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현대자동차의 구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이 서행 중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최대 시속 90km까지 급가속한 급발진 의심 사례가 나왔다. 국내에서 발생한 첫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례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자동차 시장의 질서가 이제 막 바뀌고 있는 지금이 해결 방안을 만들 최적의 시기일 지 모른다. 현상의 실체, 급발진의 이유, 제조사측의 반응, 전문가의 조언을 종합, 전기차 급발진 의심 현상에 대해 알아봤다.
▲ 2010년 급발진으로 리콜된 토요타 프리우스.(사진=토요타)
▲ 2010년 급발진으로 리콜된 토요타 프리우스.(사진=토요타)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제조사가 공식적으로 피해를 보상하거나 사과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급발진 사고는 '운전자의 과실'로 결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다수의 급발진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토요타 사례에서도 제조사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2012년 토요타 미국법인의 법률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레이놀즈는 "차량 전자 시스템은 문제가 없어 (당사는 리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며 "(토요타의) 핵심 원칙에 따라 소비자를 우선하기로 해 합의했고, 이는 토요타에 중요한 전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는 2007년부터 이어진 내연기관 차량과 하이브리드 차량의 급발진 사고로 전 세계에서 차량 1200만대를 리콜했고, 1조2000억원을 보상했다. 토요타 리콜 사태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상 전무후무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합의금 규모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였다.

이후 토요타의 품질 신뢰도는 금이 갔고, 자동차 판매대수는 급감했다. 그럼에도 "차량에 문제가 없다"는 제조사의 설명은 바뀌지 않았다. 여타 제조사가 급발진을 대응하는 모습과 판박이였다.

토요타의 급발진 사례는 3가지 점에서 이전과 달랐다. 첫째, 베테랑 운전자가 사고 당시 응급 구조대(911)와 통화한 내용이 유튜브에 공개된 점. 둘째, 토요타가 생산한 다수의 차종에서 급발진 사례가 연이어 발생한 점. 셋째, 토요타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으로 '바닥 매트의 불량(가속 페달 끼임)'이 제기됐는데, 2014년 법원 판결로 전자제어장치의 결함이 추가로 발견된 점 등이다.

토요타의 해명이 틀렸던 것이다. 하지만 리콜 사태가 10여년이 지나도록 토요타는 차량의 결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왜 제조사는 여타 리콜 문제처럼 급발진을 다루지 못할까.

'급발진 가능성'을 전혀 의심 않는 제조사 

테슬라는 지난해 1월 '테슬라 차량에 급발진은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테슬라는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급발진 사례를 검토했고, 데이터는 차량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테슬라 차량에 의도하지 않은 가속은 없다"고 강조했다.

▲ 테슬라가 지난해 성명을 통해 급발진 가능성을 일축했다.(사진=테슬라)
▲ 테슬라가 지난해 성명을 통해 급발진 가능성을 일축했다.(사진=테슬라)

테슬라의 성명은 NHTSA가 자사 차량의 급발진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나왔다. NHTSA는 지난 1년 동안 232대 차량과 217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모터 제어 시스템에서 급발진을 야기할 결함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NHTSA는 "급발진 사례는 차량이 아닌 운전자의 과실"이라고 발표했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판매한 이래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는 여러차례 발생했다. 미국의 자동차 엔지니어이자 급발진 전문가인 로날드 벨트(Ronald A. Belt)는 '테슬라의 급발진, 로그 자료가 말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통해 "테슬라 모델 S와 모델 X의 급발진 사례는 거의 매달 보고되고 있다"며 "대부분은 인명 피해 없이 벽과 건물, 레스토랑 등에 부딪히는 사고였다"고 말했다.

심각한 사고가 아니었을 뿐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했다. 벨트 박사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주의 로그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구동 모터의 센서와 가속 페달의 APP(Accelate Pedal Position) 센서 오작동이 급발진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설명과 벨트 박사의 설명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테슬라는 "모델 S와 X, 3의 가속 페달에 2개의 센서가 부착돼 있으며, 오류가 발생할 경우 모터 토크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운전자가 실수로 엑셀을 밟지 않는 한 저절로 모터가 과회전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테슬라의 설명대로라면 급발진은 발생할 수 없는 사고이다. 벨트 박사의 분석이 맞거나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할 경우 테슬라의 주장은 '모순'이 된다.

