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현대자동차의 구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이 서행 중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최대 시속 90km까지 급가속한 급발진 의심 사례가 나왔다. 국내에서 발생한 첫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례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자동차 시장의 질서가 이제 막 바뀌고 있는 지금이 해결 방안을 만들 최적의 시기일 지 모른다. 현상의 실체, 급발진의 이유, 제조사측의 반응, 전문가의 조언을 종합, 전기차 급발진 의심 현상에 대해 알아봤다.
▲ 급발진 의심 증상이 발생한 아이오닉EV.(사진=현대차)
▲ 급발진 의심 증상이 발생한 아이오닉EV.(사진=현대차)

지난달 <블로터>가 단독 보도한 전북 익산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의 급발진 의심 사례의 파장이 커지면서 해당 모델에 대한 리콜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EV의 경우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차량이 최대 시속 90km까지 빠르게 가속돼 급발진을 의심할 수 있는 사례다. 제동 능력을 상실한 차량의 경우 자칫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차주의 안전 뿐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까지 고려할 경우 리콜을 통해 사전에 급발진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9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현재까지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가운데 급발진 의심 증상이 나타나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사례는 총 7건이다. 이중 4건이 아이오닉EV인 것으로 집계됐다. 접수 사례 중 57%가 현대차의 아이오닉EV였다.

▲ 현대차가 2019년 작성한 아이오닉EV 관련 정비 매뉴얼.(자료=블로터)
▲ 현대차가 2019년 작성한 아이오닉EV 관련 정비 매뉴얼.(자료=블로터)

그런 가운데 <블로터>는 현대차가 2019년 작성한 아이오닉EV의 차량 정비 매뉴얼을 입수했다. 이 매뉴얼에는 현대차가 아이오닉EV의 급발진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만한 정황이 담겼다.

매뉴얼은 총 2개로 '[필드픽스]AE EV 회생제동 후 간헐적 재가속 불량'이라는 제목의 매뉴얼과 '정비통신'이라는 제목의 매뉴얼이다. '필드픽스' 매뉴얼에는 급발진을 야기할 원인과 증상 등이 담겼고, '정비통신' 매뉴얼에는 정비 방법과 순서를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먼저 '필드픽스' 매뉴얼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증상의 원인으로 총 2가지가 적시돼 있다. 현대차는 첫번째 원인으로 "내구진행시 모터·감속기 모듈 접지 성능 저하"를 꼽았다. 두번째로는 "회생제동 시 모터 노이즈가 CAN 라인에 유입되어 통신 이상"을 적시했다.

현대차는 이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매뉴얼에서 "간헐적 레디램프 점멸 및 가속 지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속 지연 현상은 가속 페달이 먹통이 되는 현상을 말하고 보통의 경우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급가속되는 현상을 유발할 수 있는 현상까지인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가 작성한 '[필드픽스]AE EV 회생제동 후 간헐적 재가속 불량 사례' 매뉴얼 일부.(사진=블로터)
▲ 현대차가 작성한 '[필드픽스]AE EV 회생제동 후 간헐적 재가속 불량 사례' 매뉴얼 일부.(사진=블로터)

그리고 통신이상과 관련해서는 'EPCU와 구동모터의 접지 성능 저하→모터 노이즈 유입→CAN 통신 이상' 순서로 오작동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PCU(Electric Power Control Unit)는 전기차의 통합전력제어장치로 인버터와 LDC, VCU로 구성돼 있다. EPCU는 배터리의 직류 전원을 교류 전원으로 변환해 모터 속도를 제어하는 장치다. 가속과 감속 명령을 담당하므로 전기차의 구동과 관련된 부품이다.

EPCU와 구동 모터의 접지 성능이 저하되면서 모터에 노이즈(전파 장해)가 유입됐고, CAN 통신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CAN(Controller Area Network) 통신은 차량의 장치들이 서로 통신하기 위해 설계된 표준 통신 규격이다. 차량의 ECU는 CAN을 통해 서로 통신한다.

▲ 전기차 구조도.(자료=현대차)
▲ 전기차 구조도.(자료=현대차)

ECU(Electronic Control Unit)는 CAN으로 전자신호를 수신한다. 또 차량의 전자신호를 받아 차량의 특이점을 파악한다. ECU는 차량의 여러 장치들을 제어하는데, 가속페달의 눌림 정도를 판별해 모터의 회전속도 등을 판단하는 것도 ECU의 역할이다.

즉 가속지연 현상은 EPCU와 모터의 접지 불량으로 차량 전반을 제어하는 CAN 통신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현대차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최근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례와 관련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가속이 되는 건 구동 모터의 제어시스템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신호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차량이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할 경우 급발진 의심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 차량의 통신 방법 구조도.(자료=INFIALPHA)
▲ 차량의 통신 방법 구조도.(자료=INFIALPHA)

현대차는 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아이오닉EV 차주인 A씨의 차량에서 매뉴얼에 담긴 내용의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최근 정비했다. 현대차는 A씨의 차량에 '3상 모터 접지 케이블 키트'를 설치했는데, EPCU와 구동모터의 접지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가 2019년 작성한 아이오닉EV 정비 매뉴얼. 가속 지연 현상이 발생할 경우 접지 케이블 키트를 장착하라는 내용이 담겼다.(사진=블로터)
▲ 현대차가 2019년 작성한 아이오닉EV 정비 매뉴얼. 가속 지연 현상이 발생할 경우 접지 케이블 키트를 장착하라는 내용이 담겼다.(사진=블로터)

현대차의 매뉴얼은 아이오닉EV를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다. 현대차가 최근까지 유사한 내용으로 몇 건을 점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매뉴얼이 작성된 시기(2019년 5월31일)를 볼 때 다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내용의 차량 결함은 리콜 대상일까. 국토교통부의 이전 조치를 보면 리콜 대상으로 추정된다. 국토부는 2016년 현대차와 쌍용차, 르노삼성에서 제작·판매한 4개 차종 3만3204대의 자동차를 대상으로 리콜 조치했다. 국토부는 현대차 투싼(TL) 승용차가 변속기 소프트웨어 오류로 차량 정차 후 재출발 시 가속이 지연되거나 아예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리콜 사유를 설명했다.

국토부는 그 후 2019년 기아 K7 프리미어와 쌍용차 티볼리 등 4개사 6개차종에 대해 리콜 조치했다. K7의 경우 시동이 지연되거나 엔진 출력이 저하돼 울컥거리거나 심하면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아이오닉EV 일부 차량에서 'CAN 통신 에러로 가속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 국토부의 리콜 사례를 볼 때 아이오닉EV 또한 리콜될 가능성도 있다.

네이버카페 '전기차 동호회'에서도 아이오닉EV의 급발진 의심 사례가 보도된 이후 리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 회원은 아이오닉EV의 급발진 의심 사례를 설명한 게시물에서 "다른 나라였으면 리콜 대상 사안"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회원은 "코나EV 등 현대차의 모든 전기차를 리콜해서 전자파(노이즈) 차단 처리를 해줘야 한다"고 댓글을 통해 말했다.

한편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오는 16일 A씨의 차량을 수거해 급발진 의심 증상을 집중 점검한다. 차량 점검을 통해 결함이 발견될 경우 국토부가 아이오닉EV의 리콜 조치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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