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왼쪽)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오른쪽)김범석 쿠팡 창업주.(사진=각사.)
▲ (왼쪽)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오른쪽)김범석 쿠팡 창업주.(사진=각사.)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를 3조4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는 동시에 ‘쿠팡’을 경쟁상대로 지목했습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주하는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 인수를 결정한 것이니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베이코리아를 품는다고 해서 곧바로 쿠팡과 대등해지는 것은 아닌데요. 한 번 지금까지 공개된 두 업체의 객관적인 지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거래액만 본다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신세계가 쿠팡을 앞서게 됩니다. 거래액은 말 그대로 해당 플랫폼을 통해 상품들이 거래된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단순 매출액과는 달리 실질적인 시장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업계 추정 신세계 통합 온라인 법인 SSG닷컴의 시장점유율은 3%로 이베이코리아 12%를 더하면 15%에 달합니다. 쿠팡의 시장점유율은 13%로 이베이코리아를 품은 신세계에 2% 포인트 뒤지게 되는 것이죠.

시장에서는 이를 근거로 신세계가 단숨에 이커머스 시장 2위 사업자로 등극한다고 보기도 하는데요. 거래액이 시장 영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 잣대는 아니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변화할 시장 트렌드를 읽는 참고 지표 정도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이베이코리아와 쿠팡의 거래액 기준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각각 12%, 13%로 단 1% 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평가하는 두 업체의 가치는 천지차이죠. 쿠팡의 시가총액이 75조원에 달하는 반면 이번 신세계가 지불한 이베이코리아 지분 80%의 몸값은 3조4000억원입니다.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해도 4조2500억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물론 비상장사인 이베이코리아와 상장사인 쿠팡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어쨌든 시장에서 바라보는 두 업체의 가격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죠.

▲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 주문 건수 추이.(출처=국내 이커머스 업체.)
▲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 주문 건수 추이.(출처=국내 이커머스 업체.)

주문 건수로 비교하면 두 업체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국내 한 이커머스 업체가 내부적으로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쿠팡이 지난해 접수한 배달건수는 67만건으로 이미 네이버의 60만건보다 7만건이 많습니다. 이베이는 34만건으로 쿠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죠.

그러나 두 업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배송능력에 있습니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하며 익일배송 시스템을 이커머스의 표준으로 만들어버렸죠. 상황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결국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도 배송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쿠팡은 지난해 말 기준 30개 이상 도시에 100개 이상의 물류관련 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쿠팡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70%가 쿠팡 물류시설에서 약 11㎞ 이내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쿠팡은 그 이후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투자해 추가 물류센터 확충에 나서고 있는데요. 상장 이후에만 1조원을 추가로 물류센터에 투자했습니다. 물류센터야 말로 쿠팡의 진짜 경쟁력인 것이죠.

이베이코리아는 잘 알려졌다시피 오픈마켓 사업자로 물류능력이 없습니다. 단순히 플랫폼만 제공할 뿐이죠. 결국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를 품은 이후 물류센터를 확장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쿠팡과 비교해 조금 다른 물류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풀필먼트 센터로 알려진 대규모 물류창고보다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망을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죠.

▲ 신세계와 쿠팡 배송능력.(출처=각사 및 업계.)
▲ 신세계와 쿠팡 배송능력.(출처=각사 및 업계.)

신세계에 따르면 전국 이마트 점포 110여곳은  ‘PP(Picking&Packing)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PP센터란 매장 후방을 개조해 만든 물류센터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자동화 물류센터 네오(NE.O) 3곳을 가동해 물류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각자 물류센터마다 규모도 다르고 소화능력도 달라 구체적인 물류능력을 비교하기가 어렵죠. 좀 더 구체적인 비교를 위해 일일 물류소화능력(박스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신세계는 PP센터에서 하루 6만5000건, 네오에서 하루 8만건에 달하는 배송을 소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합배송’을 원칙으로 하는 신세계의 경우 한 건당 3.5박스로 계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경우 하루에 배달하는 박스 수는 47만8500박스로 계산됩니다.

반면 쿠팡은 신세계보다 훨씬 많은 박스를 하루에 소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0일<한국경제신문>이 보도한 ‘쿠팡이 하루 330만건 배송할 수 있는 비결…10만 택배 알바 쿠팡플렉스의 힘’ 보도에 따르면 쿠팡은 하루에 330만건의 배송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신세계와 비교하면 무려 7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죠.

▲ 쓱닷컴 물류센터 내부.(사진=쓱닷컴.)
▲ 쓱닷컴 물류센터 내부.(사진=쓱닷컴.)

이를 의식했는지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곧바로 물류센터 확장 계획을 내놨습니다. 신세계는 "향후 4년간 1조원 이상을 온라인 풀필먼트 센터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죠.

물론 신세계만 갖는 장점도 뚜렷합니다. 바로 오프라인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신세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서로 다른 시장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의 시장만 공략할 수 없을뿐더러 두 시장을 연계했을 때 확실한 시너지가 난다는 것이죠.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이러한 ‘온-오프 통합’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미국의 월마트를 평소에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쿠팡이 미국 상장에 성공한 뒤 끌어 모은 자금을 통해 ‘홈플러스’를 인수할 것이라는 추측도 괜히 나온 것은 아니죠. 오프라인 유통망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여기에 최근 숫자만으로는 측정 불가능한 새로운 이슈도 떠오르고 있는데요. 바로 리스크 관리입니다. 쿠팡은 예전부터 물류 배송직원인 '쿠팡친구’ 혹사 논란을 겪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물류센터 화재, 아이템위너 공정성 논란, 쿠팡이츠 갑질 등 하루 걸러 하루 새로운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경험 많은 대기업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보기도 합니다. B2C 사업에서 중요한 요소인 이미지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죠.

전통 유통 강자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신세계와 판도를 뒤엎으려는 쿠팡. 과연 두 업체의 승부는 어디서 갈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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