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사원노조 공동성명이 28일 ‘네이버 동료 사망 사건, 노동조합의 진상규명 최종보고서 및 재발방지 대책 요구안 발표회’를 열었다.(사진=블로터)
▲ △네이버사원노조 공동성명이 28일 ‘네이버 동료 사망 사건, 노동조합의 진상규명 최종보고서 및 재발방지 대책 요구안 발표회’를 열었다.(사진=블로터)

“퇴사자가 많은데, 여러분은 퇴사하지 않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 최인혁 네이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 2019년 지도 개발 조직장들을 불러모아 했다는 말이다. 임원 A·B씨의 ‘갑질’로 네이버를 떠나는 직원들이 속출하던 때였다. 약속대로 회사를 지키던 40대 조직장은 과로·폭언에 시달린 끝에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2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3일까지 고인의 전·현직 동료 60여명을 대상으로 진상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사건 관련자인 최인혁 COO가 전체 계열사 대표·임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세윤 네이버지회 지회장은 “고인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주행위자는 A씨지만,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계열사 대표까지 겸직하고 있던 최인혁 COO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 네이버·계열사 경영진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조사결과 다른 임원 B씨도 고인 등 구성원들을 부당하게 괴롭힌 사실이 확인됐다며 즉각적인 해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네이버 이사회는 지난 25일 고인을 괴롭힌 것으로 밝혀진 임원 A씨의 해임을 결정했다. 관련자인 임원 B씨에겐 3개월 감봉을, 최 COO에겐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에 최 COO는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네이버에 사의를 표했다. 해피빈 재단 대표, 네이버 파이낸셜 대표, 일본 라인(Line Corporation) AD PM 위원회(Committee), 일본 라인 코노미(LINE CONOMI) 주식회사, 라인플러스 애드&비즈니스 등 네이버 각 계열사의 경영진 자리는 유지하기로 했다.

스톡옵션 ‘회수’까지 임원이 쥐락펴락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소스코드 공유·저장소 ‘깃허브’에는 주말·휴일 없이 업무 이력이 올라왔다. 임원 A씨는 개발자인 고인에게 기획 아이디어를 내라고 종용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벌 세우듯 고인을 훈계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조직원을 다른 데로 전배시키겠다”, “조직을 해체시킬 거다”, “일 그만하고 싶냐”는 협박성 발언을 수시로 해왔다. 보드마카를 책상에 던지고, 사원증 목줄을 당겼다 놓거나 직원의 뱃살을 꼬집기도 했다. 자신을 피해 조직을 이동한 조직원의 보너스는 절반으로 삭감했다.

A씨가 가진 인사권은 절대적이었다. 책임리더에게는 인사평가부터 연봉인상률, 인센티브·스톡옵션 부여, 업무 변경, 조직 해체 등 인사조치 전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A씨는 “스톡옵션을 회수하겠다”, “(네가) 조직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 인사권을 언급하며 고인을 괴롭혀왔다고 노조는 전했다.

특히 최 COO가 임원 A씨에 대한 문제를 알면서도 묵살해왔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고인을 포함한 조직장들이 A씨와 일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자, 오히려 A씨의 권한을 강화하고 일부 조직장의 보직을 해임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줄퇴사가 잇따랐다. 최 COO는 회식 자리에서 조직장들에게 퇴사하지 않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하라고 종용했다. 이후 A씨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노조는 A씨에게 면죄부를 준 최 COO가 네이버 직책만 내려놓고 계열사 대표 등은 유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지적했다. 최 COO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 △노조는 인사조직이 퇴사자에게 임원 A·B씨 때문에 퇴사하는 것인지 묻는 등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영진 면담 시에도 ‘B씨 때문이냐, C씨 때문이냐’고 직원에게 먼저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사진=네이버)
▲ △노조는 인사조직이 퇴사자에게 임원 A·B씨 때문에 퇴사하는 것인지 묻는 등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영진 면담 시에도 ‘B씨 때문이냐, C씨 때문이냐’고 직원에게 먼저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사진=네이버)

“돈이 없어 주말근무 하냐” 또 다른 임원, B씨

노조는 감봉 처분만 받은 임원 B씨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기획조직 임원인 B씨는 개발조직 소속인 고인에게 업무를 따로 지시했다. 절차를 건너뛰고 ‘내가 오늘 내비를 사용했는데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이런 것이냐’는 등 자신이 지시한 업무가 서비스에 적용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고인은 밤낮없이 대응해왔다. 사내메신저를 통해 공개적으로 고인을 비난하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B씨는 회의시간의 절반을 ‘험담’에 쓰기도 했으며,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왜 토를 다냐”, “OO는 잘라버려야 한다”, “또라이 아니냐” 등 모욕적인 발언을 반복해왔다. 조직원을 업무공간에 세워놓고 질책하거나 주말·초과근무 결재를 올리면 “주말에 일한다고 티내냐”, “돈 없어서 주말근무 신청하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다른 조직의 구성원을 자르겠다며 정보를 캐내 오라는 지시를 내린 사례도 있었다. 노조가 임원 B씨의 낮은 징계수위에 반발하고 있는 배경이다.

고인을 비롯한 직원들은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사조직 면담 ▷상향평가를 통한 부정적인 의견 전달 ▷사내채널을 통한 신고 ▷경영진(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한성숙 대표) 면담 등을 통해 임원 A씨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세윤 지회장은 “임원 A·B 씨로 인해 다수 동료가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 등에 시달리면서 병원진단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며 “수 명 이상이 (이들 때문에) 휴직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습된 무기력이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이 죽음은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네이버의 책임을 지적했다. 기자회견 발언자로 나선 김두나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알았으면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하는데, 네이버는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법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절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혁 녹색병원 병원장은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입증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드러나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인정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같은 문제는 대표의 의지가 있어야만 없어지기 때문에 한성숙 대표가 오늘 당장이라도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직장’이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네이버의 대책, 노조는 못 믿는다

네이버는 한성숙 CEO, 최인혁 COO,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CFO), 채선주 최고소통책임자(CCO) 등 4명의 CXO 체제로 권한을 집중해 왔던 조직구조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경영진은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연말까지 새 리더십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오세윤 지회장은 “C레벨 경영진 4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돼 있다.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경영진회의에서 결정해온 것은 네이버 직원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회사(경영진)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시스템을 만들면 또 다른 ‘옥상옥(屋上屋)’을 만드는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원인 파악과 원인제공자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노사공동’ 재발방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사건이 기형적인 ‘권력 비대칭’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견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노사 동수 위원회 운영 ▷조직장의 과도한 권한 축소 ▷좋은 리더십을 만드는 노사 공동시스템 구축을 통한 소수 경영진의 권한 독점 문제 해결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오는 29일부터 노조는 본사 앞에서의 ‘피케팅’ 시위를 시작으로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단체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최인혁 COO·임원 B씨의 해임과 재발방지대책위 구성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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