제조사는 급발진 사고를 '어떠한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개념으로 접근하는 셈이다. 단 한 번의 급발진이라도 차체 결함으로 발생할 경우 테슬라의 논리는 깨지고, 신뢰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입는다. 대규모 리콜로 이어지고, 주가 하락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례의 경우 차주가 문제제기를 포기하거나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급발진 사고가 소비자 과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물을 확보하기 어렵고, 정부는 급발진을 입증할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지난해 테슬라의 급발진 청원을 조사했다.(사진=NHTSA)
▲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지난해 테슬라의 급발진 청원을 조사했다.(사진=NHTSA)

국내 법원이 급발진의 원인으로 차량 결함을 인정한 사례는 현재까지 전무하다. 급발진 피해 사례 중 80%는 운전자 과실이며, 나머지 20%는 급발진을 의심할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피해자는 급발진을 주장할 경우 '블랙 컨슈머'로 낙인찍히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기아, 해외서 급발진 주장 차주와 '합의'로 종결...국내는 합의 가능성 없어

제조사가 급발진의 원인으로 차량 결함을 인정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차량 결함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주와 합의한 사례는 여럿 있었다.

기아자동차의 아만티(국내명 오피러스) 차주인 매리 맥다니엘스는 2007년 회사로 복귀하는 중 사고를 당했다. 맥다니엘스는 급발진으로 사고가 났다며 기아차에 소송을 걸었다. 맥다니엘스의 변호인단은 "엔진제어장치(ECU)에 전기적 이상신호가 발생해 엔진의 회전속도를 변화시키는 스로틀이 열려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기아차는 "차량에 결함이 없다"며 운전자의 과실로 몰고갔다.

법원은 소송 당사자에 화해를 제안했는데, 뒤늦게 맥다니엘스와 기아차가 합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대법관 재임 중인 2005년 후진 중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를 겪었다. 현대차는 여느 급발진 의심 사례와 같이 운전자 과실로 결론냈다. 그런데 이후 기존 차량보다 배기량이 500cc 더 큰 신형 에쿠스를 제공했다. 급발진은 아니지만 사회 지도층의 차량인 만큼 새 차로 교환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었다.

김 전 위원장의 사례는 급발진 의심 원인 규명과 무관하게 제조사와 피해자가 원만하게 마무리한 사례에 가깝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 사례와 달리 현실에서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제조사와 합의를 보거나 피해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이유는 해외의 경우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제조사와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주가 소송 과정에서 합의를 보는 사례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차량 결함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차주에 있다.

 
<블로터>가 지난달 말 단독 보도한 전북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 급발진 의심 사례'의 경우 차주가 위험을 무릅쓰고 급발진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정황을 촬영했다. 영상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는데 차량이 급가속되는 장면이 담겼다.

▲ 급발진 유형 사례.(자료=한국소비자원)
▲ 급발진 유형 사례.(자료=한국소비자원)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주 중 97%가 제조사에 항의했지만, 대부분 '소비자 과실'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차주가 보상을 요구한다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재판으로 제조사의 설명을 뒤집긴 어렵다.

사고기록장치(EDR)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2012년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제조사는 차주 등이 EDR 공개를 요구할 경우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EDR을 해독하기 위한 기본 키트를 구입하는 데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 개인이 구매하기 어렵다.

EDR 해독프로그램은 제조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차주와 정부는 프로그램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제조사가 제공한 EDR 해독 자료 또한 신뢰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DR 분석 만으로 급발진의 원인 규명이 어렵다"고 말한다.

전장의 집합체 전기차...제조사의 급발진 대응 방법도 달라야 

전기차 급발진은 차주와 제조사 모두에 더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과 변속기가 대신 모터로 구동한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전류가 모터에 전달되고, 모터가 바퀴를 잡아 돌리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모터에 이상 전력이 공급되거나 회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터가 과회전해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기차는 사실상 '가전제품'에 가까워 오작동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급발진은 완성차 업체에 가장 민감한(Critical) 이슈다. 제동 능력을 상실한 차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적어도 국내에서 급발진 사고를 겪은 차주가 제조사를 이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과 전혀 다른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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