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사례를 통해 ESG가 얼마나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됐는지 알아본다.
▲ 대만 타이충에 위치한 마이크론 공장. (사진=마이크론 지속가능보고서)
▲ 대만 타이충에 위치한 마이크론 공장. (사진=마이크론 지속가능보고서)

삼성전자 전체 사업장 중 절반은 국내에 머물러있다.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총 26개의 사업장을 갖고 있는데 이중 12개가 국내 사업장이다. 이익에 따라 다른 국가에 생산설비를 집중하는 경쟁 업체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간 삼성전자가 생산설비를 해외에 건설하는 방법을 고민 안 한 것은 아니다.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 3월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증설 후보지로 텍사스와 뉴욕 애리조나를 고려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공장을 더 이상 해외에 빼앗기면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업장이 국내에 집중된 구조는 ‘탄소배출’ 경쟁 구도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 탄소배출 경쟁 불가피

삼성전자는 최근 초격차(超隔差)를 유지하던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력에선 경쟁 업체 마이크론과의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에서 ‘마이크론에 추월당한 한국 반도체’라는 리포트를 낼 정도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11월 176단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 개발하고, 올해도 4세대 10나노급 D램을 처음으로 양산했다.

이들의 경쟁은 ‘탄소배출 감축전(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탄소배출 감축은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표현되는 빅테크 기업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주요 고객사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서버용 D램 등을 FAANG에 납품한다. 서버용 D램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구축 시 필요한 부품이다. 인공지능·빅데이터가 각광 받으면서 데이터센터 건설도 늘고 있다. 자연스레 서버용 D램 수요 및 가격도 급증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달 서버용 D램 가격은 26% 올랐다.

▲ 미국 내 데이터센터 증가 추이. (자료=시너지 리서치그룹)
▲ 미국 내 데이터센터 증가 추이. (자료=시너지 리서치그룹)

FAANG에 속하는 5개 기업은 모두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이중 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는 탄소 배출 감축 정책을 부품 공급망인 협력업체 수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애플과 페이스북은 2030년이라는 구체적 기한까지 정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과의 ‘탄소배출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있다. 일단 탄소배출량이 많다. 삼성전자가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부문(디바이스 솔루션)의 2019년 Scope 1 탄소배출량은 476만6000만톤이다. 같은 기간 마이크론의 Scope 1 탄소배출량은 319만4543톤으로 나타났다. Scope 1은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탄소배출량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DS부문 탄소배출량에는 메모리 부문뿐 아니라 파운드리 사업부도 포함됐다.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증가폭이다. 삼성전자 DS부문 Scope 1 탄소배출량은 2017년 331만5000톤에서 2019년 476만6000톤으로 늘었다. Scope 1 탄소배출량은 3년 만에 43.8% 급증했다. 반면 마이크론의 증가폭은 12.3%에 그쳤다. 마이크론의 Scope 1 탄소배출량은 2017년 284만3993톤에서 2019년 319만4543톤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마이크론의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성과다. 

▲ 삼성전자가 설명하는 Scope 1,2,3 의미. (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 삼성전자가 설명하는 Scope 1,2,3 의미. (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마이크론은 탄소배출을 삼성전자를 좇을 기회로 여기고 있다. 올해 지속가능보고서에선 기한을 정하고 구체적인 탄소배출 감축 정책을 공개했다. 반도체 업체가 숫자를 제시하며 탄소배출 감축을 예고한 건 이례적이다. 삼성전자는 지속가능보고서와 홈페이지를 통해 과거 수치와 비교하거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태양광 패널 설치 등 노력을 언급하고는 있으나 구체적 수치와 함께 미래 계획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마이크론은 2030년까지 제품 단위 당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2018년보다 75% 줄일 예정이다. 또 절대 탄소배출량도 30% 감축할 계획이다. 또 CDP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대만 등 정부 규제에 의해 재생에너지 사용이 추진되는 국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2025년까지 최소 10%의 재생에너지를 채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D램 생산설비 4곳 중 2곳은 대만에 있다. 대만 내 생산설비는 1곳 더 늘어날 예정이다.

▲ 마이크론이 제시한 탄소배출 감축 계획 일부. (자료=마이크론 지속가능보고서)
▲ 마이크론이 제시한 탄소배출 감축 계획 일부. (자료=마이크론 지속가능보고서)


삼성전자, 탄소배출량 관리 어려운 이유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기 및 스팀 에너지 출처를 추적하는 Scope 2 탄소배출량 추이는 양사 비교가 어렵다. 삼성전자가 2019년 한 해만 시장기반(market-based) Scope 2 탄소배출량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가 탄소배출량 제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알 수 있다.

Scope 2 탄소배출량은 지역기반(location-based)과 시장기반으로 나뉜다. 지역기반은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내 환경 관련 기관 자료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들이 발표한 각종 요소를 기업 상황에 맞게 반영해 계산한다. 시장기반 탄소배출량은 에너지를 제공한 업체의 탄소배출 요소를 구분하고 계산한 탄소배출량을 뜻한다. 지역기반 탄소배출량에서 시장기반 탄소배출량을 빼면 기업이 활용한 재생에너지 정도를 알 수 있다.

▲ 삼성전자 DS부문 Scope 2 탄소배출량 추이. (자료=CDP)
▲ 삼성전자 DS부문 Scope 2 탄소배출량 추이. (자료=CDP)

삼성전자의 2019년 지역기반 탄소배출량은 총 1094만8000톤이다. 시장기반 탄소배출량은 총 873만3000톤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Scope 2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221만5000톤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사업장이다. 삼성전자 탄소배출량은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비중이 가장 크다. 삼성전자 전체 Scope 1 탄소배출량과 시장기반 Scope 2 탄소배출량을 더하면 1380만톤이다. 이 중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비중은 80.6%에 달한다.

그러나 국내 사업장에서는 기존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게 사실상 힘들다. 정부의 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1.2TWh로 전체 전력의 7.5% 수준이다. 2017년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0.9TWh, 일본이 125.4TWh 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저히 낮다. 

▲ 국내 신재생 발전량 및 설비 비중. (자료=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
▲ 국내 신재생 발전량 및 설비 비중. (자료=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

또 다른 문제는 국내에선 재생에너지 사용 정도를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지역기반 및 시장기반 Scope 2 탄소배출량은 714만5000톤으로 동일하다. 이는 시장기반 Scope 2 탄소배출량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한전이 전력을 독점 공급한다. 이 때문에 사업장에 들어오는 전기가 재생에너지인지 석탄 화력인지 확인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탄소배출량 비중이 가장 큰 국내 시장에서 '실제 배출량'이 아닌 '지역 평균을 근거로 한 배출량'으로 탄소배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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