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네이버 노동조합)”

네이버 본사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 등을 호소하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표방해온 정보기술(IT)기업에서 잡음이 잇따르면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입장문을 내고 “고인이 생전에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位階)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성토했다.

노조는 “인사제도적 결함으로 인해 고인이 힘든 상황을 토로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한 부분이 있다면 회사가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며 “동료를 황망하게 보낸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이날 오후 4시께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주 우리 동료를 잃는 애통한 일이 있었다. 애도와 위로가 우선인 상(喪) 중인 상황이어서 좀 더 빨리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이날 오후 4시께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주 우리 동료를 잃는 애통한 일이 있었다. 애도와 위로가 우선인 상(喪) 중인 상황이어서 좀 더 빨리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블라인드발(發) 폭로 연이어

경찰에 따르면 네이버 직원 A씨는 지난 25일 오후 1시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인근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A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 직장 내 괴롭힘과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A씨가 상사로부터 폭언을 듣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고 있다. 빈소에 다녀왔다는 네이버 직원 B씨는 “빈소에서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큰 분노, 미안함, 회의감이 뒤섞인 감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부당하거나 과도한 업무에 순응하지 말라. 동료가 당하고 있다면 남일로 넘기지 말고 연대하자”고 당부했다. 또 “이 비극에 책임 있는 자가 드러난다면 반드시 상응하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사로 지목된 인물로 인해 조직을 이동하거나 퇴사한 직원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당 글들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일부 글은 신고를 받아 삭제됐다. 이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조사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그림자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는 직급 없는 ‘수평적인 문화’를 내세워왔다. 임원급인 리더·책임리더 외에는 ‘님’으로 호칭도 통일하고 있다. 조직의 위계를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네이버 직원들은 내부에 자리 잡은 ‘서열 문화’를 블라인드에 폭로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이직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은 댓글을 통해 “(네이버에서는) 대기업에서도 자주 못 본 일을 당했다. 개발자끼리도 왜 이렇게 위계가 센지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블라인드 이용자는 “네이버 정신차려라”라며 “직원들이 (상부에) 항의하면 불이익을 당했다. 상위평가를 왜 하나” 등 쓴소리를 쏟아냈다.

▲ △네이버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가 단 댓글.
▲ △네이버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가 단 댓글.
경쟁사인 카카오도 부장이나 과장 등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수평적인 소통’ 구조를 강조해왔지만, 올해 2월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온라인에 유서를 암시하는 글을 올리면서 도마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인사평가 제도를 비롯해 사내 왕따 등 문제를 고발하는 폭로 글이 줄을 이었다. 이외에도 카카오는 사내간담회를 열면서 사전질문을 취합하고 질문자를 미리 정해 ‘답정너’란 지적을 받았다. 사전공지 없이 일부 직원에게만 암암리에 ‘호텔숙박권’을 지급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직급·호칭 파괴에 걸맞은 인사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계에 의한 괴롭힘이나 업무 압박 등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사안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조사와는 별개로 사외 이사진에게 의뢰해 외부기관 등을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받겠다”며 “필요한 부분은 적극 개선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번 일로 상심이 크실 구성원들을 위한 지원 등도 빠르게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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