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장기화된 미국 제재에 맞서 본격적인 운영체제(OS) 독립에 나선다. 먼저 양대 모바일 OS인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보다 강화된 사물인터넷(IoT) 연결성을 앞세워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중국 내수에 머무르는 '갈라파고스 OS'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가 지난 2일 공개한 자체 모바일 OS '훙멍(鴻蒙·Harmony) 2.0'은 기본적인 인터페이스(UI)는 기존 스마트폰과 비슷하지만 손쉬운 IoT 연결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 훙멍 OS가 탑재된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연결되는 장면 (자료=화웨이 발표 영상 갈무리)
▲ 훙멍 OS가 탑재된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연결되는 장면 (자료=화웨이 발표 영상 갈무리)

예컨대 위 이미지처럼 훙멍 2.0과 연동된 PC는 복잡한 메뉴 조작 대신 각 아이콘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빠른 연결이 가능하다. 또 훙멍 2.0이 설치된 스마트폰은 같은 OS가 설치된 냉장고, 전자레인지, 자동차 등 일상 속 다양한 제품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화웨이는 훙멍 2.0을 연내 스마트폰 2억대와 기타 기기 1억대 등 총 3억대에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포부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박하다.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자국 기업인 화웨이를 두고 "계획 실현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갖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제외하면 주로 기업용 통신 장비를 개발하는데 특화된 기업이다. 모바일 OS와 연계된 IoT 생태계 강화를 천명했지만 IoT는 자체 스마트폰과 소비자 가전 사업을 함께 영위해온 삼성전자나 LG전자(스마트폰 사업 철수)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분야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IoT 기반의 스마트홈을 구현하려면 가전의 상당수를 특정 브랜드나 OS 지원 기기로 한정해야 하는데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만큼 메리트가 크지 않다.

▲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태블릿 등에 탑재된 훙멍 OS (자료=화웨이 발표 영상 갈무리)
▲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태블릿 등에 탑재된 훙멍 OS (자료=화웨이 발표 영상 갈무리)

미국 경제매체 <씨엔비씨(CNBC)>는 "훙멍 2.0이 중국 시장에선 성공할지 몰라도 해외 시장에서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미 안드로이드와 iOS 기반의 굳건한 모바일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이미 이들 OS를 위한 수백만개의 앱, 다양한 스마트 기기, 그리고 IoT 생태계가 뿌리 박혀 있는 만큼 해외 스마트폰 제조사나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허허벌판'인 훙멍 2.0을 뒤늦게 받아들일 요인이 부족하다.

특히 시장 선점 효과가 강하게 작용하는 모바일 플랫폼 업계에선 후발주자가 선두 주자를 따라잡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윈도우' OS로 PC 시대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스마트폰 시장 초기 뒤늦게 개발한 '윈도우폰7'으로 추격에 나섰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사업을 접었다. 물리 키보드 스마트폰으로 유명한 블랙베리도 자체 OS에 안드로이드 앱 설치를 지원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펼쳤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화웨이는 우선 자사 제품 중심으로 훙멍 2.0의 저변을 넓힐 계획이다. 신제품 출시는 미뤄졌지만 기존 플래그십 스마트폰 라인업인 '메이트40', '메이트X2', 스마트워치인 '워치시리즈3', 태블릿PC '메이트 패드'에 훙멍을 탑재하고 올해 말까지 100여종의 화웨이 기기에 훙멍을 이식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외부 기업인 DJI(드론), 메이디(가전), 싸이리스(자동차) 등과의 협력도 언급됐으나 중국 기업에 한정된 것이 한계로 지목된다.

한편 방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한때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3위를 기록했던 화웨이는 2019년 이후 계속된 미국 정부의 무역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의 반도체 수출 등을 금지했다. 이어 올해 들어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화웨이 제재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화웨이로선 독자 생존을 위한 자립 기반 마련이 더욱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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