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롯데는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된 ‘2021 하반기 롯데 VCM’에서 ESG 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사진은 (왼쪽부터) 롯데그룹 이영구 식품BU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신동빈 롯데 회장, 강희태 유통BU장, 김교현 화학BU장, 이봉철 호텔&서비스BU장. (사진=롯데.)
▲ 롯데는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진행된 ‘2021 하반기 롯데 VCM’에서 ESG 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사진은 (왼쪽부터) 롯데그룹 이영구 식품BU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신동빈 롯데 회장, 강희태 유통BU장, 김교현 화학BU장, 이봉철 호텔&서비스BU장. (사진=롯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반기에 한 번씩 열리는 지난 하반기 그룹 사장단회의(VCM)에서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신 회장은 “보여주기식 ESG 경영은 지양하고 모든 의사결정에 ESG 요소가 적용할 수 있도록 모든 임직원까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죠. 또 “각 사별로 방향성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업 활동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ESG 경영이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김교현 롯데 화학BU장.(사진=롯데.)
▲ 김교현 롯데 화학BU장.(사진=롯데.)

롯데그룹에서 ESG 경영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계열사는 바로 석유화학 제품을 제조하는 롯데케미칼입니다.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크게 유통, 호텔, 식품, 화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화학사업의 경우 제조공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죠. 롯데그룹에서 화학 사업을 총괄하는 김교현 화학BU장이 느끼는 책임감도 남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총 배출량은 줄었지만...

표면적으로 공개된 데이터만 보면 롯데케미칼의 탄소배출량은 지난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이 최근 발간한 ‘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내 ‘ESG DATA’ 항목을 보면 최근 3개 사업연도의 구체적인 탄소배출량이 기재돼 있습니다.

▲ 롯데케미칼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 롯데케미칼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2019년도 롯데케미칼의 탄소배출량은 총 680만톤으로 전년 630만톤 대비 50만톤이나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무려 120만톤이나 줄어든 560만톤의 배출량을 기록했죠. 한 해 만에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배출량이 줄어든 것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구체적으로 롯데케미칼은 탄소배출량을 크게 Scope 1과 Scope 2 두 단계로 구분해 파악했는데요. Scope 1 단계, 즉 직접 배출량이 470만톤에서 360만톤으로 110만톤 감소했습니다. 간접배출량을 뜻하는 Scope 2의 배출량은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Scope 1은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탄소를 뜻하며, Scope 2는 각 사업장에서 구매하는 전기와 스팀을 만들기 위해 발생하는 간접배출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전기를 사용했다면, 그 전기가 석탄발전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재생에너지로 생성됐는지 까지 따지는 것입니다. 협력사의 탄소배출까지 관리하는 Scope 3단계도 있지만 롯데케미칼은 Scope 2까지만 배출총량에 포함시켰습니다.

배출량 감소는 매출 감소 탓

롯데케미칼의 탄소배출 총량이 줄었으니 신동빈 회장이 강조한 것처럼 ESG 경영을 아주 잘 이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화학사업은 국내서 철강사업에 이어 두 번째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업종입니다. 원료인 납사를 열분해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발생하죠. 이 말은 즉 생산량이 많으면 탄소배출량도 늘어나고, 그 반대로 생산량이 줄면 배출량도 줄어든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악재가 많았죠. 코로나19로 전반적인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대산공장 폭발사고라는 대형 악재가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4일 대산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직원과 지역주민들이 부상 당하는 아주 큰 사고였습니다. 사고 이후 공장은 휴식기에 들어갔고 지난해 12월 9개월 만에 겨우 재가동을 시작했습니다.

▲ 롯데케미칼 생산 실적 및 가동률 변화.(출처=롯데케미칼 사업보고서.)
▲ 롯데케미칼 생산 실적 및 가동률 변화.(출처=롯데케미칼 사업보고서.)

롯데케미칼 사업보고서에 적힌 2019년과 2020년 생산실적 및 가동률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기초유분의 NC, BTX, PX 등의 제품 가동률은 2019년 96%, 93%, 89%를 기록했는데요. 2020년에는 각각 65%, 60%, 54%로 대폭 하락했습니다. 모노머, 폴리머 계열 제품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전년 대비 가동율이 오른 제품은 모노머 계열의 PIT/PTA, 폴리머 계열의 PP 뿐입니다.

매출을 보면 지난 한 해 판매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죠. 2018년 16조원 규모의 매출은 2019년 15조원으로 감소했구요. 2020년에는 무려 3조원이 줄어들었습니다.

▲ 롯데케미칼 매출 추이.(출처=롯데케미칼 사업보고서.)
▲ 롯데케미칼 매출 추이.(출처=롯데케미칼 사업보고서.)

효율성은 계속 떨어진다

결국 롯데케미칼의 2020년 탄소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단순 판매 감소에 따른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기업의 저탄소 경쟁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 단위 배출량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원 단위 배출량은 매출 대비 탄소배출량을 나타내는 지표인데요. 롯데케미칼처럼 매출이 출렁이는 경우 이를 보정해서 비교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 롯데케미칼 온실가스 원 단위 추이.(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롯데케미칼 온실가스 원 단위 추이.(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롯데케미칼의 평균 원 단위 배출량은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2018년 0.451에서 2019년 0.465, 2020년 0.489로 매년 늘어났죠. 매출 대비 탄소배출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곧 탄소배출 감소 효율성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환경개선을 위해 롯데케미칼이 아무런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 투자금액은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2018년 360억원에서 2020년에는 850억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 롯데케미칼 환경 투자금액.(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롯데케미칼 환경 투자금액.(출처=2020 롯데케미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친환경 사업으로 매출 6조원을 올리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그린프로미스 2030’ 전략을 올 초 발표했습니다. 탄소중립은 탄소를 배출한 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개념입니다. 과연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탄소중립’을 달성해 나갈지 관심이 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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