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왜 묵살을 했을까요. 사람보다 서비스가, 회사가 중요한가요?” 지난달 25일 숨진 네이버 개발자가 위계(位階)에 의한 괴롭힘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고인 등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 경영진이 이를 ‘알고도’ 묵살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7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인 언행 등으로 정신적인 압박을 받아왔다”며 “고인과 동료들은 2년 가까이 회사의 절차·기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는 이를 무책임하게 방조하고 묵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과도한 업무량, 부당하고 무리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었더라면, 적어도 직원들이 제기한 문제를 사측이 제대로 살펴보기만 했더라면 우리가 동료를 떠나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사망은 회사가 지시하고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강조했다. 또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회사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이날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왼쪽에서 셋째)은 “문제를 묵살한 회사의 무책임한 방조와 묵인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사진=김인경 기자)
▲ △이날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왼쪽에서 셋째)은 “문제를 묵살한 회사의 무책임한 방조와 묵인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사진=김인경 기자)

쏟아지는 모욕·업무 버텼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야간·휴일·휴가 가릴 것 없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동료들은 고인이 최소한의 휴게시간인 1시간도 쉬지 못했고, 밤 10시가 넘어서도 업무에 임했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지난 1월 지인들에게 “두 달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나흘 전은 휴가였지만, 고인은 이날도 예외 없이 늦은 밤까지 일했다.

노조는 고인이 과중한 업무를 맡게 된 원인으로 고인의 직속 상관이었던 ‘임원A’를 지목했다. 고인은 서버 아키텍처·경로탐색 등을 담당하는 개발자였지만 임원A는 ‘서비스 기획안’을 짜올 것을 요구하는 등 부당한 지시를 해왔다는 주장이다. 기획 담당인 임원B도 타 조직 개발자인 고인에게 따로 업무 지시를 내렸다. 임원A·B의 ‘요구사항’이 충돌할 때마다 고인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임원B도 올해 3월 고인의 동료F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인물이다.

동료들은 임원A가 모욕적인 발언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7일 회의에서 고인이 의견을 내자 임원A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면박을 줬지만, 5분 후에는 고인이 말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하자고 말한 사례도 공유됐다. 고인은 지난 3월 동료에게 “임원A와 미팅할 때마다 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진다”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했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도 하소연했다. 고인 이외의 직원들에게도 일주일 안에 이력서 100장을 받아오라고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자 농담으로 일하냐며 화를 내거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배를 꼬집으며 ‘살을 빼지 않으면 밥을 사라’는 등의 언행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임원A로 인해 팀원들의 이탈이 잇따랐다. 퇴사가 이어져도 인력 충원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고인이 떠맡아야 하는 일은 불어났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동료에게 “임원A 때문에 (팀원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허탈하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원A가 오히려 고인에게 “팀원C가 이직하면 OO님(고인)은 나한테 죽어요”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하기 어렵다 하소연했더니…문제 임원은 ‘승진’

직원들은 회사를 믿고 2년 가까이 도움을 요청했다. 노조에 따르면 임원A는 네이버에서 문제를 일으켜 넷마블로 이직했다 2019년께 돌아왔다. 재입사 당시 일부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최인혁 네이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문제가 있으면 내게 말해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 COO는 네이버의 핵심 경영진으로 손꼽힌다.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는 삼성SDS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4개월 만인 2019년 5월 고인을 포함한 팀장 14명이 최인혁 COO를 찾았다. 이들은 “임원A가 ‘당신은 패착이다’, ‘너는 이 일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등 언행을 한다”고 호소하며, 강압적인 의사소통부터 회의를 하다 물건을 던지거나 결정한 기획을 갈아엎는 등의 조직운영 방식을 토로했다. 임원A가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자질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조는 14명 가운데 4명이 강등됐고 4명은 퇴사를 했다고 밝혔다. 반면, 임원A는 책임리더로 승진했다. 책임리더는 업무지휘·평가·연봉·인센티브·스톡옵션·보직 등 각종 권한을 갖는다. 올해 3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한성숙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회의에서도 한 직원이 임원A를 시사하며 ‘책임리더’ 선임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했지만, 인사담당 임원이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해당 조직에서 퇴사하는 사람들이 퇴사자 면담을 하며 경영진C(최 COO)와 임원A 때문에 퇴사한다고 밝혔지만 어떠한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직접 가해한 임원A와 임원A 문제를 알고도 묵살한 경영진C는 큰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 △네이버 노조는 “회사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진상에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사진=김인경 기자)
▲ △네이버 노조는 “회사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진상에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사진=김인경 기자)
노조는 사측에 △고인의 사내 메신저(웍스) 이력, 사내망 접속이력 출퇴근 기록, 고인과 임원A의 사내 메신저(웍스) 기록 △고인과 임원A·B간 오갔던 사내 메신저(웍스), 메일, 사내소스관리도구(OSS)의 자료 △2019년 1월 이후 지도 업무 중 퇴사한 직원들의 퇴사 면담 이력 △2021년초 진행된 임원 B에 대한 신고·조치과정 △리더 A·B를 임원으로 선임한 검증 절차 등 진상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또,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회사와 노조가 공동으로 재발방지 대책위를 꾸릴 것을 제안했다. 책임이 드러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하는 한편, 경영진이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노조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을 찾아 이번 사건에 대한 특별관리감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측이 이 같은 문제를 묵인해왔다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요청한 외부기관의 조사가 시작됐고, 경찰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노조가 요청한 자료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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