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 ‘총대’ 멘 이유는..." 카카오 크루의 고백

발행일 2021-06-03 18:54:00
△근로감독 청원을 추진한 ㄱ씨는 지난달 말 네이버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에 대해 “남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블라인드에서는 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카카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내부 자정작용을 거쳐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카카오 8년차 직원 ㄱ씨는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이 직원은 동료들의 제보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카카오의 근로감독 실시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냈다.

익명 제보였지만 ‘총대’를 자처했다. 계기가 있었다. 지난 2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카카오 직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가 올라온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직원은 글에서 ‘사내 따돌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튿날 또 다른 직원이 조직장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시 카카오 직원 ㄴ씨는 <블로터>에 “(카카오는) 속이 곪은 대로 곪은 곳”이라고 비판했다. 5년차 직원 ㄷ씨는 “조직장 전횡을 고발했더니 꼬리표가 붙어 (부서) 이동이 어려워지게 된 사례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홀로 청원’을 하려던 ㄱ씨는 사례를 모아 집단청원에 나서기로 했다. 인사평가 외에 각자가 겪은 근로기준법 위반사례 등을 추렸다. ㄱ씨는 “동료가 유서까지 쓰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카카오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지만 ‘권력형’ 괴롭힘은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은 문화를 동료·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근로감독을 요청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ㄱ씨는 지난 3월2일 동료 20여명과 함께 카카오의 근로감독 청원을 요청했다.

청원을 접수한 성남지청은 지난 4월 카카오 근로감독에 나섰다. 카카오는 주 52시간제 위반을 비롯해 임산부에게 시간외근무를 시키고 퇴직직원에게 연장근무 수당 등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무더기’로 어긴 것이 확인됐다. 카카오 관계자는 <블로터>에 “지적 받은 사항을 적극 시정하겠다”면서도 “주52시간제 위반이나 연장근무 등은 모든 직원이 공감할 만한 문제제기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근로감독의 계기가 됐던 ‘직장 내 괴롭힘’은 조사에서 빠졌다.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자 카카오가 인사평가·보상제도 개편을 구성원들과 논의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 ‘길’을 서둘러 발족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크루가 중심이 되는 인사제도를 만들어가고자 TF를 신설한다”며 출범 취지를 설명했다. 근로감독관에게도 TF ‘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카카오가 인사·보상방침을 사전에 명시해둔 문건이 유출되면서 TF ‘길’은 ‘보여주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직원들은 “사실상 들러리가 된 것”, “결국 회사는 ‘답정너’였다”며 들끓고 있다.

청원을 주도한 ㄱ씨는 TF ‘길’에서 내놓을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에 대해서는 △가해자 보직해임·직책 부여 제한 △후속조치 전사 공유(연1회) △예방교육 강화 등의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실질적인 개선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재청원에 나설 계획이다.

△앞서 논란이 됐던 카카오의 동료평가 항목 갈무리.

ㄱ씨는 “얼마 전 네이버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는데, 카카오에서도 조직장이 ‘코드를 한 줄씩 읽고 설명해라’, ‘너희들 같은 건 해고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괴롭힌 유사 사례를 접했다”며 “조직장과 조직원의 권력 비대칭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지만 회사가 이를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명하지 않고 있다”라고 짚었다. 카카오 노동조합 ‘크루유니언’ 서승욱 지회장은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신고가 이루어지고 징계 사례도 나오고 있지만 처벌 수준을 보면 (징계가) 잘 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노조에서도 사례를 많이 축적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회사가 TF ‘길’을 꾸릴 때만 해도 청원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는 그는 “이제는 회사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면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카카오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구성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데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범수 의장님, 사회를 위해 기부하면서 귀감이 되셨지만 이젠 내부의 곪은 상처부터 돌아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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