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은 중요한 기업 평가 척도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 온실가스 배출량은 중요한 기업 평가 척도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삼성전자가 지난 6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1’을 발표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눈길이 가는 건 온실가스 배출량입니다. 감소 추세였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계획했던 목표 달성도 실패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성격과 범위에 따라 Scope 1, Scope 2, Scope 3로 나뉩니다. Scope 1은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의미합니다. Scope 2는 사업장에서 쓰이는 전기와 스팀을 만들기 위해 발생하는 간접 배출을 포함합니다. Scope 3는 물류, 출장, 협력사 제품 사용으로 인한 배출까지 집계한 온실가스 배출량입니다.

▲ Scope 범위 설명. (자료=세계 자원 연구소 Technical Guidance for Calculating Scope 3 Emissions 보고서)
▲ Scope 범위 설명. (자료=세계 자원 연구소 Technical Guidance for Calculating Scope 3 Emissions 보고서)

이중 Scope 2는 지역기반(Location-based)과 시장기반(Market-based)로 나뉩니다. 지역기반은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내 환경 관련 기관 자료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이 발표한 각종 요소를 기업 상황에 맞게 반영해 계산합니다. 시장기반은 사업자가 재생에너지를 구매한 경우 이를 반영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집계하는 방식입니다.

원단위 배출량 목표 달성 실패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의 경우 시장기반으로 평가해야 실제와 가까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꾸준히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다”고 홍보한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입니다. 삼성전자는 2018년 유럽·미국·중국 전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그런데 Scope1과 시장기반 Scope 2 수치를 합산한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했습니다. 집계된 직간접 배출량은 1480만6000톤입니다. 2019년 1380만톤보다 오히려 7.3% 늘었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직접 배출량인 Scope 1은 전년 대비 13.0%, Scope 2는 4.0% 증가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온실가스 절대 배출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많아지면서 직간접 배출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미미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거죠. 

▲ 삼성전자 매출 및 생산실적. (자료=삼성전자 사업보고서)
▲ 삼성전자 매출 및 생산실적. (자료=삼성전자 사업보고서)

실제 온실가스 배출 원단위 배출량도 3.1(t/억원)에서 3.2로 높아졌습니다. 원단위 배출량은 총 배출량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입니다. 기업의 탄소배출 노력 정도를 추적할 수 있는 지표죠. 삼성전자는 지난해 CDP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20년 원단위 배출량(intensity)을 1.5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겁니다. 

국내 공장에 발목 잡힌 삼성전자 ESG
삼성전자 전체 사업장 중 절반은 국내에 머물러있습니다.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총 26개의 사업장을 갖고 있는데요. 이중 12개가 국내 사업장입니다. 이익에 따라 다른 국가에 생산설비를 집중하는 경쟁 업체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문제는 사업장이 국내에 집중된 구조가 ‘온실가스 배출량’ 경쟁 구도에서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거죠.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이를 지적했는데요.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100% 재생에너지 로드맵’ 보고서에서 “한국과 베트남에서도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성은 처음부터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고 정책적 장벽이 높다는 이유로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에서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린피스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CDP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삼성전자 온실가스 배출 대부분은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했습니다. Scope 1의 경우 78.7%, Scope 2의 경우 81.8%에 달합니다. 2019년 자료지만 극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2020년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2019년 삼성전자 지역별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CDP)
▲ 2019년 삼성전자 지역별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CDP)

국내 사업장에서는 기존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게 사실상 힘듭니다. 정부의 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1.2TWh로 전체 전력의 7.5% 수준입니다. 2017년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0.9TWh, 일본이 125.4TWh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저히 낮죠.

올해 도입된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제도 활용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제3자 PPA제도는 재생에너지를 만든 사업자와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이 한전의 중개를 통해 에너지를 사고파는 방식인데요. 과도한 수수료 책정 기준 등 제도적 허점이 많다고 지적됩니다. 

▲ 애플 공급업체 에너지 효율성 및 재생 에너지 달성 추이. (자료=애플 환경보고서 2021)
▲ 애플 공급업체 에너지 효율성 및 재생 에너지 달성 추이. (자료=애플 환경보고서 2021)

온실가스 배출량은 향후 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플은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제조 공급망 등 기업 활동 전반에서 탄소 중립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애플은 탄소 중립화 범위를 협력업체 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삼성전자가 국내 공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리스크를 어떻게 해결해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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