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단행한 24개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상장폐지(거래지원종료) 조치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요동친 가운데 기준이 불확실한 상장을 진행한 거래소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23일 "부실 가상자산에 대한 정리는 시장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성장통"이라면서도 "주먹구구식 상장을 진행한 거래소들도 투자자들에게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 건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부실 자산임을 알면서도 불법 상장 수수료를 받기 위한 무리한 상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는 자금세탁·범죄수익 은닉에 대한 협조 또는 방조로서 거래소 사업 신고 반려 사유"라고 강조했다.

▲ 업비트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 강남구 미림타워 건물 (사진=블로터DB)
▲ 업비트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 강남구 미림타워 건물 (사진=블로터DB)

업비트의 무더기 상장 폐지 조치에 따른 파급 효과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특히 업비트와 피카프로젝트는 상장 폐지 사유의 적법함과 상장 수수료(일명 '상장피') 존재 여부를 두고 양측이 예민한 내부 자료까지 공개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중이다.

피카 측은 상장 당시 업비트 측과 나눈 메신저 내용을 공개하며 "당시 피카 토큰에 대한 유통 일정이나 매도 규정, 주의사항 등에 대해 일체의 협의나 계약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업비트가 문제 삼은 토큰 유통 물량 변경은 '다양한 채널에서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고지된 사항'이라며 문제 없다는 입장문도 발표했다. 아울러 상장 직전 업비트의 요구로 제공한 이벤트용 피카 토큰 물량 500만개는 사실상 현금을 대신해 요구받은 상장피나 다름없었다며 거래소와 프로젝트간 부당한 관계 구조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업비트는 모든 프로젝트와 협의에 따라 마케팅을 대행할 경우 양측의 상세한 권리와 의무를 담은 표준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또 프로젝트 측의 반환 요구가 있으면 사용 후 남은 물량도 일체 반환한다며 상장피 존재 의혹을 일축했다.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양측의 다툼은 당분간 더 장기화될 전망이다.

피카프로젝트뿐 아니라 업비트의 원화마켓 제거(5종), 상장폐지(24종) 결정 후 피해를 입었다는 일부 프로젝트 투자자들도 업비트 비난에 가세하면서 현재 거래소 업계 전반을 향한 가상자산 상장·상장폐지 기준 투명화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과 달리 법적으로 중앙화된 거래 플랫폼이 없는 가상자산 시장은 각 거래소마다 상이한 프로젝트 심사 기준에 따라 가상자산 상장과 상장폐지가 이뤄진다. 이들 거래소는 대략적인 구조 외에는 공개하지 않는 '내부 기준'을 근거로 거래소 상장·퇴출 여부를 결정한다. 프로젝트 입장에선 '주먹구구'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만 가상자산 유통에 거래소 상장이 필수인 만큼 이들은 구조적으로 거래소 심사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 업비트의 거래지원 후 가상자산 관리체계 (자료=업비트)
▲ 업비트의 거래지원 후 가상자산 관리체계 (자료=업비트)

문제는 심사 충족 기준과 불충족 기준이 이해당사자인 프로젝트에 상세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업비트 원화마켓에서 제거된 프로젝트들도 해당 내용의 공지 시점까지 충분한 사유를 전달받지 못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피카프로젝트의 경우 상장 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상장 폐지가 결정되며 "처음부터 부실 프로젝트를 꼼꼼히 심사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반면 한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 심사 기준 공개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것을 일일이 공개하는 것도 거래소로선 부담"이라며 "상장 및 상장폐지 기준만 교묘하게 충족시킨 부실 프로젝트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엔 다양한 거래소가 존재하므로 한 곳에서의 상장폐지가 해당 프로젝트의 시장 퇴출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개별 사업자인 거래소에게만 책임을 묻는 분위기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거래소와 프로젝트, 투자자들 간 입장과 상황 해석이 제각각인 가운데 노 의원의 문제제기는 이번 사태가 정치권의 눈길까지 끌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노 의원은 "거래소의 불법 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여 엄단하고, 정부 당국은 상장 폐지 등에 대한 투자자 보호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 의무와 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강조하는 가상자산업법 3건이 논의 중이다. 국무조정실도 지난달 말 '국내 가상자산 관리방안'을 발표하는 등 정부의 시장 관리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개별 프로젝트 상장·상장폐지 기준 투명화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러나 거래소의 불투명한 프로젝트 심사 구조가 개별 투자자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향후 관련법에 거래소의 투명한 프로젝트 심사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위원회도 현행 제도상 상장피에 대한 직접 제재는 어렵지만 만약 상장피를 받기 위해 부실 코인을 상장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 특금법에 따른 거래소 신고와 관련해 살펴보겠단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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