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전선·통신케이블 제조 업체 대원전선은 2017년부터 지배구조를 재편했습니다. 대원전선은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서명환 대원전선 회장의 아들 서정석 대원전선 전무 승계 작업 준비의 일환으로 풀이합니다.
대원전선 최대주주는 갑도물산인데요. 지배구조 개편은 갑도물산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단순하게 갑도물산 지분만 보유하면 대원전선과 3개 자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겁니다.
당시 대원전선과 갑도물산의 주식 거래 내역을 살펴볼까요. 먼저 대원전선과 갑도물산이 각각 지분 51%, 49%를 공동 출자해 만든 대명전선의 지분을 정리합니다. 2017년 갑도물산은 대명전선 보유 지분 49%를 대원전선에 넘깁니다. 대원전선의 대명전선 지분은 100%로 확대됩니다.
2018년에는 서 회장이 대원전선 주식 대부분을 처분합니다. 같은 시기 갑도물산은 대원전선 주식을 더 사들이죠. 대원전선 지분은 2017년 말 갑도물산 29.13%, 서 회장 6.29%에서 2018년 말 갑도물산 31.04%, 서 회장 0.76%로 바뀝니다.
서 회장이 보유한 갑도물산 지분을 서 전무에게 증여하면 자연스럽게 서 전무의 대원전선 지배력이 커지는 구조가 완성된 거죠. 갑도물산 지분은 서 회장이 74.37%, 서 전무가 10.63%, 서 전무의 누나 서정화씨가 15%를 갖고 있습니다. 서정화씨는 경영엔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환사채도 빠르게 주식으로 전환했습니다. 2019년 7월 발행된 전환사채의 권리 행사는 2020년 7월23일부터 가능했는데요. 서 전무는 2020년 7월27일 권리를 행사했죠.
이 과정에서 서 전무의 대원전선 지분율은 2017년 말 3.26%에서 2020년 말 8.22%까지 높아집니다. 대원전선 측은 이를 서 전무의 대원전선 지배력 확대 차원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쉽게 말해 서 전무가 갑도물산 지분율을 높여 대원전선을 지배하는 게 아닌, 대원전선 직접 지분율을 확대하겠다는 거였죠.
지배력 강화 전략이 2017년으로 돌아간 겁니다. 대원전선 주식 매입은 갑도물산 증여세 마련을 위한 오너일가의 계획 중 하나일 수도 있는 거죠. 정확한 내부 사정은 오너일가만 알겠지만 공개된 거래 내역 등을 통해 짐작해볼 수는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매수 시점도 흥미롭습니다. 서 전무는 대원전선 주가가 하락세에 있을 때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2019년 전환사채 인수 이후 서 전무가 2019년 12월9일까지 사들인 주식은 총 211만주입니다. 평균 취득 가격은 1208원으로 계산됩니다.
대원전선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 이후 대북송전주 테마로 주목받았습니다. 주가도 크게 뛰었죠. 2019년 9월18일에는 1475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주가는 10월부터 제 자리로 돌아왔고 서 전무는 주가가 1200원대로 떨어진 2019년 10월10일부터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서 전무는 결과적으로 대원전선 주가가 떨어지는 시점에 주식을 사들이고 차익이 확실할 때 매도했습니다. 오너일가의 대량 주식 거래에 주가 변동 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전날 대원전선 주가는 전일비 240원 떨어진 2090원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오너일가의 주식 거래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죠.
서 전무의 대원전선 지분율은 여전히 5.40%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서 전무가 보유한 주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또 대원전선은 어떤 방법으로 승계 작업을 마무리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