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한화그룹 본사 외관.(출처=한화그룹.)
▲ 한화그룹 본사 외관.(출처=한화그룹.)

한화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가 반도체 장비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요.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나 조직구성이 갖춰진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검토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질산 생산설비를 증설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 확장 계획도 밝혔으니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분위기입니다.

최근 ㈜한화는 확실히 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소재 등 신사업을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고, 또 지난해 적자가 지속된 무역 부문을 글로벌 부문으로 재편하며 조직구조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조직과 사업 모두를 재편하는 것이니 작은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화가 변화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자체 사업 능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어서죠. ㈜한화가 그룹 내 지주사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룹 자체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단순히 밑에 딸린 회사들을 잘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사업을 잘 키워 수익을 내야 하는 숙제도 있는 것이죠.

㈜한화의 최근 5년치 별도 기준 실적을 보실까요. 2016년 5조1000억원 규모의 매출액은 2020년 4조원으로 1조1000억원이나 감소했습니다. 코로나19와 사업구조 재편 영향이 있다지만 5년 만에 매출이 1조원 이상 줄어든 것은 절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매출 감소가 일회성 이벤트도 아닙니다. 2017년 처음으로 매출이 4조원대로 줄더니 이제는 3조원으로 쪼그라들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실제로 올 1분기 ㈜한화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분기 매출액은 7103억원으로 지난해 8415억원보다 무려 15.6%나 감소했습니다. ㈜한화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IR자료를 보면 ‘방산∙기계’와 ‘글로벌’ 두 사업부문의 매출 모두 줄어든 것으로 집계가 됐습니다. 방산∙기계 부문 매출은 30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나 확 줄었구요. 글로벌 부문 매출은 4097억원으로 7.1% 감소했습니다.  

▲ (주)한화 2021년 1분기 실적 내역.(출처=(주)한화 IR자료.)
▲ (주)한화 2021년 1분기 실적 내역.(출처=(주)한화 IR자료.)

이 추세가 올해 계속 이어진다면 매출 4조원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수익성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한화는 2018년 3000억원에 가까운 이익을 내기도 했는데요. 2020년 이익규모는 약 170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이익이 줄었습니다. 올 1분기 영업이익 역시 41억원으로 전년 동기 65억원과 비교해 36.9%나 감소했습니다. 부문 별로 보면 방산∙기계 부문은 181억원 이익에서 94억원 손실로 적자전환해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됐습니다. 조직을 개편한 글로벌 부문은 116억원 적자에서 135억원 흑자로 돌아섰지만 이익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네요.

㈜한화는 IR자료에서 이에 대해 “글로벌 부문은 사업 재편을 통한 경영효율화 및 시황호조로 흑자전환했으나 방산부문 비수기 및 기계부문의 고수익성 제품 매출 감소 영향으로 부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코로나19로 이연됐던 해외 프로젝트 매출 반영과 유가시황 호조 영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사진=한화솔루션.)
▲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사진=한화솔루션.)

㈜한화의 변화 시점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이자 ㈜한화 전략부문장을 맡고 있는 김동관 사장의 합류 시점과 맞물립니다. 김 사장은 2020년 1월 1일부로 전략부문장을 겸임하며 ㈜한화 경영에 좀 더 깊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사장 합류 이후 무역부문이 없어지고 글로벌 부문이 생겼구요. 동시에 무역부문을 맡고 있던 이민석 대표는 사임을 했죠. 반도체 소재 사업 확장 역시 김 사장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악화된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신사업이 좋은 실적을 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는 지난 4월 글로벌 부문을 통해 질산 설비 증설한다고 밝혔는데요. 전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질산 설비를 늘려 산업용 화약, 복합소재뿐 아니라 정밀화학분야에도 새로 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오는 2023년까지 총 1900억원을 투자해 여수산업단지에 질산 공장을 건설하면 총 생산량은 기존 12만톤에서 52만톤으로 늘어날 예정이구요. 이중 18만톤은 반도체용으로 배정됐습니다.

▲ 김맹윤 (주)한화 글로벌 부문 대표.
▲ 김맹윤 (주)한화 글로벌 부문 대표.

과거 무역 부문이었던 글로벌 부문의 새 수장은 김맹윤 전무가 맡았습니다. 김 대표는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과거 한화큐셀 인도사업부장과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유럽사업부문장을 거쳤죠. 태양광 사업을 맡아 키운 김 사장이 직접 ‘픽(Pick)’한 인물로 추정도 됩니다.

아쉽게도 ㈜한화는 사업보고서를 통해서도, 또 IR자료를 통해서도 방산과 기계 사업의 별도 실적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실적악화의 주범이 누구인지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 옥경석 (주)한화 기계부문 대표.
▲ 옥경석 (주)한화 기계부문 대표.

아무튼 반도체 장비 사업 진출은 기계부문 쪽에서 검토하고 있구요. 기계부문 대표는 옥경석 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옥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한화가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이죠. 원가 절감과 경영 효율화에 강점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한화의 화약·방산·기계 사업을 도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었죠.

과연 ㈜한화는 반도체 소재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워낼 수 있을까요. 신사업과 실적개선 중책을 맡은 김 대표와 옥 대표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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