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먼데이]평행선 달리는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이슈…해결법은?

발행일 2021-07-12 07:28:46
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조명해봅니다.
요즘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들은 애가 탑니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른 사업 신고 마감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은행에선 필수 요건 중 하나인 '실명 입출금 확인계좌(이하 실명계좌)'를 내어줄 기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은 정부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인데, 키를 쥔 정부는 조건을 완화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우려됐던 거래소 줄폐업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니까 잘했어야지"…업계의 자업자득?
먼저 거래소 업계의 '자업자득'이란 시선입니다. 실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를 제외하면 거래소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드뭅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거래소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이들을 더 쉽게 만나볼 수 있죠. 특금법 개정 이전부터 거래소들이 가상자산 해킹·유출 사고에 휘말렸다거나 스캠(사기성 코인)을 상장했다는 이야기, 심지어 시세 조작에 관여하고 상장 대가로는 수십억원의 뒷돈까지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으니까요.

개중엔 사실로 밝혀진 사건도 있고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자산이 미처 제도권에 정착하기도 이전에 이처럼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오니 일반 국민들 눈에 '가상자산=사기'란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화폐의 등장이 달갑지 않을뿐더러 가격 등락폭이 하루에만 수십 퍼센트를 오가는 투기성 자산에 누구나 쉽게 손댈 수 있는 상황은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 진흥 정책은 내놔도 가상자산 사업에 대해선 업권법조차 만들지 않고 방치하는 배경으로 풀이됩니다.
"싸잡아 매도하지 말라"…정부의 과도한 선 긋기?
이처럼 정부가 부정적인 관점에서 가상자산 업계를 보다 보니 선의의 사업자들도 함께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나옵니다. 이미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상장한 가상자산의 사고 사례가 없으며 해킹 한번 겪지 않은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문제 거래소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거죠.

애초에 정부가 가상자산 사업 자체를 제도권에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사업 신고 허들을 대폭 높여 스스로 고사하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한 중소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은행들과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실명계좌 발급 심사를 진행해도 마지막 순간에 거절당하기 일쑤"라며 은행들도 "(정부 눈치)아시잖아요"라는 식으로 말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조건만 갖추면 신고할 수 있는 신고수리제의 취지가 무색하게 정부가 신고 요건조차 충족할 수 없도록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특금법 개정 이전에 실명계좌를 확보해 일명 '4대 거래소'로 불리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도 당초 사업 신고 과정이 순탄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들도 아직 신고를 미루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개별 거래소에 대한 강도 높은 현장 컨설팅에 나서고 있고 은행들도 이들 거래소에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지속할지 다시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거래소 입장에선 억울합니다. 그동안 숱한 요구에도 정부가 업권법을 마련해주지 않았고 무법지대에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최대한 합리적으로 운영해왔는데 막상 신고를 앞두니 허들을 한껏 높이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거래소 사이에서 난감한 은행
은행들은 정부와 거래소 사이에서 난감한 입장입니다. 은행업은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강력한 규제 산업임과 동시에 은행에 돈을 맡기고 빌리는 고객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즉,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정부와 고객들이 가상자산과 거래소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상황에서 거래소와 손을 잡기 어려운 거죠. 하지만 잘 준비된 거래소들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이에 업계에 따르면 은행이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가상자산 거래소 사고에 대한 은행의 면책권까지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를 일축했습니다. 거래소 신고 수리 기관인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도 거래소 역시 은행의 고객이기 때문에 거래소의 자금세탁위험 평가는 온전히 은행의 몫이란 입장입니다.

결국 어떤 거래소에 대해서도 '사고 발생률 0%'를 확신할 수 없고, 사고가 발생하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은행이 함께 져야 하는 상황에 대해 실명계좌 발급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이유입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부, 업계 개별 노력 필요
이처럼 정부, 은행, 거래소의 입장은 벌써 1년 넘게 지루한 평행선만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금법 신고 마감 기한이 코앞에 다가왔고 거래소 줄폐업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막대한 이용자 피해가 예견되는 상황입니다. 현재 정부와 업계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만 약 600~700만명 수준의 가상자산 투자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거래액 규모는 여전히 일 수조원대에 이릅니다. 그만큼 정부, 업계의 힘겨루기를 떠나 투자자 보호 방안이 선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최근 전문가들의 다양한 논의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열린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정책 포럼'에서 김태림 법무법인 비전 변호사는 "각 투자자가 자기책임 원칙하에 가상자산을 거래하되 정부는 가상자산의 정의를 새롭게 규정하고 그 기능 및 용도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으로부터 투자자 권리·의무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태림 법무법인 비전 변호사 (사진=이건한 기자)

일례로 미국은 가상자산을 교환수단, 상품, 자산으로 분류해 주무부처를 달리하고 있으며 가상자산 발행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유통은 개별주법으로 세세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예 가상자산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되 거래소에는 사업자 면허를 발급하고 가상자산 상장은 금융청의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모두 정부의 관리·감독 수준이 강화된 방식이죠. 국내에서도 이미 국민 10명 중 1명이 가상자산 투자자일 만큼 규모가 확대된 만큼 정부도 관리·감독을 무조건 은행과 거래소에만 맡길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래소 업계의 자정 노력입니다. 정부와 국민이 가상자산 평가에 인색해진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시장 초기 불거진 여러 사건사고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민적 공감대 속에 제도권에 안착하려면 지난 과오를 씻기 위한 업계 전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는 타 산업과 달리 사업자 전반을 아우를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목됩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제대로 된 구실을 하는 협회가 없다"고 말하곤 하죠. 실제 다양한 이름의 블록체인·가상자산협회가 존재하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 속에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내거나, 자율규제안을 만들어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업계의 경우 공동논의를 통해 가상자산 상장 기준의 투명한 공개, 공시제도 마련, 자율규제안 위반 시 강력한 페널티 부여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함으로서 대정부·국민 인식을 개선하는 조치가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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