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조명해봅니다.
블록체인은 어느덧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유망 IT 기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직 시장이 활짝 개화한 시기는 아니지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30년 전세계 블록체인 산업 규모를 3조1000억달러(약 3455조원)로 예측했을 만큼 성장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이에 보수적인 일부 대기업들도 선제적으로 자체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 역량을 키우며 다가올 블록체인 전성시대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전자도 그중 하나입니다.
▲ 삼성 블록체인 월렛 (사진=삼성전자)
▲ 삼성 블록체인 월렛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일반 소비자용 블록체인 서비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2019년 2월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 10'에 탑재될 신규 기능 중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의 존재가 전해진 무렵부터입니다. 삼성이 자사 대표 스마트폰에 블록체인 앱을 탑재한다는 소식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지만 당시 삼성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죠.

몇 주 뒤 삼성 갤럭시 스토어(앱마켓)에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연동된 '삼성 블록체인 월렛'이 출시되며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블록체인 사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전까지 삼성의 주요 블록체인 기술 개발 성과물로는 B2B(기업간거래)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Nexledger)' 정도가 알려져 있었는데요. 여기에 일반 스마트폰용 블록체인 월렛까지 출시함으로써 삼성은 2019년 이미 B2B, B2C 양면에 걸친 블록체인 사업 기반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다만 삼성전자는 블록체인 사업을 홍보하는 데 소극적입니다. 보통 삼성이 개발한 주요 기술, 제품 관련 소식은 자체 홍보 채널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반면 블록체인 관련 소식은 일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를 두고 일각에선 삼성이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2019년이나 2021년이나 블록체인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암호화폐)인 비트코인 투기가 매번 사회적 이슈를 야기하며 '블록체인=사기'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인데요. 기술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거니와 사업의 경제성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이 블록체인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는 건 사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아래 설명하겠지만 삼성 블록체인 월렛은 가상자산을 보관하거나 송·수신하는 '지갑' 기능 중심의 서비스입니다. 시장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가상자산 구입·판매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연결점이 있다 보니 아직은 홍보에 더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는 카카오가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개발한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클립'을 출시 후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카카오톡 앱 전체 서비스 메뉴 구석에 배치해둔 모습과도 비슷해 보이는데요. 양사 모두 지금은 경제성보단 기술 개발 및 운영 노하우 축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서비스 중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 등록된 미세먼지 관련 디앱(왼쪽)과 디앱 목록 일부 (자료=앱 갈무리)
▲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 등록된 미세먼지 관련 디앱(왼쪽)과 디앱 목록 일부 (자료=앱 갈무리)

이 같은 측면에서 삼성 블록체인 월렛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서비스로 평가됩니다. 첫 공개 당시에는 이더리움(ETH) 기반 일부 가상자산 보관 기능만 제공했던 반면 지금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수십가지 코인의 보관과 송수신을 지원하며 DApps(디앱, 블록체인앱) 메뉴를 통해 다양한 디앱을 유통하는 앱마켓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해져 지난 5월에는 유명 디파이(탈중앙화금융) 서비스인 아베 프로토콜이 디파이 서비스 중 처음으로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 등록되기도 했죠.

기능적으로는 최근 한층 안전한 가상자산 보관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콜드월렛(USB 형태 오프라인 매개에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지갑, 해킹 위험도가 낮다)과의 연동 기능이 업데이트 됐습니다. 또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들을 위해 '뉴스' 메뉴를 신설하고 블록체인 전문 매체들의 최신 기사 링크도 제공하고 있죠.

이보다 앞서 지난해에는 보안기업 웁살라시큐리티의 '블랙리스트 월렛' 체크 기능도 추가했는데요. 이는 사용자가 특정 지갑 주소로 자산을 송금할 때 해당 주소가 사기 등 범죄 혐의가 확인된 지갑일 경우 이를 미리 알림으로써 사기 피해를 최소화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아울러 이용자가 사기나 해킹 등의 사고로 가상자산을 분실했을 때 이것이 어떤 계좌로 이동하고 있는지 추적하는 있게 되는 등 지난 1년간 서비스 안팎의 편의가 눈에 띄게 개선된 점들이 확인됩니다.

▲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 제공되는 이상 계좌 탐지 서비스 예시 (자료=웁살라시큐리티)
▲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서 제공되는 이상 계좌 탐지 서비스 예시 (자료=웁살라시큐리티)

특히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연동된 삼성 블록체인 월렛은 가상자산 지갑의 비밀번호와 같은 '개인키'를 갤럭시 스마트폰 내 분리된 보안 공간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까다로운 개인키 관리 부담을 낮춰준다는 점에서 여타 지갑 서비스와 차별점을 보입니다. 현재 전세계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 가운데 자체 블록체인 월렛 서비스를 제공 중인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합니다.

삼성전자가 블록체인 홍보에 소극적인 만큼 당분간 블록체인 월렛에 어떤 서비스들이 더 등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월렛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체 디앱 생태계를 강화하거나 각종 금융 인증, 의료 연계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당분간의 향방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수년 뒤, 블록체인 시장이 개화하는 시기가 되면 지금의 투자 성과가 갤럭시 스마트폰의 'S펜'처럼 경쟁사들과 삼성의 기술 정체성을 구분하는 새로운 이정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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