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9만 '011·016·017·018·019' 번호 사용자의 '대답 없는 메아리'

발행일 2021-06-19 10:35:04
"저희가 바라는 건 물질적 보상이 아닙니다. 2G의 유지도 아닙니다. 지금 01X 번호만 계속 쓸 수 있는 것, 그리고 정부의 열린 소통입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이하 통합반대)' 카페 회원 10여명이 모여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막다른 길'에 놓였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앞 릴레이 시위에 나선 010번호통합반대본부 회원들 (사진=이건한 기자)

국내 2G 이동통신 서비스는 이달 LG유플러스를 끝으로 완전 종료된다. 이 경우 잔존한 29만명의 2G 기반 01X(011, 016, 017, 018, 019) 번호 이용자들은 더 이상 해당 번호를 쓸 수 없다. 앞서 010으로 이동한 사용자들이 전화 발신 시 기존 01X 번호로 상대에게 표시되고 통화·문자 수신도 가능했던 '01X 번호표시 서비스'도 이달 말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01X 번호 폐지 논쟁은 해묵은 문제다. 2004년 정부의 010 번호통합 정책에 따라 기존 2G 기반 01X 번호 이용자들이 3G~5G로 넘어가려면 010 번호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번호를 사수하고자 하는 이용자들과 회수하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루한 대립을 이어왔다.

과기정통부는 010 번호 통합이 필요한 이유로 △번호의 브랜드화 방지 △통화의 편의성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위한 번호 자원 확보 등을 내세웠다. 2G 시절 SKT가 서비스하던 011처럼 브랜드 영향력이 높았던 특정 번호 쏠림을 방지함으로써 공정 경쟁을 촉진하고 01X 식별번호 입력 없이 8자리 숫자로 통화가 가능해지면 전화 이용이 훨씬 편리해지리란 기대다. 또 회수된 01X 번호는 점점 늘어날 IoT 기기를 위한 번호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LG유플러스 2G 서비스 초창기 로고 (자료=블로터DB)

통합반대본부 측은 이 같은 주장의 설득력이 낮다는 입장이다. 01X 번호로 이통사 관계없이 번호이동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01X 번호의 브랜드화는 무의미해진 점, 지금도 8자리 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소개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게다가 이제 수십만명 남짓한 01X 번호 이용자들을 제외하더라도 IoT 기기에 할당할 01X 자원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과기정통부와 통합반대본부 간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통합반대본부 관계자는 "그동안 수많은 법적 다툼을 벌였지만 단 한 번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가출한 아들, 행방불명된 아버지, 실종된 손녀가 유일하게 기억했던 내 번호를 잊지 않고 언젠가 연락이 오겠지 하는 간절한 희망으로 번호 유지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010 번호통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됐으며 충분한 사전 설명과 정책 유예 기한을 둔 만큼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한시적 01X 번호표시 서비스를 제공 중인 이통사 관계자들도 "이용자들의 사정은 안타까워도 이통사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과기정통부와 통합반대본부는 소통에 대한 인식에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통합반대본부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일처리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01X 번호 폐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번도 일반 이용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참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후 수차례의 장관 면담 요청마저 묵살 당한 통합반대본부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헌법재판소다. 이들은 지난 5월 010 번호통합 정책이 위헌이란 내용의 헌법소원을 냈다. 만약 이곳에서도 패소하면 어쩔 수 없이 번호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선고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01X 번호 통폐합의 해묵은 논쟁 결과는 이제 헌재의 재판봉 끝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요일별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