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대만에서 컴퓨텍스(Computex)라는 세계적 PC 행사가 있었죠. 여러 PC 제조사와 반도체 회사들이 각자 기술을 과시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리사 수 CEO를 앞세운 ‘AMD’의 행사 내용이 눈에 띕니다. B2B에선 서버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면서, B2C에선 그래픽카드로의 확장을 꾀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죠.

블로터 ‘테크쑤다’에선 노트북 리뷰 사이트 ‘JN테크리뷰’의 게사장과 함께 AMD의 컴퓨텍스 키노트 행사 내용을 다뤄봤습니다. 서버 CPU 신작과 데스크탑용 APU, RDNA2 GPU, 3D 적층 CPU 등 제품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이야기할 것 자체가 많은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이 행사 내용을 보면 ‘라라랜드’를 꿈꾸는 AMD가 어떻게 도약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영상 디자인=김진영)
▲ (영상 디자인=김진영)

서버 CPU 야금야금 먹는 ‘에픽’

리사 수 AMD CEO의 첫 행사 내용은 서버 CPU ‘에픽’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365, 팀스, 트위터, 줌을 비롯한 수백만 곳에 클라우드 서버용 CPU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죠. 이커머스의 퍼포먼스 측정 결과를 인텔의 ‘제온’ 프로세서와 비교했는데, 자체적으로 초당 자바 오퍼레이션의 속도에서 에픽이 50% 앞서있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AMD의 성능 결과값이고, 서버 CPU는 단순히 속도만으로 좌우되지 않는 만큼 에픽이 우위에 있다고 속단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서버 CPU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에픽이 빠르게 숫자를 늘리는 것은 유의미합니다. 여전히 제온이 지배적 공급자이긴 하나, 보수적인 서버 CPU 시장에 에픽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AMD 서버 CPU 시장 점유율은 2018년 3분기 1.6%에서 지난 1분기 8.9%까지 올랐다.
▲ AMD 서버 CPU 시장 점유율은 2018년 3분기 1.6%에서 지난 1분기 8.9%까지 올랐다.

왜 그런 걸까요? 게사장은 AMD CPU가 ‘칩렛’ 구조임을 강조합니다. 단일 코어로서의 인텔보단 다중 코어로서의 제온이 서버 시장에서 좀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코어가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인텔은 CPU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데, 제온은 코어 하나만 교체하면 되니 수율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지는 요인이 되죠. 서버 시장은 CPU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만큼 가성비를 앞세운 AMD가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고 해석됩니다. 또 서버 시장 중 상당수가 ARM 칩으로 넘어간 이유는 ‘전성비’(전력 효율)가 좋기 때문인데, 이러한 변화 또한 칩렛 구조가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AMD 에피은 이커머스 서버에서의 CPU 성능이 인텔 제온보다 50% 높다고 리사 수 CEO는 강조했다.
▲ AMD 에피은 이커머스 서버에서의 CPU 성능이 인텔 제온보다 50% 높다고 리사 수 CEO는 강조했다.

데스크탑은 APU, 랩탑은 RDNA2

다음 나온 내용은 데스크탑용 APU(Accelerated Processing Unit)입니다. CPU와 GPU의 융합적 성능을 내는 통합 프로세서로 보면 되는데요. 인텔의 내장그래픽 탑재 CPU와는 개념적으로 다릅니다. 내장 그래픽이 CPU에 그냥 GPU만 얹는 개념이라면, APU는 독립적인 CPU와 GPU를 합쳐 하나의 칩을 만든 겁니다. 그만큼 GPU 성능이 더 강조되죠.

AMD APU가 유명해진 건 라이젠 3세대 3200G입니다. 중급 사양이 요구되는 게임도 손쉽게 돌아가는 CPU를 ‘99달러’라는 비교적 합리적 가격에 얻을 수 있어 주목받았죠. 4세대도 르누아르 G시리즈가 나왔는데 가격이 올라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습니다.

