다. 배터리 성능을 강제적으로 낮춰 화재 가능성을 낮춘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ESS 및 전기차 리콜 비용으로 9424억원을 충당부채로 설정했다. 충당부채는 향후 지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향후 지출이 확실시되는 부채를 의미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리콜 비용을 회계에 선제적으로 반영했음에도 리콜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민관 합동조사가 발표된지 3년이 지나서야 전격으로 리콜을 결정했다.

업계는 이번 리콜 조치가 '상장 리스크' 대비 차원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를 추진 중이다. 2017년부터 발생한 화재로 재무제표에 충당금을 쌓은 상황에서 관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리콜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상장 전까지 기업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데, ESS 화재와 GM의 쉐보레 볼트 리콜 비용까지 물어낼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미 충당금을 반영한 ESS부터 리콜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화재로 전소'한 국내 ESS 생태계 살아날까

국내와 달리 북미와 유럽에서 ESS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기차 및 ESS 관련 시장 조사기관인 내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가정용 ESS 시장은 2024년까지 연평균 44%의 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이 시장은 북미와 유럽 등이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미 시장은 전력회사인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의 산불 방지를 위한 강제 단전조치(2019년)와 텍사스 정전(2021년) 사태로 ESS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글로벌 ESS 시장은 2020년 20.6GWh 규모에서 2025년 93.0GWh, 2030년 202.6GWh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반면 국내 ESS 시장은 하락세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하국전기안전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ESS 설치 사업장은 2018년 975곳에서 2019년 479곳으로 반토막났다. 지난해 589개로 소폭 반등했지만, 올해 1분기 46개로 크게 줄었다.

▲ 국내 사업장 ESS 신규 설치 현황.(자료=권명호 국민의힘) 
▲ 국내 사업장 ESS 신규 설치 현황.(자료=권명호 국민의힘) 

이는 잇단 화재사고로 ESS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데다, 정부의 ESS 관련 지원 정책마저 줄어든 영향 때문이다.

국내 ESS 시장은 전기요금 할인 특례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등 각종 지원제도로 성장했는데, 화재 사고 이후 특례 제도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됐다. ESS 설비를 설치한 사업자들은 투자 수익도 못 얻은 채 손실만 입게 됐다.

국내 사업자가 ESS 설치로 얻을 수 있는 지원제도는 특례요금제도와 REC 제도다. 특례제도는 △전력 최대 수요시 ESS 사용으로 인한 기본요금을 절감하는 제도 △경부하 시간대 충전한 전력요금의 50%를 할인하는 제도 △ESS 용량에 따른 추가 할인제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설치 추가 할인제도 등이다. 그런데 피크요금 시 기본요금을 절감하는 제도 외에는 모두 지난해 말로 지원이 종료됐다.

▲ ESS를 점검하는 LG화학 직원.(사진=LG화학)
▲ ESS를 점검하는 LG화학 직원.(사진=LG화학)

올해 ESS 연계 사업장의 REC 가중치가 일몰된다. 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한 사실을 증명하는 REC를 발급받는다. 에너지원별로 가중치를 적용해 판매수익이 결정받는데, ESS의 가중치는 화재 사고 등으로 줄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민관합동 조사를 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업체에 요구하지 않았고, LG에너지솔루션 등 업체들은 늑장 대응해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며 "국내 ESS 시장이 위축된 건 정부와 업체들 영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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