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SK넥실리스 정읍공장의 모습. 회색 건물이 5공장과 6공장.(사진=SKC)
▲ 하늘에서 바라본 SK넥실리스 정읍공장의 모습. 회색 건물이 5공장과 6공장.(사진=SKC)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SK그룹 내에서도 SKC의 최근 행보는 상당히 돋보입니다. 이완재 SKC 사장이 2016년 부임한 이후 ‘탈정(脫井:갇혀 있는 우물에서 벗어나다)’이란 기치 아래 숨가쁜 사업전환을 추진하고 있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모빌리티 소재 사업, 즉 전기차 배터리 동박 사업을 추가한 것입니다. 2019년 6월 전지용 동박 제조업체인 SK넥실리스(옛 KCFT)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죠. 회사의 명운을 가를 ‘베팅’이었습니다. 1조2000억원은 당시 회사 전체 자산의 약 30%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니까요.

▲ 이완재 SKC 사장이 지난해 8월 자사 유튜브 채널 영상에 출연해 딥 체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출처=SKC 유튜브 영상 캡처.)
▲ 이완재 SKC 사장이 지난해 8월 자사 유튜브 채널 영상에 출연해 딥 체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출처=SKC 유튜브 영상 캡처.)

물론 희생도 있었습니다. 1조2000억원의 금액은 SKC가 홀로 감당하기엔 벅찬 규모였습니다. 외부자금 조달로 해결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죠. SKC는 자산 매각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화학사업을 분사한 이후 쿠웨이트 석유화학사인 PIC(Petrochemical Industries Company)에 지분을 매각하고 합작사를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가 무려 8000억원이었습니다.

이 사장은 화학사업 지분 매각에 대해 “SKC의 소중한 화학사업의 지분 일부를 내주고라도 미래 성장을 찾아보고자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딜’들이 이어졌습니다. 코오롱과 합작해 만든 필름업체 SKC코오롱PI 지분을 모두 팔았고요. 화장품 원료를 제조하는 SK바이오랜드를 현대백화점에 매각했죠. 가장 최근에는 SKC의 자회사 SK텔레시스가 통신사업을 800억원에 팔기도 했습니다. 사업구조를 반도체, 모빌리티, 중심으로 짜는 동시에 투자금도 확보하는 전략이죠.

이처럼 꾸준히 자산을 매각하며 신사업에 힘을 주고 있는데도 재무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불안요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 SKC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SKC 사업보고서.)
▲ SKC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SKC 사업보고서.)

실제로 빚이 많이 늘기는 했습니다. 2015년 1조5000억원 규모의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2조6000억원으로 늘었구요. 현금성 자산을 차감한 순차입금은 1조5000억원에서 2조20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37%에서 182%로 상승했죠.

빚이 늘어나며 이자부담 또한 함께 커졌습니다. SKC의 지난해 순금융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무려 920억원에 달합니다. 영업이익이 19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략 절반 이상이 금융비용으로 빠져나간 것이죠. 차입금이 단기간에 줄지 않는 이상 이자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SKC가 그동안 얼마나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는지는 현금흐름 추이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에서 운전자본, 자본지출, 배당 등을 모두 차감한 잉여현금흐름(FCF)은 최근 몇 년 간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 SKC 잉여현금흐름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 SKC 잉여현금흐름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잉여현금흐름을 계산하는 방법은 각 기관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한국기업평가가 제공하는 SKC의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잉여현금흐름은 2018년부터 3년 넘게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3개 사업연도의 누적 적자는 6000억원 수준이구요. 올 1분기에도 1700억원의 적자 흐름을 기록했습니다. 운전자본, 자본적지출 등을 모두 제외한 금액이기 때문에 실제 기업이 차입금 상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현금 여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SKC는 설비 증설을 위한 자본적지출(CAPEX)을 최근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지난해에만 무려 3200억원을 설비투자에 썼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동박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공장을 짓느라 많은 돈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도 상당한 규모의 CAPEX 지출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SK넥실리스는 최근 정읍에 위치한 동박 5공장을 조기 완공했고요. 6공장도 증설 중에 있습니다. 게다가 해외 첫 생산기지인 말레이시아 공장 착공을 위해 지난 7일 2550억원을 자회사에 유상증자하기도 했죠. 유럽에도 추가 생산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한동안은 대규모 투자가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SKC의 추가 자산 매각 가능성을 점치기도 합니다. 동박 등 모빌리티 소재 사업에 대한 투자가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반면 아직 수익규모가 투자비용을 모두 회수하기에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죠.

▲ SKC 실적추이.(출처=SKC 사업보고서.)
▲ SKC 실적추이.(출처=SKC 사업보고서.)

올 1분기 실적만 보더라도 영업이익 대부분은 화학사업에 치중돼 있습니다. 전체 818억원의 영업이익 중 560억원이 화학사업에서 발생했죠. 동박사업 영업이익은 167억원으로 전년 동기 67억원과 비교해서는 엄청나게 성장한 것은 맞지만, 1조2000억원의 투자금을 생각하면 아직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죠. 

다행히도 모빌리티, 화학, 반도체 소재 등 다양한 사업들이 모두 좋은 실적을 내주고 있는데요. 과연 투자와 빚 사이 SKC만의 적절한 균형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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