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비트코인 가격 급등으로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자 및 투자 규모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범죄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가상자산투자협회(KVAA)가 지난달 31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호텔에서 개최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세미나'에서는 업계 인플루언서 유튜버인 '매억남'과 '코인탐정 사무소' 채널 운영자들이 참석해 실제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어떤 유형의 사기 피해를 입고 있는지 유형별로 소개했다. 

▲ 지난달 31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김덕순 한국가상자산투자협회장(앞줄 왼쪽에서 넷째)을 비롯한 협회 주요 관계자들과 업계 인플루언서 등이 참석했다 (사진=이건한 기자)
▲ 지난달 31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김덕순 한국가상자산투자협회장(앞줄 왼쪽에서 넷째)을 비롯한 협회 주요 관계자들과 업계 인플루언서 등이 참석했다 (사진=이건한 기자)

지난 4월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상자산 투자 광풍이 시작된 2017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집계된 가상자산 거래 관련 범죄 피해액은 약 1조7083억원이다. 여기에 경기남부경찰청이 최근 조사에 착수한 모 가상자산 거래소(이하 거래소) 관련 사건의 피해액은 이보다 높은 3조8500억원으로 다른 거래소들까지 합한 국내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은 총 5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잘 맞춘다는 리딩방', '거래소 차트' 맹신 금물

매억남은 가상자산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기 유형으로 △가짜 리딩방 △거래소 조작 △다단계를 꼽았다. 가상자산 리딩방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입금하면 해당 회원에게 전문가들이 직접 고수익 가상자산 투자처를 알려주는 유사투자종목이다. 일반 주식 시장에서도 널리 성행하고 있으며 주식 투자자 3명 중 1명꼴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을 만큼 사기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리딩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매억남에 따르면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리딩방에 현혹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전에 계좌 수익률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포토샵 같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중계좌를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0개의 계좌를 만든 후 계좌마다 고위험 종목을 하나씩만 투자한다. 이때 9개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하나의 계좌만 운 좋게 높은 수익을 거두면 이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식이다. 혹은 이전 대화 내역을 다 확인할 수 있는 텔레그램 메신저의 특성을 활용, 리딩방에서 투자에 적중한 기록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삭제함으로써 신뢰도를 조작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 주요 가상자산 사기 유형을 설명 중인 유튜버 '매억남'(사진=이건한 기자)
▲ 주요 가상자산 사기 유형을 설명 중인 유튜버 '매억남'(사진=이건한 기자)

리딩방뿐 아니라 거래소가 주도하는 사기 행위도 주의 대상이다. 매억남은 '비트코인ABC' 코인의 가격이 A 거래소와 B 거래소에서 14배 이상 발생한 사례를 소개했다. 거래소가 직접 시세 조작에 나선 결과물이다. 또 거래소가 횡령을 목적으로 가상자산 구매를 위해 회원이 입금한 원화의 출금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신뢰도가 낮은 거래소에 대량의 자금을 일시에 넣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코인탐정 사무소의 닉네임 '차트호랑이'는 투자자들이 거래소 차트를 무조건 맹신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특히 상장된 거래소가 적어 가격 비교가 어려운 코인은 소위 '작전 세력'이 거액의 자금을 운용해 시세를 덤핑하고 투자자들을 모은 뒤 높은 가격에 물량을 처리하고 잠적하는 사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거래소의 코인 상장 기준도 '깜깜이' 수준이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 없이 발행 당일에 상장하거나 유명 유튜버들이 소개했다는 이유로 특정 거래소의 코인을 매입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이는 널리 알려진 대형 거래소에도 해당되는 간접적 사기이므로 투자자들은 '상장 시 가치가 무조건 상승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널리 알려진 다단계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대표적인 금융 사기 유형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의 고액 배당금을 단기간에 지급한다고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이는 투자자 실수에 해당하지만 가상자산 입금 시 계좌를 오입력하는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코인탐정 사무소 닉네임 '차트아지'는 "가상자산을 입금할 때 코인 종류, 주소, 네트워크 중 단 하나만 틀려도 타인의 지갑으로 송금하게 될 수 있으며 가상자산은 금융 계좌와 달리 지갑 주소를 통한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만큼 오입금 시 이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입출금이 단순한 시중 은행 시스템에서도 연간 15만건, 3200억원 상당의 오입금이 발생하고 있다.

▲ 거래소의 무분별한 상장 행태를 지적한 유튜브 코인탐정 사무소 '차트호랑이'(사진=이건한 기자)
▲ 거래소의 무분별한 상장 행태를 지적한 유튜브 코인탐정 사무소 '차트호랑이'(사진=이건한 기자)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투자자들…'알권리' 보장해야

이날 행사에서는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도 이어졌다. 가상자산투자협회 이성관 본부장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보호하려면 기본적으로 그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투자자들은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갖고 투자에 뛰어들지만 스캠(사기 코인)을 구분하기 이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다는 얘기다.

이 본부장은 "앞으로 협회가 최소한의 '판별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국내외 사기 피해 사례를 묶어 계도 캠페인을 진행하고 최소한의 인증 제도 도입 등 가짜 리딩방에 대해서도 대응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순 협회장도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경우 피해자가 직접 거래소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며 "국내에서도 효율적인 투자 문화 정착을 위한 개선방안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3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이어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와 사업자 관리·감독을 위한 규제 법안 3건이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의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안', 김병욱 의원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 이용우 의원의 '가상자산업법안' 등이다. 법무법인 정솔의 황호준 변호사는 "현재 발의된 법안들의 내용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추후 특금법 개정 및 가상자산 사업자간 차등 심사안 적용 등의 변화가 예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기관 합동조사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국내에는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만 약 574만명의 가상자산 투자자가 존재하며 2018년 이후 지금까지 총 127조7000억원의 투자금이 거래소로 입금됐다. 이 중 105조원이 출금되고 잔여 투자금은 22조7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거래소는 약 60곳이며 거래되고 있는 가상자산 종류는 200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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