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이즈미디어 사옥 전경. (사진=이즈미디어 홈페이지)
▲ 이즈미디어 사옥 전경. (사진=이즈미디어 홈페이지)
카메라모듈(Compact Camera Module·CCM) 검사장비 판매 업체 이즈미디어는 지난 3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교체됐는데요. 경영권을 잡은 김인석 이즈미디어 대표는 지난달 28일 <뉴스웨이> 언론 인터뷰에서 “주주가치 제고는 숙명이다. 지속성장 가능한 기업을 만들어 시가총액 기준으로 코스닥 탑3에 드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즈미디어 주가는 김 대표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17일 4만3050원으로 장을 마감하며 최고가를 찍었던 주가는 하락세가 이어지며 지난 8일 종가 2만2500원에 장을 끝냈습니다.

▲ 이즈미디어 3개월 주가 흐름. (사진=네이버금융)
▲ 이즈미디어 3개월 주가 흐름. (사진=네이버금융)

주주 입장에선 고민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이즈미디어가 지난달 2일과 8일 발행한 전환사채(CB)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된 거죠. CB는 회사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발행하는 채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향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이즈미디어는 새로운 경영진이 선임된 뒤 2차례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첫 번째 공시일인 6월2일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즈미디어는 바로저축은행,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상상인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총 135억원을 발행했는데요. 자금조달 목적은 운영자금 100억원, 기타자금 35억원입니다. 전환가액(주식 전환 시 주당 가격)은 3만9418원이고요.

눈여겨볼 대목은 ‘시가하락에 따른 전환가액 재조정(리픽싱)’ 부분인데요. 이즈미디어는 전환가액을 ‘액면가’까지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 최저 조정가액 근거. (사진=이즈미디어 공시 내역)
▲ 최저 조정가액 근거. (사진=이즈미디어 공시 내역)

6월8일 발행 내역도 뜯어봤습니다. 케이앤에이치신기술조합, 엘에이2호 투자조합, 주식회사 티피에이미디어를 상대로 총 200억원을 발행했습니다. 자금조달 목적은 운영자금 50억원, 기타자금 150억원입니다. 전환가액은 3만9418원입니다.

전환가액은 앞선 135억원 발행 때와 마찬가지로 ‘액면가’까지 조정할 수 있게 설정했습니다.

CB 투자자 입장에선 이즈미디어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높아야 투자할 이유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사측에서는 ‘리픽싱’이라는 제도를 통해 CB 투자자의 리스크를 줄여주는데요. 쉽게 말해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해 CB 투자자의 손실을 줄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전환가격 하향 조정은 CB 투자자에게는 리스크를 예방하는 요인이지만 기존 일반 투자자에게는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악재입니다. 전환가격이 하향 조정되면 CB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신주 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실제로 지난 2일과 8일 이즈미디어는 ‘전환가액 조정’ 공시를 냈는데요. 앞서 발행한 135억원의 CB는 조정전 전환가액 3만9418원에서 조정후 전환가액 2만6471원으로 변경됐습니다. 전환가능 주식수는 34만2483주에서 50만9992주로 늘었죠. 이후 발행한 200억원의 CB 역시 조정전 전환가액 3만9418원에서 조정후 전환가액 2만4856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전환가능 주식수는 50만7382주에서 80만4634주로 커졌습니다.

기존 주주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즈미디어의 CB 전환가액이 액면가(500원)까지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브레이크 없이 계속 CB 전환가액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거죠. 이즈미디어는 1개월마다 전환가액을 조정할 수 있게 설정했습니다.

현행 행정규칙에 따르면 CB 전환가격을 액면가까지 하향 조정하는건 불가능합니다. CB 전환가격은 최초 전환가격의 최대 70%까지만 하향 조정할 수 있죠. 만약 액면가까지 하향 조정을 원한다면 회사 정관을 수정해야 합니다.

▲ 현행 규정.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 현행 규정.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새로운 경영진은 올해 회사 정관을 뜯어고쳤습니다.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즈미디어는 정관 22조(전환사채의 발행)를 2차례 수정했습니다. 지난 3월30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전환사채 발행한도를 변경했고요. 지난 5월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전환가액 한도를 조정했습니다. 모두 최대주주가 바뀐 이후죠.

김 대표가 말한 ‘주주가치 제고’ 노력과 달리 이즈미디어는 기존 주주보다 CB 투자자 리스크 예방에 집중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주가가 떨어지면 이즈미디어 CB 투자자는 액면가까지 조정할 수 있는 리픽싱 제도로 보호받지만 기존 주주들은 가치 희석을 막아낼 뚜렷한 방안이 없습니다.

이즈미디어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179억원을 냈습니다. 올해 1분기 당기순손실도 12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적자전환으로 부채비율은 2019년 111.5%에서 올해 1분기 204.6%까지 치솟았습니다. 보통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서면 재무건전성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 이즈미디어 실적 추이. (자료=이즈미디어 사업보고서)
▲ 이즈미디어 실적 추이. (자료=이즈미디어 사업보고서)

최대주주 TPA리테일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TPA리테일은 지난해에만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는데요. 지난해 7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습니다. 부채총계는 430억원, 자본총계는 5억원으로 부채비율은 8000%가 넘습니다.

이즈미디어는 주요 사업인 CCM 제조가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NFT) 플랫폼 구축 등의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올해 초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친누나 랜디 저커버그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죠. 이즈미디어가 신사업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고 김 대표의 발언처럼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TPA미디어가 업로드한 이즈미디어&랜디저커버그 Randi Zuckerberg 촬영현장 스케치 영상. (사진=TPA미디어 유튜브)
▲ TPA미디어가 업로드한 이즈미디어&랜디저커버그 Randi Zuckerberg 촬영현장 스케치 영상. (사진=TPA미디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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