▲ APU 라이젠 5000G 시리즈는 259~359달러로 가격이 형성됐다.
▲ APU 라이젠 5000G 시리즈는 259~359달러로 가격이 형성됐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건 인텔 i5, i7과 비견되는 5600G, 5700G입니다. 각각 259달러, 359달러로 나왔고 세잔 저전력 CPU에 그래픽은 최신 FPS 게임을 FHD에서 최상 그래픽 옵션으로 70프레임까지 방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그래픽카드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그래픽을 요구하지 않는 사용자라면 이 정도 APU로 선회하는 것도 방법일 듯합니다.

노트북용 RX6000M 시리즈는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죠. 이 제품은 ‘RDNA2’ 게이밍 아키텍쳐가 들어갔는데, 이는 지난해 말 데스크탑에 들어가게 된 것의 랩탑 버전이죠. AMD가 오랫동안 CPU 시장에 집중해왔다면, 최근 몇 년새 엔비디아의 GPU 영역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제품입니다.

출시된 제품은 6600M·6700M·6800M 등 세 제품으로 각각 엔비디아의 RTX3060·3070·3080,에 대응합니다. 성능은 제품이 나와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AMD는 자체적으로 RTX 시리즈보다 더 높은 퍼포먼스가 나왔다고 홍보하고 있죠. 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더라도, PC 사용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희소식으로 풀이됩니다.

▲ RDNA2 아키텍쳐는 테슬라와 삼성전자 엑시노스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 RDNA2 아키텍쳐는 테슬라와 삼성전자 엑시노스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덜 강조됐지만, RDNA2 그래픽카드가 테슬라 모델S와 모델X, 삼성전자 엑시노스에 들어간다는 내용도 있었는데요. 이는 AMD가 그간 놓고 있던 AP(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도 틈입하게 됐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현재 퀄컴의 주력 AP용 GPU인 아드레노가 원래 AMD 것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RDNA를 바탕으로 AMD가 다시 AP 시장에 진입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걸로도 해석하시면 될 듯합니다.

인텔과 엔비디아 맹추격하는 AMD의 야심

마지막에 이야기한 ‘3D V캐시’는 국내에서도 알려지자마자 꽤 각광 받았습니다. 기술적 의미인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V’라고 하면 보통 칩 위에 칩을 쌓는 적층 구조를 의미하죠. 대표적인 게 바로 인텔의 ‘포베로스’가 유명하죠. CPU 구조물을 적층하는 ‘레이크필드’ 구조로 이뤄진 제품입니다. SoC, 다시 말해 칩들이 한 패키지에 올려지는 시스템(System on Chip)이죠. 꼭 인텔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수많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이 만드는 낸드플래시도 대표적인 적층 반도체입니다.

AMD는 3D V캐시 기술로 CPU 구조 설계를 바꿨습니다. 코어와 캐시 메모리가 병렬로 배치됐는데, 이제 CPU 위에 캐시 메모리를 얹은 것이죠. 이것만으로 데이터 이동 동선이 짧아지면서 성능 개선이 이뤄집니다. 캐시 메모리 효율이 낮다고 평가받던 AMD가 구조 변경을 통해 타개에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동일한 CPU 하에 구조 변경만으로도 AMD 자체 평가 결과 프레임 비율이 약 12% 개선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방식은 기존 세잔 CPU에 적용할지, 아니면 연말 출시될 새로운 CPU에 적용될지는 미지수입니다.

▲ 리사 수 CEO가 3D V캐시가 적용된 칩을 들고 있다.
▲ 리사 수 CEO가 3D V캐시가 적용된 칩을 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AMD의 이번 컴퓨텍스 키노트는 라이젠 CPU와 라데온 그래픽을 한꺼번에 팔려는 AMD의 야심이 읽힙니다. 라이젠과 라데온의 성능 개선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둘을 합쳐 ‘라라랜드’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죠. 인텔과 엔비디아가 과점하던 시장을 AMD가 뚫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가격 경쟁은 어느 정도 식을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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