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의 존폐를 가를 새로운 생존게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감축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선제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있는 반면, 새로운 질서에 허덕이며 도태될 기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사례를 통해 ESG가 얼마나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됐는지 알아본다.
▲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소재단지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모습.(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소재단지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모습.(사진=삼성전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규제 강화로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탄소배출 줄이기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의 저탄소 경쟁력은 향후 시장 판도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모두 탄소배출 줄이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이미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탄소배출량 인텔 5배

그렇다면 현재 삼성전자의 저탄소 경쟁력은 어떨까. 인텔, TSMC, SK하이닉스 등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우위에 있을까 아니면 열위에 있을까.

우선 삼성전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탄소배출 추이를 살펴보면 배출 총량이 꾸준히 증가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장 직접 배출량을 집계하는 단위인 Scope 1과 전력과 스팀 등 에너지원의 출처를 추적하는 Scope 2를 더한 배출량은 2012년 748만6000톤에서 2018년 1515만1000톤으로 증가했다. 6년 만에 배출량이 무려 두 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 삼성전자 탄소배출(Scope 1+2) 추이.(출처=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전자 탄소배출(Scope 1+2) 추이.(출처=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최근 들어 상승세가 꺾이기는 했다. 탄소 배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사업연도인 2019년도의 배출량은 1380만톤으로 전년 대비 8.9% 감소했다. 사업장 직접 배출량을 측정하는 Scope 1 배출량이 2019년 전년 대비 4.4% 증가한 506만7000톤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Scope 2 배출량은 1029만6000톤에서 873만3000톤으로 감소했다.

탄소배출량 감소 원인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다.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2018년 1356GWh에서 2019년 3220GWh로 증가했다.

국내보다는 재생에너지 수급이 비교적 용이한 해외 사업장에서 탄소배출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전력시장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별도로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해외 시장에서 재생에너지를 구매해 Scope 2 단계에서 탄소배출을 줄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삼성전자, 인텔, TSMC, SK하이닉스 탄소배출량.(출처=CDP)
▲ 삼성전자, 인텔, TSMC, SK하이닉스 탄소배출량.(출처=CDP)

하지만 인텔, TSMC, SK하이닉스 등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여전히 저탄소 경쟁력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총 배출량이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2019 사업연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배출량(Scope 1+2)은 1380만톤으로 TSMC의 877만톤보다 500만톤이 더 많다. 같은 연도 SK하이닉스의 배출량은 600만톤이며, 인텔은 278만톤으로 네 업체 중 가장 적은 양을 배출했다.

원 단위 3.14톤…알고 보면 12.1톤?

기업의 저탄소 경쟁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원 단위 배출량을 참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SG 업계 전문가는 “탄소배출 총량은 기업의 영업상황 및 공장 가동률에 따라 출렁이는 경우도 많다”며 “매출액 대비 얼마큼 탄소를 배출했는지가 실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기업들의 노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우선 삼성전자 원 단위(톤/억원) 배출량은 총 배출량 증가와 함께 증가해왔다. 2012년 매출 1억원 당 2.34톤을 기록했던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 3.6톤을 기록했다. 2019년 배출량 감소와 함께 원 단위 배출량은 3.1톤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역시 지표만 놓고 보면 2018년까지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뚜렷한 움직임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매출액 1억원 당 3.1톤의 탄소배출량은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 어느정도 수준인 것일까. 인텔, TSMC, SK하이닉스와의 원 단위를 비교해보면 삼성전자의 배출량 원 단위가 확실히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삼성전자, 인텔, TSMC, SK하이닉스 원 단위 탄소배출량 비교.(출처=CDP)
▲ 삼성전자, 인텔, TSMC, SK하이닉스 원 단위 탄소배출량 비교.(출처=CDP)

글로벌 기후변화 프로젝트인 ‘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홈페이지에 제출된 각사의 보고서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종합해본 결과 2019년 기준 네 업체 중에서는 SK하이닉스의 원 단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는 총 600만톤(Scope 1+2)의 탄소를 배출하는 동안 27조원의 매출을 거둬 원 단위 배출량은 22.25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삼성전자의 원 단위 배출량 3.14톤과 비교해 무려 7배나 높은 수치다.

삼성전자와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TSMC의 원 단위 배출량은 20.43톤으로 SK하이닉스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역시 삼성전자보다는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텔의 원 단위 배출량은 3.5톤으로 유일하게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 삼성전자가 CDP에 제출한 기후보고서 내 기재된 배출량 및 매출액 내역. 매출액 부분이 439조2000억원으로 적혀있다.(출처=CDP)
▲ 삼성전자가 CDP에 제출한 기후보고서 내 기재된 배출량 및 매출액 내역. 매출액 부분이 439조2000억원으로 적혀있다.(출처=CDP)

그러나 삼성전자의 계산식에는 다른 세 개 업체와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원 단위 배출량 계산에 2005년도를 기준으로 물가지수를 적용한 매출액을 대입한 것이다. 실제 2019년도 삼성전자 연결기준 매출액은 237조원이지만 원 단위 배출량 산식에는 439조원이 적용됐다. 237조원을 산식에 대입해 다시 계산할 경우 원 단위 배출량은 5.82톤으로 증가하게 된다. 국내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다른 인텔, TSMC는 모두 재무제표에 기재된 매출액을 기준으로 원 단위 배출량을 계산했다.

좀 더 구체적인 비교를 위해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으로 좁혀서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CDP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DS부문과 SET부문(가전제품 및 모바일기기)의 배출량이 구분돼 기재돼 있다.

▲ 삼성전자 DS부문 원 단위 탄소배출량.(출처=DSP,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전자 DS부문 원 단위 탄소배출량.(출처=DSP,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삼성전자가 2019년 DS부문에서 발생시킨 배출량은 총 1158만9000톤이다. 이는 전체 배출량 1380만톤의 84%에 달하는 수치로 사실상 대부분 탄소배출이 DS부문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 DS부문의 매출액은 95조5200억원으로 나와 있다. DS부문 배출량에서 매출액을 나누면 원 단위 배출량은 12.1톤으로 계산된다. SK하이닉스, TSMC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인텔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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