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네이버가 강조해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빨간불’이 켜지게 될까요. 직원들이 보내온 구조신호를 외면해온 탓에 사회(S)영역의 등급조정이 이루어지게 될지 정보기술(IT)업계 안팎의 눈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 5월이었지요. ‘직장 괴롭힘’을 겪던 네이버 개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동료들의 폭로가 온라인을 통해 터져 나왔습니다. 임원들의 과도한 업무지시, 폭언·모욕 등이 있었고 회사는 이를 알면서도 뭉갰다는 주장이었죠.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네이버도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결과는…글쎄요. 일단 책임리더 1명은 해임됐고, 나머지에겐 감봉·경고 등의 징계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네이버 사원노조는 지난달 29일부터 대답 없는 네이버를 상대로 매일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9일에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한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입니다.
네이버도 작년 10월 ESG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사회 산하에서 환경·사회문제를 두고 의사결정을 진행하던 투명성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해 ESG위원회를 별도로 신설하고 ‘최고협의체’ 기능까지 부여했죠. 무려 100쪽이 넘는 ESG보고서도 발간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이 보고서의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친환경·사회적 책임경영을 선도하겠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환경(E)영역에서는 신사옥, 그리고 데이터센터 ‘각’을 중심으로 한 2040 카본 네거티브 정책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강조했습니다. 기자들에게 보내온 보도자료에서도 ‘환경전담조직’을 신설했다는 대목을 특히 강조했었지요.
그렇다면 ‘인권’을 담고 있는 사회(S)영역은 어땠을까요. 네이버는 보고서를 통해 “네이버는 어떠한 이유로도 구성원을 차별하지 않으며, 직장 괴롭힘이나 우월적 지위·권한 남용, 고압적인 언행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익명 상담·신고채널 ‘위드유’, 사내 통합채널인 ‘kNock’를 운영하고 있다고도 기재했죠. 특히 위드유는 직장 괴롭힘 등을 처리하는 창구인데요. 피해사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경우 외부 전문가까지 동원해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제보건수는 6건으로, 내부 절차에 따라 100% 처리”됐습니다. 전사 인권교육도 했고, 임직원 소통도 강화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직장 괴롭힘 예방교육은 매년 수료율 100%를 달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는 ‘ESG 우등생’이라는 수식어를 차지하게 됐는데요.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ESG평가에서 종합등급 A를 획득했습니다. KCGS는 △기업공시(사업보고서, 지속가능성경영보고서, 홈페이지 등) △감독기구 지자체 등 기관 자료 △뉴스 등 미디어 자료 등 기초자료를 수집해 상장사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일어난 일은 기업문화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①임원은 비대한 권한을 쥐고 있어 ‘무한갑질’이 가능했고 ②직장 괴롭힘 신고·처리 절차 등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해임된 가해자의 경우에는 회의를 하다 물건을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고압적인 언행은 일상적이었고요.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업무지휘·평가·연봉·인센티브·스톡옵션 지급 등 말 그대로 직원들의 ‘목줄’을 쥐고 있었고, 줬던 스톡옵션을 도로 빼앗을 수도 있었죠.
또 임원의 ‘괴롭힘’에 시달리던 고인·동료들은 무려 2년여에 걸쳐 △경영진 면담 △퇴사·전배 시 인사조직 면담 △상향평가를 통한 부정적 의견 전달 △사내 채널을 통한 신고 등 네이버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각종 수단을 총동원했는데요. 회사는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이해진의 사람’인 최인혁 최고운영자(COO)에겐 아예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고충을 토로했지만, 오히려 문제가 된 인물을 승진시켰다고 하지요. 최인혁 COO는 네이버파이낸셜·해피빈 재단 등 계열사 대표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내 채널이 아예 기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요. 지난 3월 네이버 직원 A씨는 회사에 임원 W씨의 ‘괴롭힘’을 제보했습니다. 사내 절차에 따라 외부기관과 면담을 진행했죠. 그런데 실제 발언이 축소돼 작성됐다고 합니다. 이후 신고자는 대기발령 조직에 가게 됐고 끝내 회사를 떠났습니다. 당시 인사팀이 ‘문제없음’으로 결론 내렸던 임원 W씨는 이번 사망사건에 연루돼 감봉 처분을 받았지요. 참고로 동료들의 제보를 살펴보면 W씨는 회의시간의 절반을 자리에 없는 직원들을 험담하는 데 쓰곤 했다고 합니다.
외부기관은 언뜻 보면 공정한 조사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사결과에 따른 처분은 결국 회사 경영진·인사위원회의 몫이죠. 회사가 비용을 지불해 발주한 곳이 조사의 주체가 됩니다. 직원들이 불신을 품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네이버 리스크위원회의 조사에 대해서도 직원들은 우려를 표했었죠.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난달 30일 입장을 냈습니다.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연말까지 경영쇄신을 통해 새로운 조직체계를 갖추겠다고 약속했죠. 창업자까지 나서자 사태는 이대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강력한 쇄신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신뢰도를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조는 동료가 사망한 만큼 이번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참, 괴롭힘 말고도 노조에 따르면 네이버 사내독립기업(CIC)에서는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가 발생해왔다고 하는데요. 쉬는 날에도 업무지시를 내렸지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내 근태 시스템에는 업무시간을 실제보다 적게 기록하도록 종용했다는 주장입니다. 별안간 궁금증이 생깁니다. 네이버가 ESG보고서 사회(S)영역에 적은 내용과 현실이 판이했던 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해 KCGS 관계자는 “어쩌면 정보공개의 장점으로 볼 수 있다. 실상이 다르게 드러나면 그 자체로 회사의 신뢰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라면서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 하나의 감점요소가 된다. 이후 (문제)해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또 제대로 바뀌는지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ESG 등급이 조정된다고 한들 시가총액 4위 네이버의 기업가치는 그대로일 겁니다. 네이버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여전히 많을 테고요. 하지만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이란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