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판매장려금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와 삼성전자같은 제조사가 전국의 대리점·판매점에게 휴대폰을 판매할 때마다 주는 돈입니다. 대리점·판매점이 유통 일선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휴대폰을 판매하는 대가로 통신사와 제조사가 지급하는 것이죠. 대리점과 판매점은 휴대폰을 팔고 받은 판매장려금으로 매장 직원 인건비·월세·전기세 등을 내고, 나머지 금액 중 일부를 고객에게 추가 공시지원금으로 지급합니다. 통신사·제조사로부터 받은 공시지원금의 최대 15%를 추가로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최근 이 한도를 30%로 올린다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개정안을 발표했죠.

이렇듯 판매장려금의 일부는 고객에게 제공되는 마케팅용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통신사·제조사도 판매장려금을 마케팅 경쟁의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판매장려금을 대리점·판매점에 많이 지급하면 그만큼 고객에게 추가로 줄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행 공시지원금 추가 한도 15%를 넘겨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방통위는 판매장려금을 30만원정도까지만 나눠주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놓았습니다. 불법지원금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을 바라보는 대리점·판매점과 통신사의 시선은 다릅니다.

먼저 대리점이 회원사로 있는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이하 협회)는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이 통신사들이 담합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권고 사안이지만,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정해놓았기 대문에 통신사들이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협회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21에 대한 각사의 판매장려금 규모가 담긴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의 문건이 공개된 데 대해 통신사들이 담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통신사들이 서로의 영업정책을 공유하며 담합하고 있으니,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죠.

또 협회는 방통위가 시장 과열 기준으로 보고 있는 일일 번호이동 개통 수량도 통신사들의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과거 단통법 이전 일일 1만5000건을 시장 과열 기준으로 봤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시장이 기기변경 중심으로 바뀌면서 6000건으로 보고 있다"며 "6000건에 육박하면 통신사들이 판매장려금을 줄이며 경쟁을 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통위는 입장이 다릅니다. 우선,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은 불법지원금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이 판매장려금을 활용해 공시지원금의 최대 한도를 넘어선 규모의 불법지원금 지급을 유도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어 가이드라인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이 통신사 담합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협회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라인에 법적 구속력이 없어, 통신사들이 이를 철저히 지키지 않고 있단 것을 방통위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른바 '성지'라 불리는 온라인 중심의 판매점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근거입니다. 통신사들이 30만원 이상의 판매장려금을 일부 판매점에게 지급하다보니 이러한 성지들이 나오는 것이고 이는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이 담합의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없는 증거라는 겁니다. 또 시장 과열기준으로 보는 일일 번호이동 건수의 기준은 없다는 게 방통위의 입장입니다.

▲ 자료=각사 실적발표
▲ 자료=각사 실적발표

그렇다면 판매장려금을 지급하는 통신사는 어떨까요? SKT·KT·LG유플러스는 우선 각 사의 판매장려금 정보는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통신 시장을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KAIT가 조사한 결과가 유출됐지만 이는 KAIT에서 보유한 데이터이지, 각 통신사들에게 공유된 것은 아니라는 거죠.

또 통신사들은 판매장려금 가이드라인이 담합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판매장려금을 지급해 고객을 유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판매장려금을 많이 지급했다고 방통위로부터 규제를 받고 있는데,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신사들은 분기마다 집행한 공시지원금이나 판매장려금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단 각 비용이 포함된 항목으로 전체 추이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SKT는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이 마케팅수수료에 포함돼있습니다. KT는 판매비에 판매장려금이 포함돼있고 공시지원금은 휴대폰 매출에서 차감하고 있습니다. LG유플러스는 마케팅비에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이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 1분기 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 관련 비용을 보면 SKT(마케팅 수수료)는 7679억원, KT(판매비) 6310억원, LG유플러스(마케팅비)5480억원 등 총 1조9469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조8809억원보다 약 3.5% 증가했습니다.  

전체 이용자들의 혜택을 늘리면서 각 이용자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동시에 이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통신사들은 이용자 혜택을 늘리면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싶지만 가입자 경쟁을 펼치다보면 모든 지역에 같은 돈을 쓸 순 없겠죠. 단통법은 이러한 이용자 차별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법이고 방통위는 단통법의 준수 여부를 감독합니다. 경쟁과 차별방지라는 두 가치가 상충하기 때문에 통신 유통 시장에서 방통위·통신사·유통망의 충돌은 항상 발생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좋은 서비스를 되도록 저렴한 가격에 이용하고 싶어하죠. 이용자 혜택을 늘리고자 하는 것은 세 주체가 모두 동일한 입장일 것입니다. 세 주체는 주기적으로 모여 상생협의체 회의를 개최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이용자 혜택이라는 가치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방안들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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